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세계 1, 2위 TV 생산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관련 사업에서 최근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어 그 배경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트 업체들의 실적 악화가 후방 산업인 패널 업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TV 업계의 어려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패널 수요 감소, 가격 하락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TV 완성품 시장 상황은 얼마나 나쁠까. 지난 1분기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은 14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삼성전자 CE 부문에는 TV 사업을 맡는 영상디스플레이사(VD)사업부가 소속돼 있다. 1분기 삼성전자 CE 부문이 적자를 내자 당시 전자 업계에선 냉장고와 세탁기 등 생활가전사업 외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도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했다. 삼성전자 CE 부문은 2분기 2100억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지만, TV 사업의 이익률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꺾였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LG전자 상황은 더 안 좋다. LG전자에서 TV 사업을 맡는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는 1분기와 2분기 각각 62억원, 827억원의 적자를 내며 반등에 실패한 채 상반기 실적 결산을 마감했다. 어떤 산업계든 1위와 2위 업체가 적자를 내거나 제대로 이익을 보지 못하면 대내외 경영 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정도현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사장)는 지난 7월 29일 열린 2015년도 2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신흥시장 통화가치 하락으로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TV 사업은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하반기 성수기 시즌에 접어들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사업 실적이 회복될 것이라는 긍정적 예상을 내놓긴 하나 ‘대폭’ 개선은 어렵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명진 삼성전자 IR팀 전무는 지난 7월 30일 열린 2015년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TV 사업을 포함한 CE 부문은 하반기 성수기 효과로 상반기 대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며 “하지만 환율 영향(신흥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큰 폭의 개선’은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 시황 악화를 체감한 TV 업체들은 올해 판매 목표를 하향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흥국 통화 가치 하락, 미국 달러 초강세
세계 1, 2위 TV 업체를 적자로 내몬 주범은 환율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달러화의 강세는 지속되고 있다. 2015년 8월 21일 현재 미국 달러 인덱스는 95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작년 10월 31일 87.01에서 9.1%나 껑충 뛰어오른 수치다. 달러 인덱스는 유럽(유로), 일본(엔), 영국(파운드), 캐나다(달러), 스웨덴(크로네), 스위스(프랑) 6개국 통화와 비교해 미국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지표는 지난 3월 31일 100을 웃돈 100.31을 기록하며 과거 12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 신흥국 금융 시장의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게 돼 있다. 달러와 연동되는 국제 유가 역시 하락한다. 이 같은 영향으로 러시아와 브라질 등 천연 에너지가 주요 수출 품목인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폭락했다.
러시아가 특히 문제다. 작년 10월 미화 1달러당 러시아 통화는 43.07루블이었으나 지난 8월 22일에는 달러당 68.97루블로 10개월 새 무려 60.1%나 가치가 하락했다. 브라질 통화인 레알 역시 41.2%나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기준점을 작년 3분기 말로 잡는 이유는 4분기부터 삼성전자와 LG전자 TV 사업부의 이익률 지표가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당시 TV의 주요 부품인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가격은 공급 부족으로 고공행진을 하던 중이서 TV 완성품 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미 달러화의 강세,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은 완성품 업체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주요 부품은 달러로 거래되지만 완성품 거래는 현지 통화로 해야 되기 때문이다.
원가를 감안해 판매 가격을 1000달러 미만으로 내릴 수 없는 TV 한 대를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단순 계산하면 작년 10월 말 러시아에서 이 제품의 최저 가격은 4만3070루블이었지만, 지난 8월 22일을 기준으로 보면 6만8970루블로 값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현지 체감 물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가격을 올리기 힘들다. 따라서 이익이 줄거나 손해를 보고 물건을 팔아야 한다. 값을 올리면 판매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통화 가치 하락은 일반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기 침체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해서 수요 그 자체도 줄어든다.
상반기 삼성전자의 전사 실적에서 이 같은 부정적 환율 요인으로 인한 손실은 1조3000억원에 달했다. LG전자도 1분기 6000억원 가량의 환율 손실을 봤다고 밝힌 바 있다. 2분기 적자 폭이 늘어난 만큼 상반기 환율 손실은 삼성전자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규모가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와 브라질 뿐 아니라 터키, 폴란드, 멕시코, 호주의 통화 가치도 크게 하락했다. 유로화 역시 절하 폭이 적지 않아 서유럽 주요 국가의 TV 시장도 사정이 좋지 않다.
