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오래전부터 디스플레이 굴기에 나선 중국은 지난해 양으로 한국을 압도했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액정표시장치(LCD)와 같은 제품은 중국에 빠르게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 결과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은 실적 악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굳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지난 1분기 실적을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중국이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협하리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속사성을 알고 보면 무작정 손가락질만 하기 어렵다. 우선 각종 기기에 장착되는 디스플레이 패널은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국 내 생산량이 많다. 일종의 자급자족이 되는 셈이다.
다른 각도에서 우리나라 기업이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현지 공장이 필수적이다. 디스플레이 패널은 반도체와 달리 무관세 품목이 아닌 데다가 덩치가 커 물류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논란을 빚은 LG디스플레이 광저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공장 진출만 해도 그렇다. 관세와 물류비용, 그리고 현지 고객사를 고려했을 때 LG디스플레이는 반드시 현지에 공장을 지어야 했다.
결론은 OLED로의 전환이다. 다만 이 지점에 있어 각 기업의 사정이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예컨대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LG디스플레이는 대형에서 각각 강점이 있다. 기기 교체주기가 서로 다르고 디스플레이 시청 패턴의 변화로 인해 중소형이 대형보다 더 상황이 낫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 기업의 빠른 OLED 대처다. 물론 한 번에 수율을 높일 수 없고 기술격차가 분명해서 확실한 선 긋기는 가능하지만, 블랙홀 같은 중국 내수 시장의 깊이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활용할 수 없는 C급 패널까지 활용하고 있어서다. 심지어 죽은 패널도 파는데 이런 건 스마트폰 실물 크기 모형에 사용하므로 사실상 100%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장비 업체들에 기회로 작용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디스플레이는 반도체와 달리 후공정뿐 아니라 전공정 장비까지 상당 부분 국산화가 이뤄져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중견·중소기업의 대중국 수출이 늘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디스플레이 굴기 덕분이다.
업계에서는 중국과의 확실한 격차 유지를 위해서는 선행개발과 함께 전방산업과의 애플리케이션(적용 분야) 발굴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훌륭한 디스플레이를 개발, 이를 전방산업으로 확대·연계할 수 있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발톱 드러낸 中 반도체 굴기=디스플레이와 달리 반도체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가장 큰 불확실성은 현재 중국 반도체 굴기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와 있느냐는 점이다. 중국의 가장 큰 무기는 ‘돈’이다. 지난 2015년에는 중국 국영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를 제안하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실패했지만 이 시장에서 어떤 야심을 품고 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우회적으로 대만 업체에 손길을 뻗쳤으나 마이크론의 영향력으로 인해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 필요한 인력은 급한대로 수급했으나 공정기술이나 장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자산을 얻지 못한 것. 이를 근거로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당분간 큰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최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우한의 반도체회사 XMC를 시찰했다. 이 자리에서 핵심기술 확보를 반복하며 독자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이끌 것임을 시사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예상보다 빠른 반도체 굴기의 성과를 재촉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걸맞은 투자 암시다. 직후 3000억위안(약 50조6200억원)을 조성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 마련됐다는 외신보도가 나온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기술격차가 분명하지만 이미 칭화유니그룹 등은 DDR3와 같은 낮은 수준의 D램을 생산해 국내에 공급하고 있다. DDR4를 비롯해 LPDDR4, GDDR6 등 차별화된 제품을 우리 기업이 생산하고 있으나 DDR3 시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물량을 늘리며 양산이 이뤄지면 분명한 타격이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버텨야 하는 시기가 온다는 예상까지 있다.
디스플레이와 마찬가지로 국내 장비 업체들에는 기회로 작용하겠지만 그동안 중국이 반복한 첨단산업 규제 등을 고려하면 토사구팽 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이들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치킨게임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승자가 됐으나 이후부터는 국가 사이의 새로운 주도권 확보를 위한, 전혀 새로운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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