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의 소재·장비·부품 자립화가 주요 의제로 대두됐지만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산하 연구기관들은 열악한 환경으로 예산마저 삭감되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수출규제 대응과 관련해 주도권을 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박선숙 의원(바른미래당)은 2일 여의도 국회에서 진행된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국내 소재연구 대표 연구소인 ‘재료연구소’가 공간 부족으로 지하 실험실을 확대해온 실정을 지적하며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에게 개선을 요구했다.
박선숙 의원은 “재료 연구소에서만 22개 지하 연구실을 운영하는 게 국가연구실의 현실”이라면서 “일본에서는 연구개발 사업 기간을 5년에서 7년으로 확대했고, 한국이 일본과의 격차는 물론 중국과의 격차에서도 많이 따라잡혔다”고 지적했다.
박선숙 의원에 따르면 창원시가 전 육군대학부지를 제2재료연구소 부지로 제공했으나 올해 예산 확보에 실패, 부지 면적을 9만7805㎡에서 4만5000㎡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0년 예산안에도 설계비가 아닌 단순 기획비 5억원만 반영한 상태다.
박 의원은 “창원시가 지상연구소를 새로 만들 공간을 무료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과기정통부가 예산 배정을 하지 않아 축소됐다”면서 “사람과 시설, 자료 모두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 미래를 책임지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최기영 장관은 “어려운 상황임을 알고 있다”면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해서는 장기적으로 일본이 하는 방식이 맞고, 한국은 단기적으로 급속하게, 인기 있는 것에 몰려가는 문제가 있다”면서 “추경이나 예타 면제가 생길 텐데 더 파악하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소재·부품 장비 육성 의제에서 과기정통부가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수출규제 관련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범부처 협력이 부족해 정부 부처간 ‘칸막이’가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소재·부품 장비와 관련해 과기정통부는 비껴 있고 산자부가 주도하고 있다”면서 “지능형 반도체와 첨단소재도 산업부, AI·데이터와 블록체인은 기재부가 나섰는데 혼란스러운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또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취지에서 벗어나 세미나처럼 진행되고 있어 재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최기영 장관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등 여러 회의체를 이용해 다른 부처와 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아직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열지 못했으나 드론, 자율주행차, 소재부품 등을 다 같이 협의하고 있으며 앞으로 문제가 해소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일본 수출규제와 소재부품 자립화가 과기정통부의 핵심 의제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5G 경쟁력 강화 대책은 소외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간 반도체 전문가로 꼽히는 최기영 장관이 5G 현안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잖았다.
이종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과기정통부가 소부장 대책에 중점을 두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5G 서비스는 거의 뒷전에 밀리고 있다”면서 “소부장 따로, 5G 논의 따로 할 게 아니라 두 영역을 접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 장관은 “5G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소부장이 잘 돼야 5G 문제도 잘 되기 때문에 양쪽을 똑같은 주축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과기정통부가 내놓은 ‘5G+’ 정책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에도 “빅3(지능형 반도체·바이오 헬스케어·미래자동차)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면서 “잘 정비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