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이하 AI 교과서) 도입 방식 적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열린 AI 교과서 청문회가 정쟁에만 몰두한 여야 의원들에 의해 별다른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AI 교과서를 두고 단계적 도입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과 AI 교과서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여당이 한치 양보 없는 설전이 반복됐다.
장장 13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청문회가 이어졌으나, 협의에 필요한 실질적 증언을 해줄 업계 및 학계 관계자들은 대부분 청문회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발언권을 얻어 입장을 전할 수 있었다. 즉, 진전있는 협의에 필요한 현장 증언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다.
AI 교과서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양당이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법과 시기를 두고 각자 입장을 고집한 채 의미 있는 협의를 이끌어내지는 못한 양상이다. 13시간이 넘는 청문회 진행 과정에서 여야는 도입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협의를 진행하기 보다 각측 입장을 고집하고, 반대편 주장을 깎아내리는 데만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지난 17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AI 교과서 도입 과정 적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AI 교과서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는 AI 교과서 효과에 대한 검증 및 예산 편성 적합성 등을 살펴보고, 교육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자는 취지였다. 이날 청문회에는 이주호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감·교사 등 교육 현장 관계자를 비롯해 발행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AI교과서 도입’은 양당 모두 OK…방식 두고 펼쳐진 ‘치킨게임’
먼저 각측 입장을 요약 하자면, 더불어민주당은 “AI 교과서를 ‘교육자료’ 지위에 두고 효과를 검증한 뒤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입장이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AI 교과서를 ‘교과서’ 지위에 두고, 1년 동안 각 학교 자율에 맡기는 등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다.
언뜻 보기에 양측은 같은 목표를 견지하고 있으나, 목표를 향하는 방식을 두고 한치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AI 교과서를 ‘교육자료’ 지위에 두자는 더불어민주당 대안에 반대하며 재의요구 행사(거부권) 카드까지 꺼내들며 반대하고 나섰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2025학년도 1학기 전면 도입’에서 한발 물러나 ‘1년간 유예 및 자율 활용’ 대안을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서로가 제시한 대안을 무시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 정쟁에만 몰두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실질적인 논의보다는 서로 주장을 고집하고, 상대방 주장에 흠집을 내기 위한 갖가지 정쟁 형국만 지루하게 지속됐다.
◆AI 교과서 도입 방식 논의는 뒷전…협치와 동떨어진 정쟁만 몰두
시작부터 AI 교과서 문제와 무관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민전 의원(국민의힘)이 ‘백골단’을 행동 조직으로 두고 있는 ‘반공청년당’을 국회로 불러 기자회견을 연 것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측 의원이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 폭력’ 상징인 백골단에게 마이크를 쥐어준 김 의원이 상임위원직을 유지하는 것은 부당하며, 즉각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문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교육위원회를 ‘독재 망령’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백골단을 소환한 김민정 의원은 지금 당장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사퇴해야 한다”며 “이한열 열사가 피격당하는 모습. 아마 대부분 알 것이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민중을 대상으로 폭력적인 짓을 한 자들이 바로 백골단”이라고 수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이후에는 새로운 의견이나 의제를 살피기보다는 지난해부터 지속된 찬반 입장을 되새김질 하는데 그쳤다. AI 교과서 지위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관련해 법안소위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본회의 과정에서 펼친 각측 주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양측 모두 한층 격한 표현이 추가됐다는 점만 바뀌었다.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교육부의 AI 교과서 의무 도입을 강행하는 것을 두고 “학생들을 ‘실험쥐’ 취급하는 격”이라는 취지 발언을 이어갔으며, 서지영 의원(국민의힘)은 AI 교과서를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사진기에 영혼을 뺏길 수 있다는 미신을 믿는 사람들’에 비유하는 등 자극적인 공방이 이어졌다.
참고인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도 협의 본질과는 다소 동떨어진 의혹을 제기하는 등 소득 없는 소모전이 지속됐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이주호 장관과 AI 교과서 발행사 간 유착 의혹과 더불어 이주호 장관 딸 특혜 논란까지 제기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교육위원회 상임위원장인 김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장관이 에듀테크 기업과 친하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으며, 딸 이소민 워싱턴주립대 교수와 함께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된 논문을 작성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주호 장관은 “이소민 교수는 IT 전공자이자 경제학자로서, IT 중요 이슈 중 하나가 건강 및 교육 분야에 IT를 적용하는 것”이라며 “에듀테크 기업과 친하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아시아교육협회 등과 협업했던 적은 있지만 그곳은 에듀테크 기술을 활용해 교육격차를 줄이는 활동을 이어가는 공익 기구”라고 반박했다.
또, 전국시도교육감협회 측의 ‘AI 교과서 지위 유지’ 취지 입장문 발표 과정의 적정성을 두고도 교육감들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시간을 잡아먹었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강은희 대구광역시교육감이 절반에 지나지 않는 구성원의 동의를 받아 AI 교과서 지위 유지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 ‘조작’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강 교육감은 “50% 구성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11시간 대기 끝에 겨우 발언권 얻은 발행사 관계자
대부분 시간을 정쟁으로 소모한 여야 의원들은 청문회가 시작되고 11시간이 지나서야 실무 관계자들을 단상 위로 불러 질문했다. 현직 교사와 교육 연구자, 업계 관계자 등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이들의 목소리는 대부분 늦은 밤이 되고 나서야 들어볼 수 있었던 셈이다.
업계 관계자로 유일하게 청문회에 참석한 박찬용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 대표는 서지영 의원(국민의힘)의 현장 문제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고나서야 5분 가량 발언을 할 수 있었다. 분위기 상 업계 입장을 대변하기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정부의 소통 부재 문제를 지적하고, AI 교과서 지위 확보 중요성을 전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박 대표는 “먼저, 교육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보안 기준이 일반적인 IT 서비스를 만드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높아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 굉장히 애를 썼다”며 “다양한 학생들이 동등한 학습권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난이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청문회에 앞서 AI 교과서 지위 박탈 위기에 대해 정부의 소통 부재 문제를 지적하고, 교육 현장은 물론 AI 교과서 발행사들마저 혼란에 빠졌으며, 손해도 떠안게 됐다는 비판 입장을 전한 바 있다. 지난 13일 아이헤이트플라잉버그스를 비롯한 7개 AI 교과서 발행사는 정부의 1년 유예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 발표를 믿고, 지난 2년 간 자금과 시간을 들여 AI 교과서를 발행했으나, 이제 와서 1년을 유예하는 등 정책을 변경하게 될 경우 그 사이 발생하는 손해는 고스란히 AI 교과서 발행사가 부담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AI 교과서는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주출원사와 교육 콘텐츠에 AI 기술을 적용시키는 보조 출원사의 협업으로 탄생됐다. 보조 출원사 경우 대체로 AI 스타트업인 탓에 이번 사업이 1년 유예 될 경우 상당한 재정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 전언이다.
지난 1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재상 천재교과서 상무는 “정부는 처음부터 기업들에 AI 교과서가 전면 도입될 것이란 신뢰를 형성해 왔다”며 “AI 교과서 선정 메뉴얼에서 ‘각 학교는 선택형 교과서와 별도로 AI 교과서 1종씩 선택할 것’이라 명시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어길 경우 기업들은 고정 비용 보전하지 못해 AI 교과서 운영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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