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디지털산업은 다시 한번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정치·경제·기술 전반에서 혼돈과 격변이 일상화되는 시대,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한 방향성과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절실하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혼돈의 전환기, 산업정책의 나침반을 묻다’를 주제로 창간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이번 특집에서는 ‘새 정부에 바란다’는 대기획 아래, 통신·방송·반도체·AI·보안·게임·유통 등 산업별 핵심 이슈를 심층 분석하고, 각계 전문가 20인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산업계와 정책 간의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또한 유력 대선주자의 ICT 공약 분석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 아래 산업계가 나아갈 좌표를 함께 고민해 본다.[편집자]
'K-반도체 전략' 속 메모리 쏠림…팹리스·소재·장비는 소외
지원보다 조건 많은 정책…중소기업 "실효성 없다" 하소연
중국, 논문·IP로 추격 중…한국은 인재 양성도 구조적 한계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미국은 보조금, 중국은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반면, 한국은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와 학계가 한목소리로 내는 경고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전쟁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특히 산업 생태계 전반의 뿌리가 되는 팹리스(설계), 장비, 소재 기업들과 반도체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학계는 지원은 미미한 반면 규제는 과도하다고 구조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업계에선 출범을 앞둔 새 정부가 보다 균형 있는 산업 정책과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3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그동안 ▲ K-반도체 전략 ▲ 반도체 초격차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 ▲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등 여러 정책을 추진해왔다. 세액공제 확대, 핵심기술 연구개발 과제, 특화단지 지정, 인재 양성 등 다방면의 지원 등이 주 골자로 연간 수조원 대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다양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산업, 학계는 그동안의 정부 지원책이 메모리 중심의 종합 반도체 기업 위주로 설계돼 왔다고 지적한다. 2021년 발표된 'K-반도체 전략'은 총 510조원 규모 민관 투자 계획을 토대로 '반도체 초격차' 달성을 목표로 했지만, 이후 실제 정책 집행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세액공제 및 부지 확보, 전력·용수 등 인프라 지원이 대부분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국회 통과 이후 시행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 역시 반도체를 핵심 품목으로 지정하고 투자·세제·인허가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팹리스나 중소 장비·소재 기업이 이 법의 실질적 수혜를 체감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중론을 이루고 있다.
업계에선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사업이 수도권과 대기업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점을 비판한다. 정부는 용인과 기흥을 포함한 수도권을 세계 최대 메모리 클러스터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에 따라 전력, 용수 등 인프라 투자를 집중했으며, 특화단지 유치 기준 또한 투자 규모나 산업 파급력 등 대기업 위주의 지표에 맞춰져 있었다. 실제로 2023년 발표된 특화단지에는 중소 팹리스나 소재·장비 기업 밀집 지역인 판교, 송도, 구미, 대전 등은 배제되거나 별도 보완지역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생태계의 허리를 구성하는 팹리스나 장비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한 실질적 인센티브 부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설계 분야의 경우, '팹리스 칩 제작 지원사업'이 존재하긴 하지만 연간 수혜 기업 수는 소수에 불과, 지원되는 시제품 제작용 파운드리 공정도 일부 국산 공정 또는 대만 파운드리에 국한돼 활용 범위가 좁다.
익명을 요구한 팹리스 기업 대표는 "고부가가치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싸우려면 정부 차원의 구매 연계, 기술 인증 지원이 필요한데 체감이 잘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연 1~2건 사업 공모에 선정돼도, 현장과 괴리된 요구 조건 때문에 실제 연구나 제품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팹리스와 중소 장비 기업은 연구개발(R&D) 자금 확보조차 버거운 상황인데, 정부 과제는 사후 정산 중심이라 부담이 크다"라며 "예비타당성 조사부터 중간평가까지 버텨야 하는 구조에서 누가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겠느냐"고 토로했다.
설계 기업뿐 아니라 장비, 부품 기업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특히 최근 미국, 일본이 전략 품목을 중심으로 자국 중심 공급망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현지화 압박'에 더해 정부의 명확한 지원 방향조차 없어 이중고에 놓였다는 설명이다.
한 장비업체 관계자는 "외국 기업들은 10년 이상 세금 감면이나 입지 보조금을 받으며 투자를 유치 받지만, 우리는 인허가나 표준화 절차까지 대부분 민간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라며 "정부가 '민간 중심'을 강조하지만, 정작 글로벌 진출에 필요한 공공 차원의 리스크 분담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서 상황도 비슷하다. 최근 중국의 급격한 추격 속에, 한국의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이 양적 팽창에만 치우쳐 질적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우려가 나온다. 특히 반도체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ISSCC(국제고체회로학회) 논문 채택 수에서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에 역전당한 상태다.
올해 ISSCC 기준, 중국은 연구 내용도 인정받으며 채택률을 높이고 있다. 올해 채택된 국가별 논문 수를 보면 ▲ 중국(홍콩·마카오 포함) 92건 ▲미국 55건 ▲한국 44건 ▲대만 20건 ▲일본 8건 등이다. 특히 칭화대, 푸단대, 저장대 등은 산업체와 공동 연구를 통해 실질적인 제품화까지 연결되는 과제를 수행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정원 확대에만 몰두하고 있고, 연구 장비는 노후한 데다 교수 충원도 어렵다"라며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연구 장비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교수 연봉을 2~3배까지 책정해 인재를 모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원 중심의 연구 인력 양성이 시급한데, 예산은 대부분 학부 교육 확대에 치우쳐 있다며 "장기 연구비는 줄고 단기 성과 중심 과제만 늘어나면서 교수들도 지속적인 기술 축적이 어렵다"고 밝혔다.
업계와 학계는 공통으로 새 정부는 규제 개혁 이전에 산업 생태계의 구조적 불균형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도권과 지역, 설계와 제조, 학부와 대학원의 균형 있는 성장 전략이 없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국내 수요 확대를 위한 세제 유인책 ▲정부 R&D 과제 기획의 바텀업 전환 ▲인력 양성을 위한 컨트롤타워 구축 ▲국산 IP(지식재산) 개발 및 활용 기반 조성 등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경수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넥스트칩 대표)은 "현대차처럼 국내 수요기업이 일정 비율 이상 국산 반도체를 사용할 경우, 단계별로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며 "팹리스가 레퍼런스를 확보해야 글로벌 진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일방적으로 사양을 정하는 탑다운 방식은 산업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라며 "중앙 부처는 플랫폼만 제시하고, 세부 사양은 수요기업과 팹리스가 결정하는 바텀업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반도체 설계 인력 양성 사업이 여러 부처와 지자체에 분산돼 비효율적"이라며 "팹리스 산업 특성에 맞는 인재 양성을 위해 중앙 정부 차원의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팹리스가 사용하는 주요 IP의 90% 이상이 해외산이며, 시놉시스·케이던스 등 외국 업체에 의존하고 있다"며 "국내 IP 기업에 대한 개발 지원과 삼성 파운드리 공정에 맞춘 검증 체계를 갖춰 국산 IP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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