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지난 '4.27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의 분위기는 완연하게 달라졌다. 6개월전, 살벌한 북폭 시나리오가 난무했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기적과도 같은 변화다.
앞으로도 북미정상회담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제는 '남북경협'을 얘기하고, '대륙 철도'를 얘기하고, '통일'을 얘기한다.
이쯤에서 시계를 16년 전, 2002년의 어느날로 돌려본다.
당시 외환은행은 '사이버 평양지점'을 개설한다고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평양의 중심가인 '창광거리'를 배경으로 사이버 평양지점을 개설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외환은행측은 당시 강성모 민주평통이북5도 부의장 겸 린나이코리아의 회장을 평양지점 초대 명예지점장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사이버 평양지점'에선 인터넷예금과 대출 환전 등 기존 인터넷뱅킹을 통해 이용할 수 있었던 모든 은행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이 고향인 실향민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실향민을 위한 게시판도 운영했다.
뿐만 아니라 사이버 평양지점에선 북한상품 전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금강산 관광 예약신청도 받았다. 외환은행 인터넷에 접속하면, 당시 창광거리의 이미지로 화면을 구성한 인터넷뱅킹서비스가 제공됐다. 창광거리는 지금도 평양에선 핫 플레이스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창광거리 구역에 '미래과학자거리' 조성 소식이 국내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만약 지금 사이버 평양지점을 꾸민다면 VR(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 훨씬 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서비스가 가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이버 평양지점'은 어디까지나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일종의 인터넷뱅킹 콘텐츠의 하나일 뿐이다. 사이버 평양지점 개설을 위해 외환은행이 사전에 북한 당국과 협의를 거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이북이 고향인 사람들이 주로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통계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앞서 1998년6월,IMF 금융위기의 여파로 이북 5도민이 주축이돼 설립됐던 동화은행이 퇴출되면서 실향민들의 상처는 컸다. 이북 실향민들의 아픔을 어느 정도 흡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이버 평양지점은 나름 실적에서도 선방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술적으론 별거 없는 인터넷 컨텐츠일 뿐이지만 당시의 기준으로 봤을때, 시중 은행이 '사이버 평양지점' 브랜드를 시장에 맘편하게 내놓는다는 것은 당시의 우호적이었던 남북 관계가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도 적극적으로 반영됐음을 의미한다.
역사적인 금강산관광이 시작되고, 개성공단이 본격 가동되면서 남북화해 무드의 데시벨은 사실 지금보다 더 높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서 2000년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트면서 시작됐다. 이후 남북화해 기류는 급물살을 탓다.
하지만 이러한 남북간 화해분위기도 악재가 발생했다. 연평해전 등 서해상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고, 2003년 참여정부 출범이후에는 DJ정부 당시의 불법 대북송금 특검으로 남북관계에 냉랭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더구나 대외적으론, 9.11 테러 이후 미국 공화당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불량 국가'로 지정함으로써 대북제재 카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경협도 한계를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05년까지 남북한의 예술공연 교류 등 남북 해빙무드에 기반한 여러가지 이벤트는 계속 이어졌지만 그 이상의 묵직한 진전이 없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외환은행 사이버 평양지점도 어느순간부터 더 이상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버 평양지점을 열었던 10여년뒤, 외환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해 KEB하나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역사적으로 사라진다.
지금 KEB하나은행 인터넷뱅킹 사이트에선 사이버 평양지점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은행측이 다시 예전처럼 '사이버 평양 지점'을 만들려고한다면 쉽게 만들 수 있겠지만 사실 다시 개설한다고 하더라도 남북화해 무드를 이용한 이벤트 성격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이제는 '사이버 평양 지점'이 아니라 실제로 평양 창광거리에 점포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실제로 평양에 국내 은행 지점(점포)가 개설된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즉, 남과 북의 금융거래가 가능하게됐다는 것은 현재의 정전 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된다는 것을 전제해야만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는 또한 북한의 비핵화 조치로 대북경제제재가 완화된 상황을 가정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 1995년,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댓가로 미국은 1000㎿급 경수로 2기를 만드는 사업을 약속한다. 이를 지원하기위한 실무 국제 기구인 KEDO가 출범하고, 2001년 함경남도 신포·금호지구에 2008년 완공 예정으로 경수로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외환은행이 출장소를 현지에 출장소를 운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특수한 상황이었고 그나마도 2007년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 공조의 실패로 성과없이 막을 내렸다. 이후 이에 반발한 북한의 핵개발을 노골화되면서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역사에 있어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1994년 제네바 합의이후, 정상적으로 국제 공조가 이뤄졌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빨리 한반도에 해빙 무드가 찾아왔을지 모른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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