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매년‘국제 슈퍼컴퓨팅 컨퍼런스(ISC)’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빠른 슈퍼컴퓨터들의 순위를 500위까지 발표합니다.
여기서 발표된 리스트는 매년 6월과 11월 두차례에 걸쳐 ‘top500.org’라는 사이트에서 공개합니다.
최근에도 순위가 발표됐지요.
우리나라가 보유한 슈퍼컴퓨터 중 가장 성능이 좋은 기상청의 슈퍼컴 3호기는 지난 6월 순위에서 밀린 31위와 32위를 차지했습니다.(순위가 2개인 이유는 똑같은 시스템 2개로 구성돼 있기 때문입니다. 한 대는 백업용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슈퍼컴 발표에 대해 잘못알려진 것이 있습니다. 바로 슈퍼컴의 국가별 순위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과연 우리나라의 슈퍼컴 순위가 30위권으로 떨어졌다고 해서 당장 IT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것일까요.
만약 말레이시아나 태국이 우리나라 보다 슈퍼컴 순위가 높으면 그 나라의 IT 수준이 더 높다는 의미일까요.
또한 슈퍼컴퓨터 1위를 했다고 해서 IT 강국이 되는 것일까요? 이러한 순위는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일까요.
대체 슈퍼컴퓨터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순위가 높으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요?
또 슈퍼컴퓨터에서도 게임을 할 수 있을까요? 슈퍼컴퓨터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슈퍼컴퓨터에 대한 궁금증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슈퍼컴퓨터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슈퍼컴퓨터라고 부를까요. 단순히 성능이 좋은 컴퓨터를 슈퍼컴퓨터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슈퍼컴퓨터는 말 그대로 초대형, 초고속 컴퓨터를 일컫습니다. 그만큼 슈퍼컴퓨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통의 컴퓨터보다 연산 속도가 수천 배 혹은 그 이상 빠른 컴퓨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슈퍼컴퓨터이란 사실 매우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컴퓨터의 성능이 발전함에 따라 한때 슈퍼컴퓨터였던 시스템도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은 슈퍼컴퓨터가 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기상청이 1995년 처음 도입한 일본 후지쯔의 VPX220-10이라는 슈퍼컴퓨터의 경우, 성능이 1.25기가플롭스(Gflops)에 불과합니다. 플롭스라는 단위는 1초에 부동 소수점 연산(덧셈, 곱셈 등)을 몇번 할 수 있느냐 하는 연산 횟수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 1.25기가플롭스는 1초에 12억 5000만번의 연산이 가능한 수치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성능은 요즘에 출시되는 가정용 PC보다 훨씬 떨어집니다.
최근 슈퍼컴 순위에서 1위를 한 일본 ‘K컴퓨터’의 경우, 무려 1초에 1경회(1경은 1조의 1만배)의 연산이 가능한 10.51페타플롭스 성능을 기록하고 있지요.
이처럼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매년, 아니 매시간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당시에는 슈퍼컴퓨터라고 불렸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구시대의 유물로 퇴색하게 됩니다.
어쨌든 현재 기준으로 살펴봤을 때, 슈퍼컴은 일반적으로 대략 초당 30~50테라플롭스(TFlops) 이상의 속도로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30테라플롭스는 1초에 30조번의 연산이 가능한 수치입니다.
참고로 현재 슈퍼컴퓨터 500위(11월 기준)에 해당하는 시스템의 경우, 50.9TFlops를 기록하고 있지요. 즉, 전세계 슈퍼컴퓨터 중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한 시스템이 1초에 50조번의 연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 슈퍼컴퓨터 순위의 기준은 무엇일까? 무엇을 기준으로 슈퍼컴 순위를 매길까?
그렇다면 이 슈퍼컴퓨터 순위는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일까요.
우선 전세계 슈퍼컴퓨터 순위는 지난 1993년 이래 매년 두 차례(6월,11월) ‘Top 500 사이트 통계(http://www.top500.org)’를 통해 발표됩니다.
이는 슈퍼컴퓨팅 전문가인 미국 테네시 대학의 잭 돈가라(Jack Dongarra) 교수와 독일 만하임 대학의 한스 무이어(Hans Meuer), 미국 에너지국 산하 국립에너지과학컴퓨팅센터의 에릭 스트로마이어(ErichStromaier) 등에 의해 작성된다고 합니다.
일단 슈퍼컴퓨터 순위는 컴퓨터 시스템의 이론적인 성능은 배제하고, 슈퍼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린팩(LINPACK) 벤치마크’ 소프트웨어의 수행 결과치로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린팩은 포트란 프로그램 패키지로, 제한된 시간 동안에 수행할 수 있는 부동 소수점 연산의 덧셈과 곱셈의 수로써 결정되는 것입니다. 즉, 1초에 얼마만큼의 덧셈과 곱셈을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순위가 결정됩니다.
3. 슈퍼컴퓨터는 주로 어디에 쓰일까?
