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AI 디지털교과서(AIDT, 이하 AI 교과서) 도입 방식을 두고 여야, 정부가 한자리에 모여 난전 토론을 펼쳤으나, 평행선을 좁히지 못한 채 입장차만 다시 확인하는데 그쳤다. 정부와 여당은 AI 교과서 지위를 지키기 위해 야당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당은 이 같은 거부권 행사에 대해 비판 입장을 내세우며 AI 교과서를 ‘교육자료’ 지위에 두고 단계적인 적용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17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AI 교과서 도입 과정 적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AI 교과서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는 AI 교과서 효과에 대한 검증 및 예산 편성 적합성 등을 살펴보고, 교육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개최됐다. 이날 청문회에는 이주호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감·교사 등 교육 현장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AI 교과서 오류 지적에 이주호 “도입 문제 없다”
정을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AI 교과서 시스템에 오류가 있음에도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AI 교과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엉뚱한 답변을 내는 등 문제가 있음에도 정부가 이를 묵인한 채 도입을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정 의원이 한국과학창의재단·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9월 검정을 통과한 76종 AI 교과서에 대해 1만4225건의 수정·보완 권고 결정이 내려졌다. 정 의원은 일반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 기준 서책형 교과서 수정·보완 권고 건수는 평균 71건인데 반해 AI 교과서는 평균 226건이 나오는 등 약 3.7배 많은 수정·보완 권고가 내려졌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다만, 현장 자료에서 서책형 보완·수정 건수 평균을 내는데 사용된 정확한 모수는 밝히지 않았다.
정 의원은 “단순 오타부터 AI 챗봇이 단원 기본 어휘에도 답을 하지 못하는 문제 등이 나타났으며, 올바른 발음을 인식하지 못해 오답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기술 심사 관련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훨씬 더 심각하게 볼 수밖에 없는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은 “AI 교과서 경우 사교육 기관에서 쓰는 챗봇보다는 여러 가지 제약을 둘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확증편향 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라며 “공교육에서 쓰이는 만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리스크를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수정 보완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정 보완 사항과 관련해 거의 대부분이 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개선 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야·정, 찬반입장 도돌이표…“교육자료 규정 후 단계적도입”vs”교과서 지위 유지”
더불어민주당 측 의원들은 AI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규정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AI 교과서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교육부가 학부모·교원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으며, 정부가 에듀테크 기업 이익을 위해 제대로 된 근거 없이 도입을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백승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 추진하면서 전국 모든 학교가 에듀테크 기업의 실험장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라며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하려는 것 아닌지 우려가 된다. 학교는 교육의 장이며, 에듀테크 업체들의 실험장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국민의힘 측에서는 AI 교과서 지위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규정될 경우 교육 형평성 및 맞춤형 학습 등 당초 정책 취지를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AI 교과서가 법적 지위를 인정 받아야 규제 측면에서 학생들 개인정보보호도 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 2023년 공개한 AI 교과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AI 교과서 발행사는 클라우드 보안인증(CSAP) ‘중’ 등급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AI 교과서의 보안 수준을 끌어 올리고, 학생들 개인정보 보호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이주호 장관은 “AI 교과서 도입을 위해 많은 나라들이 노력을 하고 있고, 검증하는 과정에 있다”며 “현재 새로운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무한한 가능성을 최대한 교육 현장으로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지영 의원(국민의 힘)은 “모든 문명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통해서 발전을 해 왔다”며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디지털 지도 등 생태계를 만들었던 역사가 있는데, 민주당 쪽에서 배출한 이들이 만들어 둔 길을 가는 것을 왜 거부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육 현장에서도 이견…혼전 펼쳐진 청문회장
여당·정부와 야당 간 입장차가 지속된 것 외에도 교육감 및 교사 등 교육 현장 관계자 사이에서도 AI 교과서를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다.
교육현장 관계자로 참석한 박종훈 경상남도교육감은 AI 교과서 관련 정책의 예산 문제를 지적하며 정부 도입 강행에 비판하는 입장을 전했다.
이 교육감은 “서책형 교과서의 경우 1만원 남짓 구입비가 소모되지만, AI 교과서 경우 적게는 구독료로 9~12만원 수준이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지방교육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AI 교과서가 지나치게 교육부에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고인 자격으로 참가한 한 예비고등학생 학부모도 AI 교과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AI 교과서를 선정하기 위해 무리하게 회의 일정을 변경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자녀가 다니는 학교뿐 아니라 주변 다른 학교 학교운영위원들 전언에 따르면 각 학교 현장에서 AI 교과서 선정을 강행하려는 행보가 지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대로 AI 교과서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의 현직 교사도 참고인으로 참석해 의견을 전달했다. AI 교과서 컨설팅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고 밝힌 조재범 용인풍덕초등학교 교사는 “AI 교과서를 반대하는 것은 음식점에서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메뉴를 사진만 보고 별점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AI 교과서에 대한 부정적인 면이 과잉된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쟁·혼전 지속…‘김민전 사퇴’ 피켓팅 시위부터 이주호 ‘딸 특혜’ 의혹까지
이날 청문회는 AI 교과서 관련 논의 외에도 다양한 정쟁 사안을 둘러싸고 여야 의원들이 설전을 벌였다. 먼저 청문회 개회 직후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김민전 의원(국민의힘)의 사퇴를 주장하는 피켓팅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일명 ‘백골단’으로 불리는 행동 조직을 예하에 두고 있는 ‘반공청년당’을 국회로 불러들여 기자회견을 열어준 김 의원이 상임위원직을 내려 놔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여야 의원들 간 설전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논의가 지체되기도 했다.
김문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교육위원회를 ‘독재 망령’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백골단을 소환한 김민정 의원은 지금 당장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사퇴해야 한다”며 “이한열 열사가 피격당하는 모습.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고,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민중을 대상으로 폭력적인 짓을 한 자들이 바로 백골단”이라고 비판했다.
김민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직접 주선한 것이 아니라, 기자회견을 주선해 달라는 요청에 응한 것”이라며 “청년들 목소리가 들려지는 것을 원했기 때문에 응했고, 이후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 글을 올리고 다시 기자회견 철회문을 올리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이주호 장관을 둘러싼 의혹 공방전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이 장관이 자신의 딸 이소민 미국 워싱턴주립대학교 교수와 함께 디지털교과서 관련 논문을 작성했으며,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딸을 공동 저자를 올리는 등 특혜를 제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김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이 장관이 AI 교과서 관련 업체와 유착 관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영호 의원은 “이 장관이 에듀테크 기업과 과도하게 밀접하고 친하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으며, 딸 이소민 워싱턴주립대 교수와 함께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된 논문을 작성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소민 교수 논문 중 디지털교과서 관련 논문이 이주호 장관과 쓴 논문이 유일하다. 전공자도 아닌 딸과 논문을 같이 쓰자고 제안한 이유도 모르겠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이주호 장관은 이소민 교수와 ‘교수대 교수’로서 정당한 학술 활동을 했다는 입장이다. 또, AI 교과서 발행 관계사와 유착 의혹에 대해서는 유착 대상으로 지목된 기관은 공익 기구이며, 이익을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장관은 “이소민 교수는 IT 전공자이자 경제학자로서, IT 중요 이슈 중 하나가 건강 및 교육 분야에 IT를 적용하는 것”이라며 “에듀테크 기업과 친하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아시아교육협회 등과 협업했던 적은 있지만 그곳은 에듀테크 기술을 활용해 교육격차를 줄이는 활동을 이어가는 공익 기구”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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