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5일 발행된 <인사이트세미콘> 오프라인 매거진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올해 신형 맥북이 출시되면서 애플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 가운데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 제품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최근에는 아이팟 터치까지 대열에 합류하면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필수가 될 확률이 무척 높아졌다. 그리고 조만간 출시할 아이패드 프로(가칭)에서도 마찬가지다.
글 이수환 기자 shulee@insightsemicon.com
애플은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아이패드 프로는 12.9인치 화면크기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적용할 것이 유력하다. 해상도는 2732×2048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고유의 시각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거 매킨토시 시절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애플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완벽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어떤 기업보다 강하다. 예컨대 2560×1600 해상도를 표현하고자 할 때 맥북 프로에서는 절반인 1280×800으로 다운스케일링이 가능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를 내장한 다른 노트북에서는 본래의 해상도 그대로만 이용할 수 있다. 윈도에서 디스플레이가 표현할 수 있는 해상도를 낮췄을 경우 객체의 세밀함이 떨어지는 경험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플의 경우 화면을 구성하는 점(픽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크기만 줄일 수 있어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레이아웃은 유지하면서 가독성을 높일 수 있다.
애플이 설명하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인간의 망막으로 픽셀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고해상도를 말한다. 첫 적용 제품인 아이폰4는 960×640 해상도에 326ppi(Pixels Per Inch)를 지원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300ppi가 망막이 픽셀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언급했지만 이후에는 이보다 낮은 ppi의 아이패드에도 ‘레티나’라는 단어를 적용한바가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마케팅적인 요소와 함께 조건에 따라 다르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언급한 조건이 ‘거리’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같은 해상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화면크기가 작으면 ppi, 그러니까 디스플레이 밀도를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갤럭시S5와 갤럭시노트3는 모두 1920×1080 해상도를 지원하지만 ppi는 431(5.1인치/갤럭시S5), 386(5.7인치/갤럭시노트3)으로 서로 다르다.
따라서 아이패드 프로가 12.9인치의 화면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존 아이패드 에어2와 같은 2048×1536의 해상도를 갖추고 있다면 ppi는 198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해상도가 2732×2048이라면 ppi는 264를 나타내므로 기존 아이패드의 성능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애플의 고집스런 UI와 사용자경험(UX)이다. 애플은 앱을 개발하는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가이드라인에서 기기에 따라 @1(1배), @2(2배), @3(3배) 기준을 두고 있다. @1은 아이패드2와 아이패드미니, @2는 아이폰6 플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3는 아이폰6 플러스만 해당된다. iOS에서 작동하는 모든 앱 아이콘, 툴바와 내비게이션바, 웹클립과 같은 모든 객체는 이 기준을 권장 받는다. 아이패드2에서 내비게이션바 아이콘 크기가 22×22이라면 아이폰6는 44×44, 아이폰6 플러스는 66×66이다. 개발자가 어떤 iOS 기기를 개발하더라도 손쉬운 환경을 제공하면서 앱스토어 효율을 높이고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픽셀의 밀도를 높인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봐야 한다.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미래, ppi 더 올릴 수 있을 듯=아이폰4 이후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애플 제품에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경쟁사도 마찬가지어서 현재 기준으로 300ppi는 더 이상 높은 수치라고 말하기 어렵다. 솔직히 마케팅적으로도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지원한다고 해서 제품 판매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경쟁력을 앞으로도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간의 시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초 스티브 잡스가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때 업계에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일어났다. 핵심은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과연 단어 그대로 망막을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냐는 것. 이론적으로 망막은 0.6분(1도의 1/60) 이상의 각도로 떨어진 물체를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분은 ‘시각도(Visual Angle)’를 말하는데 문제는 모든 인간의 망막이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데 있다. 저마다 시력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ppi라고 하더라도 시력이 좋다면 안구분해능력(광분해능력)이 높아 화면이 거칠다고 볼 수 있다. 반대의 경우라면 디스플레이 품질이 우수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ppi가 늘어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이와 관련해 8K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는 ‘슈퍼하이비전’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ociety for information display, SID)에 게재된 NHK과학기술연구소의 논문에 따르면 픽셀밀도가 증가할수록 현실처럼 느껴지는 감각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의 광분해능력(Cycles per Degree, cpd)을 일반적으로 30cpd 정도로 보고 있다. 각도 분해능력(Angular resolution), 앞서 언급한 cpd가 상승할수록 현실감(Realness)도 함께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고모델, 프라모델 배, 나비 등의 피사체를 대상으로 했으며 60cpd에서 포화상태를 보였다. 60cpd는 레티나의 2배에 이르는 픽셀밀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의시력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ppi의 증가가 현실감을 높여주는데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할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현실감은 가상현실(VR)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선보이고 있는 가상현실 기기는 머리에 써야 하는 헤드마운드디스플레이(HMD) 형태가 대부분이다. 콘텐츠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대중화되기에는 불편한 구석이 많다. 이런 점에서 애플은 VR보다 증강현실(AR)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AR 스타트업 메타이오(Metaio)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AR는 사용자가 보고 있는 현실에 3D 가상 정보를 겹쳐야 한다. ppi를 지금보다 더 높여 현실감을 강화하고 AR와 결합한다면 웨어러블 기기인 애플워치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애플이 레티나 디스플레이 이후 ppi를 높이기 위한 시도를 계속해서 진행해왔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직접적인 통제에 능숙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레티나+AR=다른 차원의 UX’라는 형태로 상품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이 어떤 형태로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발전시킬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수환 기자>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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