[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산업기술 유출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유출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기술을 유출해도 이익을 보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주성규 현대모비스 과장)
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정보원은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제9회 산업기술보호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이 날 주성규 현대모비스 과장은 ‘기술유출 사례로 본 법률체계의 사각지대’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국내 산업기밀 유출 수사와 사법처리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산업기술 유출은 판단하기 어렵다. 유출된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유출됐는지를 기업이 입증해야 한다. 재판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고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었지만 재판 중 기술이 범용화돼 핵심기술로의 가치를 잃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설령 산업기술 유출로 인정되더라도 판결의 강도가 약하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에대해 주 과장은 “산업기술 유출로 인정되는 경우가 적고, 또 유죄가 되더라도 형량이 낮은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보안의식을 키우라는 것은 어려운 얘기”라고 지적했다. 미온적인 수사기관의 수사, 약한 사법부의 판결이 보안의식 강화에 걸림돌이라는 것.
주 과장은 “기술 유출을 수사하고 판결하는 수사기관, 사법부가 전문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산업기술은 기업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국가 자산이기도 하다. 수사기관, 사법부가 산업기술 보호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 과장의 발표에 이어 ▲김도형 삼성디스플레이 그룹장 ▲문준환 SK이노베이션 부장 ▲윤병석 LG전자 팀장 ▲황민서 김앤장 변호사 ▲박창모 효성 팀장 등이 같은 주제에 대한 패널토론을 진행했다.
이 날 토론회에서 김도형 삼성디스플레이 그룹장은 OLED 기술 유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해외에서 회의를 진행했을 때 회의록을 협력사가 작성했다는 이유로 삼성디스플레이 기술이라고 인정받지 못한 사례를 들었다. 김 그룹장은 “지적 자산을 하나하나 심하다 싶을 정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기밀 유출의 범죄 소명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문준환 SK이노베이션 부장은 "기업에서 증빙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그 자료가 수사기관이나 사법부에는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박창모 효성 팀장은 “수사기관과 기업이 협의체를 구성하면 좋겠다. 기업이 가진 기술이나 실무 부분에 대해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면 수사기관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민서 변호사는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제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산업기밀 유출 사건은 법 적용이 모호해 다툼의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수사단계에서 확신을 갖지 못하기에 무리해서 기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개선될 전망이다. 그는 “산업기밀 유출에 대한 수사와 처벌 강도를 강화하는 상태다. 앞으로는 수사기관과 사법기관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병석 LG전자 팀장은 문서 등이 영업비밀이었던 과거와 달리 기술을 가진 사람이 영업비밀이 됐다며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직금지가처분 등을 통해 보안을 강화할 수 있겠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 등과 부딪히는 만큼 한계가 있다"며 “기업은 핵심기술을 지닌 직원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현 기자>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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