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최천욱 기자] '제2의 금투세' 논란으로 비화될뻔 했던 '가상자산 과세' 논란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일 가상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데 동의하기로 함에 따라 일단 갈등 양상은 수면밑으로 가라앉게됐다.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로 기본 공제액인 250만원을 넘는 금액을 벌게 되면 투자자가 20%(지방세 포함 22%)의 세금을 내는 가상자산 과세는 2022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준비 미비 등을 이유로 두 차례 연기됐고,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었으나 또 다시 2년 유에가 결정된 것이다.
이처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한 발 물러난데는 아직 가상시장 과세를 밀어부칠만한 명분이 충분히 축적되지않은 현실론이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의 폭발력이 어느정도 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세 규제부터 만지작 거리는 것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2년 유예에 동의하면서 “가상자산 과세 유예에 대해 깊은 논의를 거친 결과 지금은 추가적 제도 정비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초 민주당은 내년 시행을 고수하면서 과세 유예 대신 공제 한도를 상향(250만원→5000만원)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지난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과세 근거 파악이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금투세 논란때와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과세 시행에는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줄곧 유예를 주장해왔었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7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와 시장 질서 유지를 위한 제도 시행, 그리고 2027년에 개시되는 가상자산 거래 관련 국제 정보교환 시점 등을 고려해 과세시점을 다시 2년 유예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상자산의 규모가 크게 확대되면서 관련 규제와 함께 과세 여부가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 글로벌 시장, '가상자산 과세' 원칙에는 공감… 국가별 과세 전략은 신중
자본시장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글로벌 가상자산 과세 현황 및 국내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호주, 싱가포르 등 가상자산 선도 국가에서는 가상자산 과세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가상가산 과세를 포함한 가이드라인(IRS Virtual Currency Guidance)을 공표한 미국은 개인소득세를 부과하고 취득시점과 매각시점의 시가로 인한 차익에 대해 과세를 하는데 1년 이내의 단기투자는 종합소득세율을, 장기투자는 보유기간별로 차등세율을 적용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년 미만의 단기 보유는 10~37%를, 1년 이상의 장기 보유는 각각 0%(4만달러 이하), 15%(4만달러 이상 44만1450달러 이하), 20%(44만1450달러 초과)를 과세하고 있다. 트럼프가 임기를 시작하면 세율이 조정될 전망이다.
재산적 가치가 존재하는 지불수단의 성격으로 가상자산 수익을 ‘잡소득세(기타소득)’로 분류하는 지불 서비스 법안(PSA)를 공표한 일본의 경우 개인 소득에 따라 15~55%(주민세 포함)과세가 적용된다.
영국은 기본 세율 범위에서 10%를, 독일은 개인의 소득에 따라 0~45%를 과세하고 호주는 1년 이상 보유할 경우 양도차익 과세 금액의 50%를 감면해준다.
싱가포르는 부가가치세만 부과하고 한국과 같이 가상자산 과세를 하지 않고 있지만 디지털화폐 소득세 가이드(IRAS)를 발표하면서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 당분간 “가상자산 과세 유예” 의견 지배적… 일각에선 ‘폐지론’도 고개
현재 과세 유예가 결정된 상황이지만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과세의 형평성과 조세정책의 효율을 고려해 실제로 과세를 실행에 옮기는 시기는 매우 전략적이고 신중해야한다는 것이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황금알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상자산업계의 A관계자는 “(가상자산 과세는)유예가 돼야 한다”면서 “과세 기준 등이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를 국내(거래소 투자자에게)만 적용할 수 없고 해외 거래소 투자자의 거래 내역을 알기가 쉽지 않아 과세 형평성에 어긋난다. 제대로 준비해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세로 인한 자금 이탈도 우려했다. 그는 “코인도 주식시장처럼 대부분 개인투자자들이 하고 있다. 초고액투자자들은 일부이지만 거래대금은 (투자자의)30~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를 떠나 해외(거래소)로 가면 자금이 빠져 나간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금투세와의 형평성을 논하며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B관계자는 “가상자산 과세가 금투세와 함께 패키지로 추진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금투세가 폐지됐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가상자산 과세가)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시장이 불장인데 세금을 부과하게 되면 해외 거래소로 자금이 빠져나가 침체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부터 가상자산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투자자보호 사각지대가 많아 유명무실할 뿐이다. 이 때문에 법 등 제도 정비를 통한 투자자보호가 우선시 돼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C관계자는 “소득세법에 따라 과세를 하고 있지만 미국은 증권법에, 일본은 자금결제법에 따라 가상자산을 규율하고 있어 투자자보호수준이 높다. 과세를 부과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도적으로 관리가 잘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반해 한국은 발행자도 가상자산법상의 사업자에서 제외돼 있고 가상자산별 발행·상장·유통·공시 등 투자자 보호막이 두텁지가 못하다.
그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1단계라 투자자보호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과세는 정당하지 않다”며 “먼저 2단계 가상자산법을 비롯해 관련법 입법을 시행한 이후 공평과세를 시행해야 한다”며 늦어도 ‘카프(CARF)’가 시행되는 오는 2027년 이전에 관련법들이 입법 시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CARF’는 암호화 자산 시장의 발전에 따른 역외탈세 방지 및 조세 투명성 제고를 위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38개 회원국간에 암호화 자산 거래 정보를 해마다 자동으로 교환하는 체계다. 정부는 지난 7월 2024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면서 2027년 개시에 맞춰 국내법을 정비해 나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D관계자도 “최근에 카프(CARF)라고 하는 OECD 암호화 자산 자동 정보 교환 체계 도입 논의가 업계에서 굉장히 활발하다. 2027년에 도입될 걸로 예상을 하고 있다”며 “시행 시기에 맞춰서 과세를 시행하는 것이 글로벌 정합성 측면에서도, 또 해외 거래소로의 이탈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도 굉장히 바람직하다는 논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도 가상자산 과세 내년 시행 반대에 대한 목소리를 청원 게시판과 시위를 통해 높이고 있다. 국민전자청원에 따르면 ‘2025년 1월 1일 코인 과세 유예 요청’에 관한 청원에 동의한 인원(지난 27일 기준)은 7만4000여 명이 넘는다.
20대 청년인 청원인은 “수익이 있으면 세금이 따라온다는 대전제는 동의한다”면서도 “제대로 된 법과 보안도 없이 하는 과세가 과연 바른 정책일리 없다. 좀 더 유예하고 그 사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 과세를 하는 것이 맞다”며 청원 취지를 밝혔다.
국내 일부 가상자산 인플루언서(KOL)들은 서울 여의도를 비롯해 부산과 광주 등 전국 주요지역에서 가상자산 과세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가상자산 과세' 논란이 일단 수면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앞으로 언제든지 시장을 민감하게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참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신중한 접근이 더욱 요구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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