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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눈치보는 IT투자… 금융권, 누굴위한 밸류업인가

5대 은행 ⓒ각 사
5대 은행 ⓒ각 사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글쎄요. 아무래도 AI처럼 급하게 대응해야하는 분야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IT투자가 좀 늦춰지는 분위기입니다.”

국내 한 대형 시중은행 CIO(최고정보화책임자)의 말이다.

한 해 4조~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국내 금융권의 디지털·IT 투자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연초임에도 IT투자 분위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푸념들이 금융IT업계로부터 적지않게 나오고 있다.

특히 분위기를 이끌어줘야 할 은행을 비롯한 대형 금융사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생성형AI’에 기반의 업무 고도화 경쟁, 또 비대면금융서비스의 고도화 등 디지털전환을 위한 금융권의 적극적인 투자가 여전히 어느때보다 요구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같은 상황 전개는 아쉬우면서도 당혹스럽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있다.

경기 침체의 장기화, ‘12.3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촉발된 시장 불확실성의 가중, 더구나 조기대선 가능성까지 나오는 혼미한 정국(政局) 상황을 고려하면 뭉칫돈을 선뜻쓰기 힘든 금융권의 신중함이 이해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금융회사 IT실무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열거한 요인들 보단 금융회사 내부의 ‘밸류업’(기업가치제고) 전략이 IT투자 위축에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기때문이다.

현재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밸류업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13%’이상을 고수하고 있고, 이를 지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CET1 비율 13%를 상회해야 자산건전성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이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환율 현상이 지속되면서 가뜩이나 쉽지않은 CET1 비율 관리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런 영향으로 CET1 비율이 4대 금융중 가장 양호한 KB금융도 지난 4분기 기준 CET1비율이 13.51%로, 전분기(13.84%) 대비 0.33%p하락한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CET1 비율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위해선 금융회사의 수익 구조가 좋아야하고, 동시에 비용 구조를 낮춰야한다. 그러나 이것이 여의치 않다보니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IT 프로젝트 추진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는 금융 밸류업의 본말(本末)이 완전히 전도(顚倒)된 것이다. 기업가치를 높이기위한 디지털·IT 부문 인프라투자가 역설적으로 CET1과 같은 단기적인 밸류업 지표 관리를 위해 희생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행이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려면 그것을 구현하기위한 과감하고 지속적인 디지털·IT 인프라 투자는 필수적이다. 특히 2~30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차세대뱅킹시스템(NGBS)과 같은 금융권의 대형 IT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밸류업 숫자를 위해 연기되거나 보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처럼 밸류업 지표에 대한 대형 금융사들의 집착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밸류업의 성과, 엄밀히 말하면 이를 '주가'로 무리하게 등치시키고 있기 때문일까.

실제로 최근 만난 한 금융권 인사는 “최근 회사에서 밸류업 계획을 세게 발표했는데, 정작 주가가 따라주지 않아서 내부적으로 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밸류업 전략이 주가 관리하는 불쏘시개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소한 3~4년 뒤를 내다보는 호흡이 긴 혁신 투자, 이것을 가능하게하는 것은 밸류업 전략일텐데, 현실은 주가에 일희 일비하는 모습인 것이다.

밸류업 전략이 주가 관리의 재료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것은 결국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영자)의 의지다.

'왜 밸류업을 하는가'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우공이산(愚公移山), 당장은 표시가 안나겠지만 CEO의 긴호흡과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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