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게 2013년은 악몽과 같은 한 해였다. 실적부진에 비리의혹으로 이석채 회장이 불명예 퇴진하면서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을 쳤다. 이 전 회장의 퇴진으로 위성매각, 아프리카 사업 등 각종 사업이 의심받는 것은 물론, 인사 및 회사 운영 시스템을 둘러싼 고해성사가 쏟아지고 있다.
KT는 삼성전자 출신인 황창규씨를 CEO에 내정,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황 내정자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임원, 현장 및 사무직원, 노조 등 다양한 KT 조직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석채 전 회장 시절 드러난 문제점을 알아보고 앞으로 KT가 나아갈 방향을 진단해 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이석채 회장 부임 초기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이 회장의 KT 입성과 관련한 정치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임기 초반 이 회장이 보여줬던 성과나 추진력은 세간의 우려를 잠재울 만 했다.
KTF 합병에서 보여줬던 추진력, 아이폰 단독도입 및 CI 변경 등을 통해 KT는 공기업 한국통신에서 올레KT로 변화하는 듯 했다.
하지만 사장에서 스스로 회장직에 오르고 자신에게는 관대했던 기준 등으로 이 회장의 성공가도는 막을 내리게 됐다. 무엇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구조가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상명하달 식으로 조직이 운영된 것이 상처를 더욱 키웠다.
특히, 올래KT(외부인사)에 대한 문제점이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인사, 조직평가 등이 올래KT에 집중되면서 소위 라인형성이 본격화됐다는 것이 KT에 오래 몸담은 직원들의 설명이다.
차장급인 KT의 한 직원은 “신년 인사회나 행사 때 이석채 회장이 참석하면 모두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치곤 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상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처음부터 이석채 전 회장이 이 같은 대우를 즐긴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직원들 대부분이 거부감을 느낀 이 같은 환영시스템은 이 회장에게 충성하며 승승장구했던 한 임원이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주변 환경이 갈수록 이 전 회장을 권위적으로 만들고 측근들이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의견개진 구조를 차단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KT의 한 임원은 “톱다운(Top Down)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가 고착화되며 다양한 의견 수렴창구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사업부문별로 권한이 분산돼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회장 주변 몇몇 임원에게 지나친 권력이 집중됐고, 소위 잘리지 않으려면 얘기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임원은 “논란이 된 위성매각, 아프리카 사업 등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진행해도 제동을 걸 수 없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의 경우 팀장, 부장한테도 보고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부러웠다”고 덧붙였다.
최근 퇴사한 정석복 부회장의 경우 평가가 엇갈리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취지 자체는 조직원들의 공감대를 받았다. 하지만 직원들은 거의 범죄자 취급을 하며 청렴을 요구한 반면, 고위층에 대한 감시는 이뤄지지 않은 것이 불만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석채 전 회장은 지난해 9월 2일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임직원을 대상으로 열린 ‘KT LTE-A No.1 결의대회’에서 “회사를 중상모략하면서 임원 행세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나가라고 걷어차야 한다”며 내부 반대세력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이 전 회장의 이 발언은 일부 언론에 7월 적자 기사가 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KT 관계자는 “당시 7월 실적을 알 수 있는 임원이 100명도 채 안됐는데 자료를 유출한 임원을 색출하려고 눈에 불을 켰다. 거의 계엄령 수준이었다. 그동안 많은 자료가 노조측에 넘어갔고, 이를 통해 고발이 이뤄지거나 언론에 기사가 많이 나왔다. 이석채 전 회장은 부동산 매각보다 7월 적자 사건에 대해 더 민감해 한 것으로 보였다. 실적이 좋아졌다고 주장해왔는데, 그것이 통하지 않는 자료가 나온 것에 부담을 느낀 듯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자신의 경영방침에 반대하는 세력은 필요 없다는 식이었다. 어떤 조언이나 반대도 허용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제왕적 권위는 밑에 조직으로 내려가면서 더 큰 폐단을 만들었다. 즉 이 전회장을 중심으로 한 핵심세력, 그리고 그 핵심세력을 중심으로 한 라인들이 3만 조직원 전체로 퍼지면서 ‘인사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KT의 한 지사장은 “흔히 연고주의라고 하지 않느냐. 새로 들어온 사람들한테 잘보여서 고과를 받으면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특정 지역, 학교 출신을 이용해 그런 것을 잘한 사람들은 승승장구했고, 공채 출신에 일만 열심히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승진이 없지만 고과를 한 두번 받으면 보직을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올라갈 수 있다. 맘 먹고 윗사람이 특정 인물에게 고과를 두어번만 몰아주면 그 사람이 지사장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특정 지역, 관계에 있는 사람들만 잘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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