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조 단위의 돈을 배팅하는 주파수 경매 얘기다.
정부가 최근 이동통신 주파수 경매계획(안)을 발표하고 최종 의견수렴에 돌입했다. 주파수 할당공고를 통해 1개월 간의 신청기간을 거친 후 수조원대의 주파수 경매전이 4월 중 시작될 예정이다.
주파수 경매는 타짜가 등장하는 도박판과 비슷하다.
물론, 사기 도박판에서는 바지, 기술자, 설계꾼 등이 합심해 호구를 바보로 만들지만 경매는 다르다. 주파수 경매는 예술품 등 일반경매 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단순히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이 승리하는 것과도 다르다. 제한된 플레이어가 있고, 승패는 가려지지만 한쪽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아서도 안된다.
도박판과 경매의 유사점을 얘기하는 이유는 바로 설계자의 의도 때문이다. 비정상적인 도박판에서는 제아무리 난다긴다하는 아마추어 고수더라도 주최측의 설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플레이어들은 최대한 지혜를 짜내고 때로는 상대방의 승리를 방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하지만 도박이나 경매나 설계자의 의도대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두차례 경매, 미흡했던 설계도=주파수 설계도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가 그렸다.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은 이번까지 총 3번의 합을 맞췄다.
2011년 첫 주파수 경매는 논란으로 점철됐다. 당시 정부의 주파수경매 설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경매에 나온 주파수가 적었고 최대어 꼽히던 2.1GHz 대역에 SK텔레콤과 KT의 입찰을 제한해 경매취지가 퇴색됐을 뿐더러 경매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선택 폭이 좁아진 SK텔레콤과 KT는 1.8GHz를 놓고 무려 83라운드를 경합하는 치킨게임을 벌였다. 결국 SK텔레콤이 승리했지만 최저경쟁가격 2배 이상인 9950억원을 지출해 '승자의 저주'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첫 번째 경매가 논란이 되자 정부는 두 번째 경매에서는 입찰라운드를 50번으로 제한하고 마지막은 밀봉입찰 한번으로 끝내는 혼합방식을 도입했다. 결과적으로 경쟁취지를 살리면서 사업자 선택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차 경매당시 '승자의 저주' 논란을 의식해 주파수를 너무 저렴하게 공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미래부는 이와 관련 감사원 감사를 받기도 했다.
◆올해 주파수경매는 광대역 확보에 초점=올해 주파수 경매에는 2차 때와 마찬가지로 혼합방식이 적용됐다. 설계의 기본적 목적은 이동통신 3사에 광대역 주파수를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다. 돈이 많다고 주파수를 싹쓸이 할 수도 없다. 광대역 블록은 최대 1개에만 입찰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하지만 언제나 더 인기 있는 주파수대역이 있기 마련. 2011년 첫 번째 주파수 경매 때처럼 이번에도 2.1GHz 주파수가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2.1GHz 경쟁은 의외로 조용히 끝날 가능성도 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1GHz 경매가격과 SK텔레콤, KT의 재할당대가를 연동시켰다. 즉, SK텔레콤과 KT가 2.1GHz 대역에서 마음껏 배팅할 수 없도록 설계한 것이다. 미래부는 전파법에 의한 것으로 후발사업자에 대한 배려나 유효경쟁정책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과거 방송통신위원회는 경매제도 도입시 800MHz 주파수에 대한 재할당과 경매가격 연동 주장에 대해 "인위적으로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만약 LG유플러스가 2.1GHz 대역을 가져갈 경우 2.6GHz 독점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독점 방지 및 균등배분을 통한 경쟁활성화를 달성할 수 있다. 미래부는 복수의 광대역 주파수를 가져갈 수 없도록 설계했다. 모든 사업자는 1개의 광대역 주파수만 가져갈 수 있다.
◆많아도 적어도 문제…주파수 적정대가는?=또 하나 정부의 주파숙 경매 설계(안)에는 적정한 대가을 받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반영돼 있다. 일단 설계상 2.1GHz의 주인은 LG유플러스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최저경쟁가격이 다른 대역의 2배 전후다. 2011년처럼 최저경쟁가격에 가져가더라도 특혜 논란을 잠재우고 LG유플러스에게도 금전적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과거 경매 사례를 볼때 최종 낙찰가를 MHz당 계산하면 연간 약 34억 정도였다. 정부가 세수확보를 위해 무리하지 않는다면 최종 결과를 30억원대로 보고 설계를 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2.1GHz 대역의 경우 1MHz당 연간 38억원 가량이다. 과거 주파수 대가를 감안하면 이번 경매에서는 2.1GHz 최저경쟁가격이 기준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래부는 경매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수준 입찰을 지속하도록 규정한 활동규칙을 도입해 사업자들이 경쟁하지 않고 주파수를 가져가는 것을 방지했다. 활동규칙과 밀봉입찰은 경매의 지나친 과열을 막으면서 동시에 경쟁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주파수 경매는 도박판처럼 속임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두뇌와 자금, 그리고 배짱의 싸움이다. 물론, 때로는 도박판처럼 블러핑이 필요할 수도 있다. 미래부는 이통사들의 니즈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 주파수 경매 설계(안)을 내놨다.
정부의 설계대로 사업자들이 움직일지, 아니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할지 이통3사의 전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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