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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슈퍼컴 후진국’ 전락한 대한민국

IT강국이라는 한국의 슈퍼컴퓨팅 파워가 국제무대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3일 독일에서 발표된 ‘슈퍼컴퓨터 톱 500’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순위 밖으로 밀려나는 불명예를 안았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세계 6위에 랭크된 이후 순위는 계속 떨어졌으나 2005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꾸준히 10위권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매번 조사 때마다 보유대수가 줄더니 올해 조사에서는 아예 단 한 대도 들지 못했다.

물론 “슈퍼컴퓨터 순위가 뭐 그렇게 대수냐?
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슈퍼컴퓨터가 가지는 의미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겉보기에 슈퍼컴퓨터는 단순한 연구 장비에 불과해 보이지만 CPU, 네트워크, 데이터 저장장치, 응용 소프트웨어 등 수백만 부품과 최고의 기술이 결합한 결정체다.

국내의 우주 시뮬레이션이나 평면디스플레이와 수소저장합금체 분야의 원천기술 확보 등 수백 개에 이르는 연구 성과도 다 슈퍼컴퓨터의 활용을 통해 탄생한 만큼 ‘슈퍼컴퓨터 = 첨단 R&D의 필수장비’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한 나라의 슈퍼컴퓨팅 기술은 관련 R&D까지 함께 동반 상승시켜 상당한 산업적 파급효과를 낳는데 기여하는
‘국가적 자산’이다.

즉, 한 나라의 슈퍼컴퓨팅 파워는 그 나라의 국가 발전을 대변하는 만큼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슈퍼컴 보유국 31개국 가운데 꼴찌이다. 아시아권에서도 중국·일본은 물론이고 말레이시아에 조차 뒤지고 있다.

아시아 주변국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높은 성능향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리는 IMF 이후로 투자가 계속 연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중국과 일본은 각각 21대와 15대의 슈퍼컴을 보유하며 순위에 올랐으며, 말레이시아도 326위로 순위권에 들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작년 6월 12대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며 140테라플롭스를 기록했었으나 올해는 788테라플롭스를 기록하며 1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단 1대의 500대 순위 슈퍼컴을 보유하지 못했던 중국은 심지어 올해 상하이 슈퍼컴센터에 자국이 직접 제작한 MS 윈도 기반의 ‘Dawning 5000A’을 세계 15위에 올려놓으며 주목받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KAUST)에서 구축한 IBM의 블루젠/P시스템이 새롭게 14위에 랭크되며, 새로운 슈퍼컴 강국으로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물론 기상청 슈퍼컴 3호기와 KISTI의 슈퍼컴 4호기 시스템 구축작업이 완료되는 올해 말 경에는 세계 20위권의 슈퍼컴을 보유할 전망이지만, 이러다가 또 언제 순위에서 빠질지는 모를 일이다.

이를 위해선 관련 법·제도 마련은 물론 슈퍼컴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소프트웨어 차원의 인프라도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슈퍼컴퓨터 육성법(가칭)’의 경우, 정부조직 개편과 경기침체에 따른 대형 현안이 많이 제기됨에 따라 진척 사항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한국에 슈퍼컴퓨터가 도입된 지 21년째다.

선진기술을 따라가기에 급급했건 국내 과학기술 R&D는 다른 국가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으며, 과학기술 경쟁력도 세계 5위, 경제규모 역시 세계 10위권을 고수하게 됐다.

눈앞의 현실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슈퍼컴 육성을 가늠해야 할 때다. 4대강 살리기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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