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여름에 고온 다습하고 겨울에는 축축한 충칭(重慶)은 인구 3300만명의 거대 도시다. 양쯔강이 흐르는 이 곳은 역사적으로도 유서가 깊다.
중일전쟁때는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배수의 진을 친 천연의 요새이기도 하고, 지금은 직할시로 승격됐지만 과거에는 사천(四川)성에 속해 있어 중국 개혁 개방의 총설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고향으로도 인식된다. ‘충칭 임시정부’때문에 우리 역사와도 인연이 닿아있다.
SK주식회사 C&C가 처음으로 중국에서 ‘스마트 팩토리(Samrt Factory)’사업을 하게 될 홍하이(鴻海)그룹 계열의 폭스콘 충칭 공장을 지난 21일 방문했다. 번잡한 도심과는 대조적으로 외곽에 위치한 공장 주변은 조용했다.
“폭스콘 공장이 외부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SK주식회사측에서 지원나온 안내자는 다소 들뜬 목소리로 폭스콘 방문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기자들에게 강조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견학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번 견학은 ‘폭스콘 충칭 공장이 스마트 팩토리로 구현되기 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의 성과를 확인하는 견학이 아니라 혁신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따라서 기자는 폭스콘 공장 내부에 들어가기전 ‘왜 중국은 스마트 팩토리로의 전환을 원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됐다.
물론 여의도 면적보다 큰 공장을 2시간 내로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쉬운대로 프린터를 생산하는 L5, L6 구역에서 진행되는 작업과정을 지켜보았다. 참고로, L5 구역은 프린터, 플라스틱및 금속 부품, 케이스 등을 생산한다.
L6 구역에서는 고가의 SMT(Surface Mounting Technology : 표면실장기술) 장비를 활용해 메인보드를 만드는 공정을 수행한다. L10 구역은 L5, L6 단계를 거쳐 넘어온 부품을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라인으로 이번 견학에선 공개되지 않았다.
폭스콘은 애플사에 제품을 납품하는 회사로 국내엔 잘 알려져있지만 충칭 공장은 애플과는 상관없는 모니터와 프린터를 OEM(주문위탁방식)으로 주로 생산하는 공장이다.
물론 SK주식회사는 중국내 다른 지역에 위치한 폭스콘 공장으로 스마트 팩토리의 영역이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라인 풀가동하는 폭스콘 공장… ‘불황’ 무색 = 현재 폭스콘 충칭 공장은 일년 중 가장 바쁠 때다.
공장을 안내하는 회사측 관계자는 “중국은 2월 춘절(우리의 설날) 연휴기간이 15일 정도 되기 때문에 미리 작업량을 당겨서 하느라 1월중 작업량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폭스콘 충칭 공장은 주 5일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1월에는 특별히 춘절 연휴를 감안해 토요일에도 특근을 한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폭스콘 충칭 공장의 작업시간은 하루 20시간이며, 10시간씩 2교대이다. 아무리 물량이 밀려도 24시간 풀 가동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국내 언론들은 이제 중국의 연평균 성장률 7% 시대가 무너졌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충칭 공장의 놀라운 가동율을 보면 그리 피부적으로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충칭 공장은 점심시간 1시간을 빼고 휴식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스마트 팩토리를 도입한다고 해서 충칭 공장의 시설이 낙후됐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국내 여느 대기업 제조공장과 비교해도 공장자동화 등 생산설비체계는 그 자체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충칭 공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근무 강도나 작업환경에 대한 생각을 직접 그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갖지 못한점은 아쉽다.
스마트 팩토리가 도입되면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좋아지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질의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다소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질문을 던졌다 하더라도 홍하이그룹 담당자들은 아마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강력한 ‘중국식 제조-생산모델’.... 이젠 한계에 직면했나 = 견학을 해보니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위상은 외형상 이전과 조금도 달라진게 없어 보였다.
다만 충칭 공장을 둘러보면서 국내 제조업과 비교될 만한 몇가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국내에선 업종을 불문하고 1개의 완성품업체와 여러개의 부품업체가 협력을 맺는 '1대n'의 협업구조가 일반적이다. 회사 몸집이 크면 클수록 경기변동에 대한 시장 리스크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가급적 핵심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충칭 공장에선 L5 구역에서 프린터의 외형틀을 찍는 사출 공정, L6구역의 기로회판 제작, 그리고 이후의 물류 등 모든 과정이 공장 자체적으로 이뤄진다. ‘A to Z’ 형의 거대한 일관생산방식 체계다.
이는 현재 공장자동화 수준이 꽤 높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2만4000명이나 되는 많이 인원이 필요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중국의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 구조도 이같은 중국다운 일관생산방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제 이같은 전통적 중국식 제조-생산 모델을 유지시키기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듯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은 20년전의 중국이 아니다.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워졌다.
