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채성오, 강소현기자] 8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됐다. 이번 청문회도 예외없이 후보자 개인과 가족의 도덕성을 검증하는데 집중됐다. 소위 '강남 8학군'에 자녀들을 진학시키기 위해 위장전입 했다는 의혹과 장남의 고의적인 병역 기피 의혹 등이다.
자연스럽게 정책 현안과 관련한 질의는 뒷전이 됐다. 일부 언급된 현안들 역시 대부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등 과학기술에만 집중되면서, ‘과학기술부’ 청문회가 아니냐는 비판을 피해가긴 어려울 전망이다.
◆ 청문회 시작, 20분 넘게 지연…'청문회 연기' 여부 두고 여야 갈등
이날 청문회는 여야가 유 후보자의 자료제출을 두고 갈등을 겪으면서 당초 예정됐던 시간보다 20분 넘게 지연됐다.
유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 10분 전 장남의 병역 기피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회 과방위 소속 최민희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확보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유 후보자의 장남 유모 씨는 만 19세가 된 이유 해외 유학 등을 이유로 여섯 차례 병역판정 검사를 연기한 바 있다.
이에 야당은 “청문회를 무력화 하려는 것”이라며 연기해야 한다고 반발한 가운데, 최민희 과방위원장과 여당 간사인 최형두 의원(국민의힘)의 중재로 회의는 간신히 속개됐다.
최 의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미래가 걸린 국가 정책을 책임질 장관 후보자를 빨리 검증해야하지 않겠냐 양해말씀 드렸다”며 “야당 위원들께서도 늦게라도 충분히 검토하시고 소명안되는 부분은 (후보자에 대한) 질의 시간 통해 풀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 '나눠먹기식 R&D 예산'에 소신 발언했지만…발언 출처 듣고 태도 전환
정책 현안 가운데 최대 화두는 단연 R&D 예산 문제였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권 카르텔 타파” 발언 이후 나눠먹기·갈라먹기식 R&D 예산을 개편하겠다고 밝히면서, 직전해보다 5조2000억원(16.6%) 삭감한 예산안을 내놨다가 연구 현장의 반발을 샀다.
특히 야당 위원들은 지난해 R&D 예산을 급격히 삭감해 과학계 사기 위축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연구원 출신인 유 후보자는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현장에서 느낀 아쉬움이 있다”는 소신있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또 관련 예산을 더 늘릴 필요가 있다며 예산 추가 편성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유 후보자는 ‘효율적인 R&D 예산 관리 방안’을 묻는 박정훈 위원(국민의힘)의 질의에 “선진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예비타당성 조사 폐지를 했을 때 관리를 포함해 국가 R&D 예산 유용 등 문제도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올해 예산이 늘어났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늘어야 한다고 본다”며 “추가 반영될 여지가 있는지 살펴보고, 각계 전문가들과 현장 연구자들과 적극 소통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R&D 예산이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나눠먹기식 R&D 예산’이라는 표현해 대해 "국가 R&D 예산 편성 과정에서 비효율적 요소를 칭한 용어인 것 같은데, 밖으로는 국민 세금을 나눠 먹기 한다는 형태로 비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하며 불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 발언의 출처를 듣고 난 뒤 유 후보자의 태도는 바뀐 모습이었다. R&D 예산 쓰임에 문제가 있을수 도 있다며 관련 제도 및 시스템을 적극 들여다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지적에,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을 실제로 몰랐다"고 짧게 답했다.
◆ 진흥 강조했지만…정작 생성형 AI도 안 써봐
인공지능(AI) 정책과 관련해선 규제보단 진흥 위주로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성범 의원(국민의힘)이 'AI 기본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 묻자 유 후보자는 "굉장히 시급하다"고 답했다.
신 의원은 "(AI가) 어디까지 발전하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 초기 과도하게 규제하면 성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예를 들어서 EU의 경우엔 현재 규제적 측면이 강하고 미국은 진흥 중심으로 돼 있을 정도로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후보자는 "(관련 정책을) 국가만 할 게 아니라 민간과 같이 공동체로 풀어 나가야 될 것"이라며 "민간이 운동장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려면 (시장) 초기엔 진흥책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AI 정책에 대해 진흥을 강조한 유 후보자이지만, 정작 생성형 AI 같은 관련 서비스는 사용해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이 "혹시 챗 GPT, 제미나이, 달리 같은 생성형 AI를 써 본적 있느냐"고 묻자 유 후보자는 "써 보고 싶은데 아직 못 쓰고 있다"고 답했다.