중국 제외한 전 지역 TV 출하 및 매출 감소
이 같은 통화 가치 하락에 따른 영향은 TV 업계의 출하량과 매출 감소를 야기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디스플레이서치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TV 출하량(LCD, PDP, CRT, OLED 모두 포함)은 9791만1900대로 작년 동기(1억313만2800대) 대비 5% 감소했다. 매출액 감소폭은 더 크다. 올 상반기 TV 매출액은 415억5109만5000달러로 작년 상반기(442억8348만2000달러) 대비 6.1% 축소됐다. 출하량과 매출액이 작년 대비 늘어난 지역은 중국이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유럽, 중아 및 아프리카는 전년 상반기 대비 출하량과 매출액이 모두 20% 이상 감소했다. 남미 지역의 경우 저가 제품 판매가 그런대로 괜찮아서 출하량 감소폭은 10% 미만에 그쳤지만 매출액은 20% 이상 빠졌다.
러시아가 포함돼 있는 동유럽 지역의 TV 출하, 매출액 감소폭은 각각 30%에 육박할 정도로 컸다. 주요 TV 업체들은 팔아서 손해를 볼 바에야 물량 자체를 줄여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삼성전자가 1분기 적자를 낸 이후 2분기 턴어라운드에 성공한 반면 LG전자가 1분기 적자에 이어 2분기 적자 규모가 더 늘어난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다. 삼성전자는 동유럽 물량을 크게 줄이고 북미 판매량을 늘렸다. 그러나 LG전자는 북미 지역에서도 오히려 점유율을 잃었던 것이 상반기 적자를 기록한 주된 이유였다. 실제 올 상반기 삼성전자가 동유럽 지역에 출하한 TV는 183만3800대로 전년 대비 36.5% 줄었다. 반면, 북미 지역 TV 출하량은 448만45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LG전자의 올 상반기 동유럽 TV 출하량은 192만28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9% 줄었으나 삼성전자 만큼 물량을 크게 축소시키진 못했다. LG전자는 특히 시황이 좋은 북미 지역에서도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LG전자의 올 상반기 북미 지역 TV 출하량은 159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15.5% 감소했다. 삼성전자와 소니, 비지오 등 주요 TV 업체들이 북미 시장에서 출하량과 매출액 점유율을 크게 늘린 점과는 사뭇 대조된다. TV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대부분의 통화가 미국 달러 대비 약세이기 때문에 올 하반기 주요 TV 업체들의 실적은 북미 지역의 출하, 매출 성적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위안화 절하, 중국은 새로운 변수
중국 TV 업체들은 자국 시장에 주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들 대비 환율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기 부진이 가시화되면서 현지 업체들은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 판매를 늘리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6대 중국 TV 업체(TCL, 하이센스, 스카이워스, 창홍, 하이얼, 콩카) 외에도 LeTV, 샤오미 등과 같은 신흥 업체들이 TV 시장에 가세함으로써 향후 저가 제품군의 경쟁은 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최근 이뤄진 중국 정부의 기습적인 위안화 절하는 세계 TV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중국 업체들이 현지에서 생산한 TV의 수출 가격이 보다 저렴해진다. 물류 측면을 고려하면 중국 대륙에서 생산된 TV는 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판매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되므로 이 지역의 가격 경쟁은 보다 심화될 전망이다.
중국 업체들이 최근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낮은 브랜드 인지도’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기업들과 OEM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중국 하이센스는 최근 북미와 남미 지역에서 샤프 브랜드를 사용키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멕시코에 있는 샤프 LCD TV 공장도 인수했다. 샤프는 북미와 남미 TV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TCL과 콩카, 스카이워스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도시바의 브랜드를 사용하기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한국과 일본의 TV 업체들이 올해 출하 목표를 전년 대비 소폭 낮춰 잡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주요 TV 업체들은 공격적인 목표치를 설정한 것도 눈에 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TV 업체,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중국 업체들로부터 세계 시장 점유율을 뺏기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출하량 목표치를 공격적으로 세우고 있었는데, 환율 문제로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패널 업계는 몸살
주요 TV 완성품 업체들이 이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디스플레이 패널 업체들 역시 향후 실적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세였던 패널 가격은 올해 2분기 초입으로 접어들면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패널 공급량은 과잉이 아니지만. 완성품 제조업체들이 가격 인하를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이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발광다이오드(LED) 백라이트를 포함한 LCD 패널 모듈 가격은 TV 원가의 70~80%를 차지한다. 완성품 업체 입장에선 환율 손실을 메울 방법이 부품 가격 인하 밖에 없다. 지금의 환율 환경이 진정되지 않는 한 이 같은 패널 가격 하락 압박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의 8세대 이상 LCD 패널 라인이 속속 가동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될 경우 디스플레이 패널 업계는 또 다시 한파를 겪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주엽 기자>powerusr@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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