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그룹 IT자회사인 우리FIS의 대표가 우리은행 최고정보화책임자(CIO)를 겸직하고, 또 우리은행 IT기획단장이 우리FIS의 은행서비스 그룹장을 겸직한다.'
우리금융그룹이 22일 발표한 IT부문 조직개편에 대해 금융권 CIO들의 반응은 대체로 조심스러웠다.
'남의 집 얘기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금융권의 불문율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 경험해 보지못한 IT조직 편제에 대해 뭐라고 논평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언뜻보면, 이번 우리금융그룹의 IT부문 조직 개편은 그로테스크한 추상화같다. 보기에 따라 과감한 혁신, 극약처방, 위험한 도박 등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사연많은 우리금융그룹 IT의 역사를 모른다면 더욱 그럴 수 있다.
우리은행과 우리FIS는 그룹내 동일 계열사지만 엄연히 IT아웃소싱 계약을 주고받는 별도 법인이다. 그러나 이제 양 조직의 최고책임자는 동일인이 맡게됐다. 갑과 을, 견제와 균형, 건강한 긴장관계, 협업과 시너지 등 보이지않는 가치를 한 사람의 최고 책임자가 정밀한 균형감을 가지고 실행에 옮겨야한다. 이게 과연 쉬운 일일까.
우리금융그룹은 왜 이처럼 파격적인 IT조직 개편안을 도출하게 됐을까.
최근 우리금융그룹은 노진호 전무를 그룹 CIO로 영입한 이후, 조만간 과감한 IT조직 혁신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막상 이번에 공개된 IT조직 개편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우리금융그룹은 왜 이렇게 파격적인 IT조직 개편을 시도를 하게됐는지 그 이유와 근거를 몇가지 측면에서 짚어본다. <편집자>
◆우리FIS 대표가 우리은행 CIO 겸직?... 우리금융그룹에선 처음 아니다 = '파격'이란 단어로 표현되지만 우리금융그룹에선 사실 크게 놀랄일은 아니다. 전후 맥락상 상황은 지금과는 다르지만 '겸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4년전이다. 2005년 1월, 당시 우리금융그룹은 우리은행 CIO 역할을 맡고 있었던 김종식 전산정보사업단장을 우리FIS 사장으로 임명한다. 이 때부터 김 단장은 약 2년간 우리은행 CIO와 우리FIS 대표직을 겸직하게 된다.
다만, 이번 조직 개편에선 우리은행 CIO의 지휘를 받는 IT기획단장도 우리FIS의 '은행서비스 그룹장'을 겸직하게 됐는데 최고책임자가 아닌 실무 본부장급 라인에서의 갑과 을의 겸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 당시, 우리은행 직제에는 IT기획단장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상황만 놓고 본다면, 마치 데자뷔처럼 14년전의 우리금융 상황과 엇비슷하다. 앞서 2004년 9월, 김종식 단장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1기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 (지난해 5월초,개통한 우리은행 차세대시스템은 2기 시스템으로 분류된다.)
2005년 '겸직'을 결정할 당시, 우리금융그룹은 우리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라는 최대 IT현안을 막 마무리한 시점이었다. 이어서 우리금융그룹 내부의 IT 안정화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었다.
14년이 흘러, 지난해 5월, 2기 차세대 프로젝트를 완료한 우리은행의 상황, 그리고 이제는 그룹의 IT역량을 집중시키고 IT 안정화를 꾀해야하는 지금의 상황이 당시와 비슷하다.
◆우리FIS 대표 / 우리은행 CIO 겸직... 결과는 어땠나? = 14년전의 상황을 가지고 현재를 해석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때와 지금은 많이 것이 변했다. 다만 결과적으로 당시 우리금융이 선택한 이같은 '겸직'전략은 나름대로 분명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당시에도 우리은행과 우리FIS간에는 '갑'과 '을'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고, 우리FIS 내부의 조직 분위기도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2000년대 초반, 우리금융그룹이 출범하면서 기존 우리은행(한일+상업)을 비롯해 광주은행, 경남은행 소속의 IT직원들까지 물리적으로 통합시켜 우리FIS가 출범했다.
우리FIS의 주축 구성원들이 기존한솥밥을 먹던 은행에서 분리돼 나온 IT인력들이란 점을 감안했을때, 계열 금융회사들과 우리FIS간에 형성되는 갑과 을의 정서적 느슨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비효율은 우리금융그룹 입장에선 상당한 고민거리였다.
그런 고민 과정에서 당시 우리FIS의 대표/우리은행 CIO 겸직이 결정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겸직 체제로 전환된 이후, 결과적으로 성과는 좋았다는 점이다. 2005년~2007년, 이 시기를 거치면서, 내부의 진통이 뒤따랐지만 우리은행과 우리FIS간의 역할이 보다 분명해졌고, IT개발 프로젝트에 따른 성과평가가 이전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서로의 정체성이 분명해진것이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당시 주요 외주 개발업체였던 한국IBM과 비교해 우리FIS를 동일선상에 놓고 동일한 잣대로 성과평가를 진행하고, 이를 경영성과에 반영하는 등 우리FIS의 조직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FIS는 출범 초기의 어수선함을 극복하고 우리금융그룹이 원했던 IT허브 전략인 SSC(Shared Service Center)로서의 위상을 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우리금융그룹이 14년전의 긍정적인 기억에 근거해서 그룹내 IT조직 총괄책임자의 '겸직' 전략을 선택했다면 이번 선택은 충분히 납득하고 수긍할만하다.
