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스마트폰 대중화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10년 초반의 일이다. 당시 삼성전자, LG전자는 구글 레퍼런스(표준) 스마트폰을 공급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만 HTC에 자리를 빼앗겼다. 지금은 덜하지만 당시 레퍼런스폰의 위상은 상당했다. 애플 아이폰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어수선하고 정돈되지 않은 안드로이드폰 진영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레퍼런스폰을 바탕으로 HTC는 ‘디자이어’라는 이름의 스마트폰을 출시했고 국내에서는 SK텔레콤이 독점으로 선보였다. 삼성전자의 첫 ‘갤럭시S’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제품의 디스플레이는 S-LCD(삼성전자-소니 합작법인, 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만든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가 장착됐는데 그해 9월을 기점으로 액정표시장치(LCD)로 바뀌게 된다.
HTC는 디스플레이가 달라진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서 “OLED보다 LCD가 더 나은 배터리 성능을 제공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은근슬쩍 마이크로SD 카드 용량을 8GB에서 16GB로 올려줬다. 이후 “삼성이 부품공급(OLED 패널)을 하지 않았다”면서 “주요 부품이 경쟁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삼성 입장에서는 갤럭시S 시리즈에 OLED 패널을 공급해야 하니 외부에 부품을 공급할 여력이 별로 없었다. 실제로 OLED는 삼성전자가 판매하고 있는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확대 적용됐으며 지금도 공급량이 소비량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물량이 부족한 상태다.
HTC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홍하이정밀공업(폭스콘) 때문이다. 얼마 전 폭스콘은 샤프를 인수합병(M&A)했다. 그리고 샤프는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던 LCD 패널을 더 이상 제공치 않기로 통보한 상태다. 폭스콘의 목적과 삼성전자의 대처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 및 전망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급한 집안에서 선공을 날렸다는 점이다. 톺아보면 삼성전자, 그러니까 VD사업부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는 이유다. 무엇을 원하던 비즈니스 차원에서 아쉬운 쪽은 폭스콘이다.
특히 TV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연간 2억2000만대 수준의 TV 시장은 2년 연속으로 출하량이 줄어들었을 정도로 정체되어 있다. 과거에는 누가 만든 LCD 패널에 어떤 액정배열 기술을 사용했는지가 상당히 중요했지만 지금은 이런 내용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업계가 전반적인 상향평준화에 도달했다. 삼성전자도 TV 라인업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뿐 아니라 BOE, AUO 등에서 LCD 패널을 공급받고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LG디스플레이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돌이켜보면 2014년도 그랬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출범하면서 소니 물량이 빠지자 매출액이 곤두박질쳤지만 중소형 OLED 시장에서 97%의 압도적인 점유율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실적도 크게 좋아졌다. 후방산업과 전방산업의 이해관계가 같지는 않겠지만 삼성전자가 당장 TV 생산을 걱정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폭스콘의 의도는 결국 삼성 흔들기에 있어서다.
2010년, 스마트폰처럼 TV도 스마트TV라는 딱지를 붙이고 진화를 거쳤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소비자는 ‘스마트’를 보고 TV를 구입하지 않았고 활용도에 있어서도 스마트폰에 비해 떨어졌다. TV 시장이 정체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TV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기 원했다. 언제까지 해상도나 화면크기 타령을 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시간이 흘렀어도 그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다.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만들지 못하는 화질칩부터 같은 평판TV여도 이중사출로 차별화된 디자인까지 확실한 1등과 초격차 DNA가 새겨져 있다. 그러니 폭스콘이 이리저리 귀찮게 해도 우왕좌왕 해서는 곤란하다. 확실한 비전으로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믿음을 보일 필요가 있다.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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