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공세 속 한국은 규제의 늪에 빠져 있다. 신흥 서비스에 대한 규제 여부와 수준을 놓고 이해관계별로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국내 사업자의 경쟁력 확보 및 역차별 해소 방안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해외에서도 OTT와 관련해 한국과 유사한 규제 논의를 거치고 있다. 다만 시장 상황과 사회문화적 요건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이다. 이제 막 규제를 논하는 한국 시장에서는 규제의 근본적인 목표와 문제의식부터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글로벌 OTT 규제 현황과 국내 관련 법 규제체계’ 세미나에서는 도준호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와 김희경 성균관대학교 학술교수가 각각 영미권과 유럽·일본의 사례를 들어 해외 OTT 규제 현황을 분석했다.
도준호 교수<사진1>는 점진적인 규제를 추진하되 초기 규제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미국과 영국 사례를 들어 소개했다. 규제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이용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에서 OTT는 연방통신법 규제에 따라 OVD와 vMVPD로 분류된다. 기존 다채널유료방송(MVPD) 외 새로운 카테고리로 OVD를 추가하고, 여기에 실시간 방송을 하는 OVD는 지상파 방송사와 재송신 협상을 할 수 있도록 vMVPD로 규정했다. 규제 적용을 위한 분류보다는 사업자를 구분하고 적절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차원이란 설명이다.
영국에서는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기준으로 차등적인 계층별 미디어 규제를 하고 있다. OTT는 주문형 비실시간 동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온라인동영상콘텐츠(ODPS)로 분류된다. 규제 기관인 오프콤에 등록 절차를 거쳐 규제를 받는다. 일반 인터넷 콘텐츠보다는 무겁지만 일반 방송보다는 낮은 수준 규제로 도 교수는 보고 있다.
도 교수는 “미국은 실시간 방송을 하는 OTT만 규제하고 있고, 영국에서는 비실시간 OTT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있다”면서 “다만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해외 사업자는 규제대상에서 제외됐고, 내용 심의나 광고 규제 등 사후규제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희경 교수<사진2>는 유럽과 일본 사례를 주목했다. 유럽연합(EU)은 2007년부터 시청각서비스규제(AVMSD)를 통해 방송과 실시간·비실시간 OTT를 규제하고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동일서비스 동일규제’를 적용하는 원칙을 두고 있으나 자국 문화 보호 시스템이 존재한다. 지난해에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도 규제권에 들였다.
일본에서는 OTT를 통신서비스로 간주해 전기통신사업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규제기관인 총무성은 OTT를 통신네트워크 없이 콘텐츠를 전송하는 상위 레이어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이나 영국처럼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없다. 경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규제를 도입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김 교수는 “OTT 규제는 ‘왜 규제하는가’라는 고민으로 출발해 목표나 철학이 명확히 명시돼야 한다”면서 “미디어의 사회적 영향력을 규제 근거로 보고 있는데 이 영향력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해외 사업자와의 공정경쟁 문제는 어떻게 바라볼 건지, 기존 방송사업자의 역할도 어디까지인지 등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무리한 입법화보다는 OTT 사업자를 현행대로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 지정하되, 등록사업자로서 시장 획정, 해외 사업자 규제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해외 규제 모델을 토대로 국내 시장 상황을 고려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다만 규제의 정도와 수준에 대해서는 업계별 이해관계에 따라 조금씩 의견이 갈렸다.
국내 첫 통합 OTT로 지난달 18일 출범한 웨이브(WAVVE)의 노동환 정책협력팀장은 OTT 규제 반대 입장을 역설했다. 초기 단계인 OTT에 규제를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해외 사업자가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역차별 문제도 호소했다.
노 팀장은 “OTT는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정돼 있고 관련 법상 규제를 이미 받고 있다”면서 “불법 정보 유통과 청소년 유해 콘텐츠 등과 관련해 이미 내용적 규제를 받고 있는데 프레임 자체를 규제 공백으로 가져가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외 어느 국가도 실질적인 OTT 규제를 하고 있는 곳은 없다”는 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OTT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미디어 전반에 대한 규제 재검토가 필요하다”면서 “글로벌 사업자의 망 이용대가 역차별 등 관련 이슈를 해소하는 정책도 선행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현행 규제를 유지하되 OTT 시장을 제대로 진단하고 규제 수위를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신흥 OTT 서비스와 경쟁을 펼쳐야 하는 지상파 및 유료방송 업계는 규제 논의에 있어 국내 미디어업계의 전반적인 성장과 진흥이 전제돼야 하는 점을 강조했다.
김유정 MBC 정책전문위원은 “해외 OTT 규제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자국 시장 상황에 따라 규제의 목표 설정이 돼 있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한 한국의 경우 기존 방송 규제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의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미디어 규제 패러다임에서 진흥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호철 한국케이블TV협회(KCTA) 팀장은 “OTT가 성장하면서 기존 유료방송시장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면서 “유료방송 사업자는 서비스 가격이나 시장 진입, 콘텐츠 편성 등에 있어 사전 규제가 많은 만큼 규제를 완화해 자유로운 콘텐츠 수급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송종현 선문대학교 교수는 국내외 OTT들이 단순한 경쟁 구도로 흘러가는 현 흐름을 경계했다. 송 교수는 “내로남불도 아니고 한쪽에선 규제를 없애자고 하고, 한쪽에선 강화하자고 하는 게 혼란스럽다”면서 “시장 상황, 사업자, 기술적 수준을 고려해 규제를 합리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글로벌 OTT와의 경쟁 역시 예를 들어 넷플릭스와 국내 OTT의 투자 규모는 큰 차이가 난다”면서 “맹렬하게 달려가는 호랑이(넷플릭스)에게 맞서 싸우려고만 할 게 아니라 꼬리를 잡고 올라타 같이 달리는 방향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도 국내와 비슷한 수준에, 최소한의 규제를 하는 형태로 입법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