이후 이 의원은 "현재 대한민국의 AI 관련 정책은 신호등 없는 강남역 사거리 같다고 항상 말해왔다"며 "그만큼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 꼭 인지를 하시고 계셔야 된다고 말씀을 드리며 규제와 진흥 모두 대한민국이 끌고 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약속을 하실 수 있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유 후보자는 "좋은 지적 명심하겠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AI 정책 수립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마찰 및 갈등 상황에 직면했을 때 과기정통부 장관 입장에서 자주적으로 의견 개진이 가능할 것인 지 되물었다.
그는 "우리는 (AI 정책에 대해선) 후발주자니까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그런 정책 행정을 하셔야 한다 며 "이것을 실행하시려면 대통령께서 위원장으로 취임하시겠다고 한 국가AI위원회랑 싸워야 할 수도 있고 기재부에도 과기정통부장관으로서 과기정통부의 의견을 대변해서 강하게 부딪혀야 할 수도 있다. 가능한가"라고 말했다.
유 후보자는 "국민들께 염려가 안 되게 할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 가계통신비 높다지만…구체적인 인하 방안·목표액은 無
R&D에서 소신있는 입장을 밝힌 반면, 다른 통신방송 현안과 관련해선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 그쳤다. 특히 통신 정책은 산업이 아닌 민생 측면에서만 검토돼 아쉬움을 남겼다. 통신과 관련해 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가운데, 진흥 담당 부처로서 정책 방향이 모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 후보자는 통신정책에서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를 위해 단통법은 폐지하고, 알뜰폰은 육성하겠다는 큰 정책 방향을 밝혔다.
먼저, 유 후보자는 단통법과 관련해 추가적인 가계통신비 인하를 위해 폐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단통법 제정 목표가 달성됐다고 보시냐’라는 박충권 위원(국민의힘) 질의에 대해 "알뜰폰이 (가계통신비 인하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선진국과 비교해 인하 정도가 불충분하다. 조금 더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통법은 첫 시행 이후 매해 존폐의 기로에 섰다.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시행됐지만, 지난 10년 동안 소비자 차별을 야기한 유통구조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월 민생토론회를 통해 단통법을 전면 폐지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2월 구체적인 폐지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국회도 단통법을 폐지하는데 합의하고, 구체적인 방향을 논의 중이다.
그는 "단통법 제정으로 시장은 안정됐지만, 이에 따른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단말 출고가는 증가했지만, (소비자에 지급되는) 지원금은 오히려 감소했다"며 "즉, 단통법이 가계통신비 인하를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 후보자는 단통법 폐지 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부작용들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단통법 폐지 시 '선택약정 할인' 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사라지는 가운데, 이를 '전기통신사업법'으로 이관해 소비자가 차별없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선택약정 할인 제도는 단말 할인(공시지원금)을 받지 않은 소비자에 대해 이동통신사가 통신비를 절감해주는 혜택을 말한다.
다만 가계통신비의 주축을 이루는 고가 단말기 출고가 인하에 대한 대책은 없었다.
제4이동통신 재추진과 관련해선, 종합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과기정통부는 제4이통 사업자로 선정됐던 스테이지엑스에 대해 주파수 할당대상법인 취소 결정을 내렸다. 사업자 적격검토 단계에서 스테이지엑스가 제출했던 서류 내용이 실제 확인된 바와 크게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제4이통 사업자 선정이 무산된 것은 이번이 8번째다.
8번째 실패인 만큼 제4이통 사업자 선정 무산 사태와 관련, 정부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실패가 예견됐음에도 불구, 정부가 밀어붙인 탓에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유 후보자는 '제4이통을 추진하기 보단, 단통법을 폐지에 자유시장 경제로 가는 것은 어떻겠냐'는 질의에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제4이통은 가격을 넘어서는 문제"라면서 "6G 시대로 갔을 때 (제4이통이)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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