거기에서 파생된 문제가 하나 둘 씩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중국도 노동자들의 인건비가 상승해 기업들이 경영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환경오염 등으로 고급 생산설비와 같은 자본재를 많이 투입해 친환경 고부가가치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또한 노동자들도 이제는 더 이상 힘든 노동을 하려들지 않는다. 소득이 늘어나면 3D업종을 기피하고 서비스업으로 몰리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같은 현상은 이제 중국 내륙지역인 충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SK주식회사와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공동추진하는 홍하이그룹 계열의 IT계열사인 맥스너바측 관계자는 “충칭 지역의 인건비가 지난 5년새 평균 2배 이상 가파르게 올랐다”고 밝혔다.
장대함을 추구했던 하드웨어의 중국, 그러나 이제는 질 높은 소프트웨어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홍하이그룹은 이번 스마트 팩토리의 효과로 친환경, 무인화. 무서류(Paperless)를 꼽았다. 그것이 가지는 함축적인 의미는 결코 적지않다.
중국 정부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2025’와 같은 국가적 아젠다를 가지고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를 서두르는 이유다.
◆‘스마트 팩토리’ 프로젝트의 본질....'혁신과 사람'에 대한 투자 = 지난 1990년대 초, 덩샤오핑은 보수 강경파를 견제하기위해 다시 한번 ‘남순강화(南巡講話)’를 결행했다.
그 결과 중국은 다시 20여년간 초고속 성장을 질주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리고 지금은 군사적으로도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 최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중국 정부가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난해 제시한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술의 혁신만을 담고있지않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일, SK주식회사와 홍하이그룹이 공동으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축사를 한 조우칭(周靑) 충칭시 경제기술위원회 주임은 이 국가적 프로젝트의 5개 핵심 과제를 소개하면서 그중 하나로 ‘인재(人材) 중심의 성장’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인재중심의 성장’은 중국 노동자의 질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는 곧 소프트웨어(SW) 중심의 중국, 고부가가치 생산기지로서의 중국을 향한 의지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충칭 정부가 이번 '스마트 팩토리' 시범 사업을 통해 생산성의 혁신적인 변화 못지않게 노동자의 역할 변화에도 주목하겠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스마트 팩토리는 노동자의 역할 변화가 전제되는 사업이기도 하다. 이번 ‘스마트 팩토리’ 사업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역시 기존 생산라인을 셀(CELL)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존 10명이 하던 일을 앞으로는 2~3명의 숙련된 노동자가 관리, 처리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숙련되고 고급화된 노동력이 투입돼야한다.
즉, 숙련된 노동자를 길러내고 육성할 수 있느냐도 결과적으로 혁신적인 기술 요소 못지않게 스마트 팩토리 성패의 매우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스마트 팩토리가 단순히 30%의 인력절감만을 위해 사용하는 화려한 포장지가 아니라면 앞으로 노동자의 재교육도 많이 조명돼야할 부분이란 생각이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보면, 스마트 팩토리가 구현되면 이전보다 숙련된 노동자 1인의 관리 업무 범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당연히 노동자는 늘어난 역할만큼 임금을 더 받을 수 있고, 자기 업무에 대한 로열티를 더욱 강하게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새로운 혁신적인 자본재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자본력이 막강한 중국 기업들이 주저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노동자의 가치를 높이는 일, 즉 인재성장 중심 정책에 중국 정부나 기업이 어느 정도 열의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는 앞으로 4~5년간 유심히 지켜봐야할 부분이다.
◆중국 제조업이 '스마트 팩토리'로 재무장에 성공한다면? = 지난 20여년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온 중국이 다시 스마트 팩토리의 옷을 입고, 재무장에 성공하게 될 경우를 가정해보자.
불편한 상상이지만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자 이제는 치열한 경쟁상대가 된 중국인 만큼 꼭 한번은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더 이상 중국은 값싼 중저가 제품을 내놓는 나라가 아니고 무시할 나라도 아니다. 이미 스마트폰과 같은 프리미엄 IT시장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는 주목을 받고 있다.
앞으로 중국내에서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고급 자본시설에 투자가 몇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그 결과에 대한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번 폭스콘 충칭 공장의 스마트 팩토리 혁신 계획을 지켜보면서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다.
기술혁신 투자와 인재 육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는 ‘쉬운 해고’에 포커스가 맞춰진 노동개혁 관련법 때문에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우리 국내 상황을 보면 안타까움은 더해진다.
지난 23일 충칭에는 눈이 내렸다. 중국 대륙을 덮은 혹한의 날씨가 남서부의 따뜻한 도시 중칭에 25년만에 겨울눈을 내리게 한 것이다. 현지인들은 이를 1월에 내린 서설(瑞雪)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많았다.
갑작스러운 눈 때문에 불편한 일정이었지만 스마트 팩토리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볼 좋은 시간이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충칭(중국)= 박기록 기자>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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