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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세상은 5G, 정책은 2G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SK텔레콤의 5G 요금인가 과정을 보면서 들은 생각이다. 신고만 하면 되는 KT와 LG유플러스는 왜 멀뚱하게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을까.

이동통신에 유선보다 빠른 5G 서비스 등장을 앞두고 있지만 사업자간 경쟁과 정부의 대응방식은 여전히 2G 시절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9일 SK텔레콤의 5G 이용약관(요금제 포함)을 인가했다.

SK텔레콤은 이달 25일 과기정통부에 5G 요금제 인가신청서를 접수했다. 지난 2월 27일 이후 두번째였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중소량 이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 이례적으로 요금제를 공개 반려했다. 당시 SK텔레콤은 7만5000원, 9만5000원, 12만5000원 등 3종의 요금제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 반려라는 정부의 초강수에 결국 SK텔레콤은 5만5000원 수준의 중가 요금제를 마련해 다시 인가신청을 했고, 상용서비스 일주일을 앞두고 요금인가가 이뤄졌다.

재미있는 점은 SK텔레콤의 요금인가와 함께 같은 날 KT와 LG유플러스의 이용약관 신고도 완료됐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이동전화시장 지배적 사업자라는 신분 때문에 요금제를 정부로부터 인가받아야 한다. SK텔레콤은 이번 요금제 인가에서 보듯 정부와 지난한 협의과정을 거친다. 반면, KT와 LG유플러스는 신고사업자다. 그냥 신고만 하면 된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SK텔레콤이 요금제를 인가받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KT와 LG유플러스는 왜 가만히 있었는가이다. 망구축 상황, 품질, 콘텐츠 경쟁력이 경쟁사보다 뛰어나다고 홍보하면서도 요금제는 먼저 내놓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이동전화 시장의 고질적 병폐가 여실히 드러난다. 담합으로 보일만큼 유사한 요금제는 인가제의 부산물이다. KT와 LG유플러스는 언제나 1위 사업자의 요금을 주시하며 그보다 조금 더 나은 혜택을 담은 요금제를 신고한다. 시장 1위 사업자보다 비싼 요금제를 내놓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파격적인 요금제도 아니다.

KT와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의 요금인가가 이뤄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날 5G 요금약관을 신청했다. LG유플러스는 같은 날 요금제를 먼저 공개하기도 했다. 내용은 알려진 SK텔레콤의 요금제와 큰 차이가 없었다. 가격도 5만5000원, 7만5000원, 9만5000원에 데이터 제공량도 비슷했다. 차이는 중저가 요금제에서 데이터 제공량이 조금 더 많았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언론, 업계를 통해 “얼마정도라더라”는 금새 나온다. 상대방의 패를 보고 게임에 임하는 것이다. 화끈한 경쟁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요금인가제나 상호접속료 등은 대표적인 비대칭규제다. 선발사업자의 발을 묶고 후발사업자에 힘을 실어준다. 시장이 초기이고 1위 사업자의 지배력이 월등할 때는 필요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을 정체시키는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다.

경쟁을 활성화 시키는 근본적 대책이 없다보니 매번 정권이 바뀔때마다 사업자 팔목을 비틀어 요금을 인하하는 상황만 반복된다. 조동호 후보자는 세상에 등장하지도 않은 5G에 대해 보편요금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사업자간 치열한 경쟁은 소비자에게 이롭다. 당연히 정부 정책방향에도 부합한다. 이동전화 무제한 요금제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3G 시절 아이폰을 독점한 KT에 대응하기 위해 SK텔레콤이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무제한 요금제를 꺼내들었다. 이후 무제한 요금제가 보편화됐다. LG유플러스가 LTE 망구축에 올인하면서 3G에서 4G로의 전환이 빨라졌다. 3G나 LTE나 모두 세대전환을 후발사업자들이 주도했다. 정부가 망투자하라고 독촉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소비자 후생 확대, 정보보호, 보편적서비스 가치 등에서의 정부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후발사업자를 배제시키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면 정부가 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공정함을 저버리고 차별적으로 이용자를 배제하는 것 역시 정부가 감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ICT 정부부처의 정책은 제자리 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공약을 수행하려다보니 그동안 힘들게 쌓아왔던 경쟁정책(알뜰폰)은 뒷전으로 내보낸다. 5G 상용화 일정에 주체인 통신사들은 없다. 정부가 나를 따르라는 식이다. 미국 버라이즌의 상용화 일정 공개에 화들짝 놀라 정부, 통신사, 제조사가 황급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리 유쾌한 장면은 아니었다. 여전히 요금제는 정부가 좌지우지하려 한다.

이동전화 속도는 VR, UHD 콘텐츠를 나를 만큼 빨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업자의 경쟁마인드와 정부의 정책방향은 텍스트 방식의 2G다. 정부의 정책, 사업자의 경쟁감각도 시장현실에 맞게 업그레이드 될 필요가 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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