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는 6월중 발간예정인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 2017년판 특별호>에 수록된 주요 내용중 일부를 요약해 공개합니다. 본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침과 무관합니다. <편집자>
[기고] No Digital Lipstick(무늬만 디지털뱅크는 가라) - 싱가포르 DBS 사례
글: 최인규 투이컨설팅 사장
CEO의 디지털 열정
세계에서 디지털기술을 가장 잘 구사하는 은행(brick-and-mortar bank)이 어디인지 물어보면 아마도 대부분 웰스파고, BBVA, 씨티, US Bank 등을 첫 손에 꼽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16년7월 글로벌 대형 은행들을 제치고 DBS(Development Bank of Singapore)가 유로머니지(紙)에 의해 ‘월드 베스트 디지털뱅크’로 선정됐을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과연 DBS 디지털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 DBS는 어떻게 해서 디지털 최강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을까?
DBS의 CEO인 Piyush Gupta가 취임한 시기는 2009년이다. 핀테크가 바야흐로 본격적인 시동을 걸 때였다. Piyush Gupta는 알리바바의 영향력을 지켜보면서 은행이 디지털 투자에 소홀히 할 경우 머지않은 장래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취임 이후 현재까지 빅데이터, 인공지능, 바이오매트릭스 등 디지털기술 인프라 재구축에 무려 50억 싱가포르 달러(4조 원)를 쏟아부으면서 핀테크와 디지털뱅크 시대에 대비해왔다.
또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판단 하에 직원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교실에서의 디지털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직원들이 스타트업과 협력하여 직접 모바일 뱅킹 앱을 개발하는 독특한 형식의 5일짜리 DBS 해커톤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한 최고혁신책임자(Chief Innovation Officer) 직책을 신설하여 자칫 보여주기 식으로 흐르기 쉬운 디지털 전략을 중심을 잡고 일관성 있게 끌고 나갈 수 있도록 확실하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Piyush Gupta는 맥킨지와의 인터뷰에서 신규 경쟁사 및 스타트업과 비교해보니 단순히 '디지털 립스틱(digital lipstick)'만 바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단순히 립스틱을 바르고 외형만 예쁘게 꾸민다고 진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듯 DBS는 진정한 디지털 뱅크로의 탈바꿈을 위해 프로세스, 고객경험, 조직문화를 모조리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DBS의 ‘디지털 진격’
DBS의 CIO로서 디지털 혁신을 리드하고 있는 닐 크로스(Neal Cross)는 ‘디지털’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디지털뱅킹은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은행 서비스를 부드럽고 일관성 있게 만들어서 고객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서비스가 다가오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 말을 마치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DBS는 일련의 다양하고 편리한 디지털뱅킹을 선보였다. 간편 송금 PayLah!㈜, 중소기업 대상 SME banking,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연계해주는 프로그램인 DBS BusinessClass 등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2016년 3월 29일, DBS는 쉽고, 재미있고, 직관성이 뛰어난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새로운 모바일 뱅킹 앱 ‘digibank’를 출시했다. 은행 업무는 물론 증권, 보험, 그리고 커머스와도 연결을 해 놓은 DBS의 새로운 모바일뱅킹 앱은 다양한 기능과 정보, 그리고 디자인 면에서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단어의 끝에 강조하는 의미로 ‘Lah’를 덧붙이는 것은 싱가포르식 영어(Singlish) 표현이다. 싱가포르에서는 Okay를 Okay Lah, No를 No Lah라고 말한다.
DBS는 중국과 대만 홍콩 등 중화권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인접 국가인 인도네시아에 관심을 갖고 현지 6위 은행인 다나몬(Danamon)의 인수를 시도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제동이 걸려 결국 무산되었다. 이를 계기로 DBS는 오프라인보다는 디지털뱅크를 통한 해외 진출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그 첫 번째 시도로 인도 금융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이전에 인도 오프라인 금융을 공략했지만 여의치 않았던 경험을 살려서 이번에는 방향을 전환하여 디지털로 인도 금융시장 공략에 나선다.
인도는 IT 강국답게 디지털뱅크를 운영하기에 최적의 시장 조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인도 정부는 일찍이 2009년부터 생체인증 데이터베이스인 ‘아드하르(Aadhaar)’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거의 모든 인도 성인이 아드하르를 발급받았고 ATM 등 금융거래에 활용하고 있다.
DBS는 2016년 4월, 인도 최초의 모바일뱅크인 digibank(싱가포르 digibank와는 전혀 다른 버전이다)를 선보인다. 계좌개설 등 본격적인 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뱅크로는 인도 최초의 케이스이다. 모바일 지갑(e-wallet)은 물론 가상 비서(Virtual assistant) 기능까지 탑재한 최신 버전의 모바일뱅크인데 앱의 직관성과 편리성이 매우 뛰어나다. DBS는 인도 금융시장 진출을 계기로 digibank를 이용하여 인도네시아, 홍콩 등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시사점
1. 디지털투자는 Quick Win을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실행해야 한다.
고객에게 새롭고 매력적인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더라도 초기 관심을 넘어서 고객의 습관까지 바꾸기는 예상보다 매우 어렵다. 아직도 앱보다는 플라스틱 카드를 긁는 것이 훨씬 더 빠르고 편하다는 사람이 많다. 어떤 디지털 기술이 고객에게 정착되기까지는 꾸준한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보여주기 식의 일과성 디지털 기술 적용(소위 digital lipstick)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디지털 인력의 양성이 디지털 기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미국, 유럽의 대형은행의 경우 디지털 인력만 수 천명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계속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전문 인력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체계적으로 디지털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며 이와 관련하여 관련 전담 조직의 신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3. 디지털뱅크는 태생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모델에 적합하다.
디지털에는 국경이 없다. 디지털뱅크의 영역을 국내로만 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협소한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그리고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예금, 카드, 중금리 대출 등의 리테일 업무를 놓고 디지털뱅크로 한판 승부를 겨루는 것은 마치 풀장에서 고래들이 다투는 것과 같다. 정체된 은행의 성장 동력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서도 디지털뱅크를 무기로 동남아를 비롯한 신흥국으로의 진출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4. 디지털뱅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고객경험이다.
우리나라 은행의 스마트뱅킹 수준이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편의성, 직관성, 일관성, 그리고 개인화 서비스 등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이제 모바일 퍼스트를 넘어 모바일 온리 시대로 접어들면 고객이 모바일 뱅킹 앱의 만족도 수준을 평가하여 거래은행을 선택할 날이 그다지 멀지 않았다. 특히 매일 사용하는 기능에서 의외로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