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밀운불우(密雲不雨). 어떤 일의 조건은 모두 갖췄으나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말하는 사자성어다. ‘주역’에서 유래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진영이 갈등을 거듭하고 인터넷TV(IPTV)가 케이블TV를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논박이 오가는 방송시장 상황과도 비슷하다.
지상파 방송사는 지난 1일부터 케이블TV에 신규 주문형비디오(VOD) 공급을 중단했다. 케이블TV는 12일부터 MBC 광고송출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양쪽은 이미 1월에도 이 문제에 봉착했던 바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중재로 실행에 옮겨지지만 않았을 뿐이다.
지상파와 케이블 갈등은 더 많은 돈을 받으려는 쪽과 더 적은 돈을 주려는 쪽의 충돌이다. 콘텐츠를 쥐고 있는 쪽은 그것을 무기로, 플랫폼을 쥐고 있는 쪽은 그것을 무기로 상대의 목줄을 죈다. 하지만 양쪽은 동반자다. 콘텐츠가 있어도 보여줄 곳이 없으면 헛것이다. 플랫폼이 있어도 볼거리가 없으면 헛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배를 가르기 전에 말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SO와 방송채널사업자(PP)의 이견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SK텔레콤은 작년 11월 종합유선방송(SO) 업체 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계획을 발표했다. 케이블TV CJ헬로비전을 인수해 IPTV 사업을 하고 있는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합병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인가 여부 심사가 진행 중이다. KT와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는 반대 입장이다. 최고경영자(CEO)까지 원색적 비난에 나선 상황이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의 갈등은 통신을 통한 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마당에 서로 신성장동력으로 삼는 분야가 같아서 생긴 문제다. 유료방송가입자 점유율은 KT가 1위다. IPTV 사업을 시작한지 6년. 올해 손익분기점(BEP)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제 돈 좀 벌어볼만한데 강력한 2위가 등장할 위기다. 달가울 리 없다. LG유플러스도 그렇다. 1위와 격차는 있지만 2위를 두고 싸웠던 상대가 갑자기 저 멀리 달아난다. 유료방송 전략 전체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해관계자의 충돌은 어떤 분야에서든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경우는 드물다. 현재 상황은 산업의 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부재가 초래한 바가 크다. 비전이 없으니 각자도생을 추구하게 되고 상생보다 나만의 이익을 쫓은 결과가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런 문제는 사업자간 자율조정이나 의견수렴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말이 좋아 자율이고 의견이지 어차피 주장은 같다. 결국 정부가 합리적 제도와 유료방송 전반에 대한 발전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