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 김광옥의 관전 ②] ‘금융 차세대시스템’ 추진 비용과 그 해법
이번 '김광옥의 관전'의 주제는 ‘금융 IT 투자 비용’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와 관련한 비용입니다.
은행권의 경우, 지난 2000년 중반 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구축했던 차세대시스템이 노후화되면서 다시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으로 명명된 새로운 시스템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은행, 보험, 카드, 증권, 캐피탈 등 업종을 불문하고 차세대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7년~10년을 주기로 전산시스템의 교체를 고민해야하는 금융회사로서는 차세대시스템 사업이 매우 중차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추진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자주 돌출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의 비용 문제 때문입니다. 발주사(금융회사)가 생각하는 차세대시스템 추진 비용과 이를 수주한 IT업체가 생각하는 비용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은행권의 경우 최근 3년간 발주된 사업 규모를 기준으로 한다면 대략 프로젝트 총액은 2200억~2500억원이 소요됩니다. 이르면 올해 1분기에 발주될 것으로 예상됐던 KB국민은행이 아직 발주 일정을 확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사이즈가 작은 2금융권은 회사의 규모별로 다르지만 과거보다는 높은 가격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10여년전인, 지난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20~30%정도는 사업 금액이 늘어나 보입니다.
그러나 IT업계에선 이 정도 수준으로는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에서 요구하는 개발범위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IT업체들의 ‘불만’은 물론 근거가 분명합니다.
지난해 말, 2100억원 규모의 산업은행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가 두 번씩이나 유찰된 끝에 주사업자를 선정한 것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원인이 있습니다. IT업체 입장에선 “그 금액으로는 개발이 힘들다”고 하소연합니다. IT업계쪽에서 판단한 금액은 산업은행의 예가보다 훨씬 높은 2500억원 수준입니다.
10년전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이슈는 ‘프로덕트 팩토리’의 도입, 프레임워크 기반의 유연한 시스템 환경 구현 등 PI 및 레거시(Legacy) 시스템의 혁신에 주로 맞춰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존 레거시 중심의 차세대시스템 개발 업무 범위 외에도 디지털뱅킹 및 모바일, 스마트금융을 지원하기 위한 영역까지 개발 범위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여기에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IT 개발자의 인건비도 크게 올랐습니다. '자바' 등 적용되는 기술도 매우 혁신적으로 바뀌었고, 개발자를 풍부하게 확보하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여기에 단순히 10년과 비교해 물가상승률도 상당합니다.
즉, IT업체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낮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특히 3년전, 삼성SDS가 금융SI 시장에서 발을 뺀 후 IT서비스 업계에선 더 이상 가격경쟁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상 공급자 독과점 시장으로 변했습니다. IT업체들로서는 사업거리가 많은데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차세대사업을 수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금융IT혁신포럼 김광옥 회장(사진)은 이같은 국내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사업 비용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과 관련,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상당히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 다만 발주자측에서 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야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은행의 입장에서는 차세대시스템 추진 비용을 크게 늘릴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적은 비용으로도 차세대시스템의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김 회장은 농협 CIO 시절 유닉스 기반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으며, IBK시스템 대표로 재직시 IBK기업은행의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2014년)에 참여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다음은 이에 대한 김광옥 회장의 견해를 정리한 것입니다.
'차세대시스템 추진 비용의 갭, 왜 발생하는가'
수천억원의 비용을 투입하고도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가 사용자(고객)의 만족도를 채우지 못하는데는 몇가지 원인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기술 외적인 문제도 있다. 이것이 서로 맞물려서 프로젝트의 잠재적 위험(Risk)를 키운다. 그리고 차세대시스템처럼 프로젝트 규모가 클수록 그 위험성은 훨씬 커진다.
◆“차세대 사업은 긴 여정, IT 거버넌스의 확립이 필수”= 먼저, 금융회사 CEO는 차세대 프로젝트에 돌입하기전에 프로젝트 성공에 필요한 거버넌스 체계가 확실하게 확립됐는지 파악해야 한다. 주어진 시스템 개발 요건만 잘 수행한다고 차세대 프로젝트가 뚝딱 완성되는 게 아니다.
차세대시스템과 같은 대형 IT사업은 과정 자체가 험난하다. 기획단계, 예산승인 단계, 업체 선정과 계약, 시스템 개발, 종합테스트에 이르기까지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 과정에서 외부에선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외부에 밝힐 수 없는 사연도 많다.
이러한 외부 변수를 차단하고 일관된 정책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이는 전적으로 CEO(최고경영자)의 책임이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부장급 등 추진 실무자들까지 간혹 바뀌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우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
조직의 변화 과정에서 시스템의 개발 범위도 수정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기획 입안단계에서 그려졌 청사진이 도중에 변형되면 차세대 프로젝트 예산에도 그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돼야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의 성패는 ‘조직의 힘’에서 결정된다. 실무자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최종 개발 완료까지 인사이동 없이 근무할 수 있는 안정감을 부여해야한다.