1976년 미국 크레이사에서 개발된 ‘크레이-1’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슈퍼컴퓨터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헤도 주로 미국의 정부기관이나 대학교의 전유물로 사용되면서 극히 제한적으로 이용됐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중반 이후 계산과학 및 계산공학이 실제 물리 현상을 재현하고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 검증되면서 다양한 산업분야로 급속하게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슈퍼컴퓨터는 기상 예보나 원자력 연구, 지진 분석, 금융 등 자연과학 분야와 첨단 공학 분야뿐만 아니라 보험회사, 석유회사, 영화산업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IBM의 슈퍼컴퓨터인 ‘왓슨’의 경우, 현재 의료 부문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왓슨은 언어의 의미와 문맥을 분석하고,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해 구체적인 대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료진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중요한 지식과 사실을 검색해 의사나 간호사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답을 제시함으로써 의료진의 생각과 가설 검증을 도울 수도 있지요,
이처럼 사실 슈퍼컴퓨터는 IT 솔루션이면서도, IT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건설이나 토목, 자동차, 금융, 바이오 등 비 IT 부문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표적 융합 기술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들을 활용해 한 나라 내의 많은 산업들이 보다 빠른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단순히 IT솔루션이 아닌 국가 산업의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4. 슈퍼컴퓨터 가격은 얼마나 될까? "무척 비싸"
시스템 구성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아무리 최소로 구성해도 몇천만원. 일반적으로 우리가 슈퍼컴퓨터라고 부르는 ‘상위500대’ 슈퍼컴퓨터들의 경우 몇십억원부터 몇조원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한마디로 무척 비쌉니다.
5. 슈퍼컴퓨터로도 게임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로 고스톱치냐”
기상청의 날씨예보가 틀릴 때마다 들리는 우스갯 소리입니다. 몇백억원 규모의 슈퍼컴을 도입하고도 왜 날씨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실제 시스템의 성능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는 단순한 슈퍼컴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위에 올라가는 소프트웨어와 인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됐든 슈퍼컴퓨터에서는 일반 PC에서 하는 게임을 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합니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들은 대부분 리눅스 운영체제(OS)로 구성돼 있습니다. 따라서 리눅스가 지원되는 게임들은 슈퍼컴퓨터에서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능이 좋은 기상청 슈퍼컴퓨터 3호기는 지난 6월 순위에서 각각 21위와 22였던 것에서 이번 11월 순위에서는 약 각각 1위씩 뒤로 밀린 31위와 32위를 차지했습니다.
단순히 순위가 뒤로 밀렸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IT 후진국으로 전락했다는 의미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순위가 높은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IT 수준이 높을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슈퍼컴퓨터의 순위 자체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슈퍼컴 보유가 곧 IT강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슈퍼컴퓨터는 IT 솔루션이면서도, 실제 IT분야에서 사용되는 것보다는 건설이나 자동차, 금융 등 비 IT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표적 융합 기술이고 소프트웨어 기술입니다.
즉, 슈퍼컴퓨터는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기계에 머물지 않고 그 국가의 여러 산업에 적용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성장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슈퍼컴퓨터는 우리 주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나 휴대폰 개발부터 석유탐사, 우주 탐구, 암호 해독, 기후 예측, 경기 변동 예측, 금융 상품 설계까지 엄청난 고부가가치 상품과 기술, 핵심 부품 소재를 만드는 데에 주로 이용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 연구기관이나 기업에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실제 실험을 하는 대신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을 돌림으로써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자원을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신제품이나 새로운 서비스들이 빠르게 출시될수록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고 이는 곧 한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국가의 슈퍼컴퓨팅 파워의 중요도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가정마다 1대씩 갖고 있는 김치냉장고 중 위니아만도의 ‘딤채’의 경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I)의 슈퍼컴 활용을 통해 기존보다 빠른 시일 내에 출시된 제품입니다.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을 어느 국가가 더 빨리 개발하느냐, 우주에 누가 더 탐사선을 빨리 보내느냐 등은 슈퍼컴퓨터의 활용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즉, 한 국가의 산업계나 학계에서의 슈퍼컴퓨터 활용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는 이를 통해 당양한 산업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작은 슈퍼컴퓨터(이것을 일반적인 용어로 고성능컴퓨팅(HPC)라고 부릅니다)들을 사용하는 연구기관이나 기업들이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되면 국가 차원에서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 더 성능이 좋은 슈퍼컴퓨터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계속 좋아지는 슈퍼컴퓨터들은 결국 top500.org의 순위에서 점점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중국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슈퍼컴퓨터 순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현재에는 미국 다음으로 슈퍼컴퓨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됐습니다.
슈퍼컴퓨터 순위는 현재의 경제상황이나 국가 경쟁력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관련하여 최근 우리 나라의 침체된 경제상황과 슈퍼컴 순위의 하락이 맞물려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단순히 몇 위를 했다기보다는 500위 내에 몇 대의 슈퍼컴퓨터가 포진해 있느냐가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백지영기자 블로그=데이터센터 트랜스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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