당시 '겸직'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했던 김종식 단장은 2007년4월, 경영지원부문 부행장으로 승진하면서 IT조직을 떠났고, 이후부터 우리은행 CIO와 우리FIS 대표의 겸직은 없어졌다.
김 단장은 우리은행 총무, 기획, 경영지원부서를 두루거친 비 IT부서 출신이었다. 이번에 겸직 역할을 맡은 이동연 우리FIS 사장도 비 IT부서 출신이다.
◆우리금융 IT조직 개편 핵심 키워드 '원 팀'(One Team)... 무슨 의미? =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이번 IT조직 개편의 의미에 대해 "이번 IT조직 개편으로 우리은행과 우리FIS의 원팀 협업체제를 더욱 강화했다"고 강조했다. 형식적인 수사같지만 실제로 이 말에는 우리금융그룹 IT조직의 현재의 문제가 응축돼있다.
뒤짚어 말하면 지금까지 우리금융 IT조직은 '원팀'으로 볼 수 없는 이질감이 존재했다는 의미다. 우리금융그룹은 이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이번 IT조직 개편에 담았다. '우리은행과 우리FIS간 직원들의 상호파견 교류'를 분명히 명시한 것은 이를 반영한다.
그동안 금융IT업계 전문가들은 우리금융그룹 IT조직 부문의 문제로 우리은행과 우리FIS간에 경직된 소통문화를 꼽아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은행(갑)과 우리FIS(을)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소통문화가 자리잡았고, 그렇다보니 건전한 견제와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리금융그룹은 다른 금융그룹들과 달리, 우리은행을 포함한 계열사들은 IT기획 기능만 있을뿐 자체 IT개발 및 운영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기능은 직원수 650명 안팎의 우리FIS가 맡고 있다.
따라서 양 조직간의 원활한 소통, 건전한 견제와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부작용이 고스란히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금융IT업계 전문가들은 당초 지난해 2월 설연휴때 오픈될 예정이었던 우리은행 차세대시스템이 5월초로 연기된 책임도 근본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은행과 우리FIS간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소통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우리은행과 우리FIS간의 정서적 격차를 없애고, 'IT 기획과 개발및 운영'조직을 하나의 유기체(One Team)로 복원시키는 것이 우리금융그룹이 달성해야만하는 최대 IT현안이다. 손태승 회장이 그룹의 IT 현안과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번 IT조직 개편은 남들의 눈에는 매우 과격하게 보일지 몰라도, 우리금융그룹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과연 의도한대로 우리금융그룹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느냐인데, 이는 앞으로 지켜봐야할 관전포인트다.
◆손태승 회장의 승부수, 과연 '성공한 IT조직 모델'로 이끌 수 있을까 = 손태승 회장은 올해 1월, 신년기자간담회에서 "우리FIS의 인력 일부를 우리은행 IT조직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은행-우리FIS간의 수직적 의사소통 문화를 개선하기위한 차원으로 당시 손 회장의 발언은 받아들여졌다. 손 회장의 발언 이후 우리FIS 직원들은 적지않게 술렁거렸다.
따라서 이번 IT조직 개편에선 당시 손 회장이 언급했던 내용들이 어느 정도 방법론적으로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다만 우리FIS 직원이 우리은행으로 '전직'하는 것이 아닌 상호 파견의 형태의 모습을 취해 조직의 충격을 최소화 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FIS의 조직을 기존대로 유지하면서도 상호파견을 통해 우리은행과의 IT 교류 면적을 넓히고, 나아가 '원 팀' 조직력을 복원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실제로 우리금융그룹 관계자는 "이번 IT조직개편에 따라 기존 우리FIS 직원 12명이 우리은행 IT기획부로 파견돼 새롭게 합류하게 됐다"며 "이로써 우리은행 IT기획부 인력은 80명선에 육박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내 금융권에서, 은행과 그룹 IT자회사간 상호 인력교류가 활발한 대표적인 사례는 하나금융그룹이 손꼽힌다.
하나금융그룹 IT자회사인 하나금융티아이는 자체 IT인력을 KEB하나은행에 파견하는 형식으로 IT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자체 IT기획뿐만 아니라 개발, 운영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하나금융티아이의 IT직원을 파견 형식으로 받고 있는데, 이같은 파견 인력 비율은 지난 수년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하나은행 IT부문 임직원들도 하나금융티아이에 일정 기간 파견돼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은행 CIO과 하나금융티아이의 대표가 겸직을 하지는 않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룹 IT전략이 지향하는 SSC 모델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도록 지향하고 있다.
SSC 모델을 국내에선 처음 시도한 우리금융그룹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금융이 성공한 IT조직 모델을 일부분 벤치마킹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진행된 일련의 우리금융그룹IT조직의 변화는 손태승 회장의 과감하고 세밀한 승부수로 평가된다. 어떻게보면 이 방법말고는 상황을 타개할 해법이 없었는지 모른다.
우리FIS 대표와 우리은행 CIO 겸직이라는 초강수로 인해 당분간 우리금융그룹내 IT조직의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조직 개편의 진정성이 그룹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우리금융그룹은 의외로 빨리 디지털 및 IT부문에서 다시 강력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