일반적으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대부분 당초 원안보다 개발 요건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때부터 주사업자, 개발에 참여한 IT업체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주사업자는 사업의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워진다. 이는 프로젝트가 부실화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결국 IT업체는 수익을 맞추기 위해 인건비를 줄이려할 것이고, 그렇다보면 투입 인력의 부실화가 진행된다. 현실적으로 프로젝트가 눈코뜰새 없이 긴박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 (발주자) 입장에선 그들을 엄격하게 검증하지 못한다. 부실화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제값을 주지 않으면 좋은 프로젝트를 보장받기가 힘들다.
물론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CIO(최고정보화담당임원)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같은 상황을 미연에 막으려면, 차세대시스템 추진에 전권을 가진 CIO가 먼저 외부 변수를 철저하게 차단시켜야한다. IT에 깊은 식견이 없는 CEO가 프로젝트에 개입할 경우 이를 차단하는 설득 논리를 만드는 것은 CIO의 역할이다. 기획과 실행, 책임까지 져야한다. 책임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CIO는 실무진과 격의없는 소통을 해야한다. 자기도 모르게 개인의 의견에 치중하면 실패 가능성이 커진다. CIO는 자신의 임기에 연연하기 보다는 차세대시스템이 완성된 이후를 보는 덕목과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프로젝트의 성패는 이미 사전 기획, 컨설팅에서 결정된다” = 현재 국내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진행 과정은 매우 정형화된 루틴을 따른다.
예를 들면, 먼저 외부 전문 IT컨설팅업체에 의뢰해 다양한 형태의 ‘차세대 컨설팅’을 진행한다. 이어 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회사는 적정한 수준에서 개발업무 범위를 결정한다. 필요한 예산을 산정해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받는다. 이어 IT업체 선정 등 행정절차를 거쳐 2년여의 개발 및 테스트 일정을 잡고, 최종 시스템 이전을 완료한다.
하지만 본인의 경험상, 차세대 프로젝트의 완성도는 외부 IT업체에 차세대 컨설팅을 의뢰하기 이전부터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외부 컨설팅에 앞서, 금융회사 IT부서와 현업이 치열한 자체 토의를 거쳐 향후 10년후를 바라보는 방향 설정이 우선돼야한다. 이 과정을 거친 이후에 컨설팅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향후 발생할 이견과 오류를 줄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오류를 줄이는 것, 그 자체로 상당한 IT비용절감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IT업체에 희생 강요하는 건 청산해야할 과제" = 차세대시스템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권이 몸에 배인 나쁜 습관에서 스스로 탈피해야한다. 국내 금융권에는 아직도 '가격 후려치기'를 당연시하는 관행이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갑’과 ‘을’의 개념에서 차세대를 포함한 IT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들을 보는 것은 위험하다. 개발범위 등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발주자와 IT업체간의 '비용의 갭'이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발주자가 IT업체를 '봉'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것은 청산해야 할 적폐다. 또한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위해 제3의 업체를 들러리로 세우거나 하는 일도 결코 바람직 스럽지 않다. 시장 가격을 존중해야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아끼려고 한다면 절대 인건비를 깍지 말아야 한다. 과거 CIO를 맡아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시절에 ‘협력업체 직원들의 인건비는 무조건 제대로 쳐줘라’라고 담당 직원들에게 당부했었다. 이는 옳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프로젝트 주사업자를 맡은 IT업체도 변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수주에만 목적을 두지 말고 진정 프로젝트가 성공할수 있는 방향 제시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협력업체들과 모든 공을 공유해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IT업체들간의 팀워크가 좋지 않으면 역시 프로젝트 완성도에는 금이간다.
◆"금융회사, 자체 IT인력 투입비율 늘려야...프로젝트 완성도 높이고, 비용절감도 가능“ = 엄격한 업체 선정 과정을 거쳐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위한 공식 계약이 금융회사와 IT 개발업체간에 체결된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사실상 갑과 을이 바뀌게 된다. IT업체가 계약서상에는 ‘을’이지만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갑’이 된다는 인식을 해야한다. 금융회사는 IT 개발업체가 프로젝트에 몰입해서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한다. 단순히 관리자 또는 감시자의 입장에서 IT 개발업체 인력들을 바라보면 안된다.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비용은 어쩌면 부수적인 문제일 수 있다. 이같은 발주자와 참여 IT업체간의 공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작업의 누수를 방지하고, 결과적으로 비용을 절약하는 지름길이다.
지나고나서 느낀 것이지만, 한가지 조언을 하자면 금융회사 내부 직원들의 프로젝트 투입 비중을 더 높였다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을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 완성도를 위해 외부 IT업체에만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내부 인력이 적극적으로 개발에 참여해서 협업 구조를 기존 보다 강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비용을 줄이는데도 자체 투입 인력 비율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기존보다 자체 인력 비중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금융회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리 = 박기록 기자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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