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티몬·위메프 판매 대금 미정산 사태 관련해 정부가 29일 최소 5600억원의 유동성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의 최종 책임자인 구영배 큐텐 대표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고 공식 사과하며 “유동성 확보를 위해 큐텐 지분 매각 이외 개인 재산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다만 구영배 대표는 입장문 말미에 “이번 사태로 인해서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더 높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라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그간 두문불출했던 구 대표는 사태가 터진 지 일주일 만에야 뒤늦은 첫 입장 표명을 했지만, 오히려 기회를 얻고 싶다며 대중에 호소한 것이다.
골든타임은 지나갔는데, 소비자와 판매자, 업계 및 정부 신뢰마저 저버린 후에야 다시 한 번 도전 기회를 얻고 싶다는 구 대표. 이 입장문 역시 큐텐을 통한 일방적인 자료 배포로 얼굴 없이 입장 발표가 이뤄지고, 구체적인 방안이나 대응 방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입장문에 업계 탄식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이번 사태가 끝나더라도 티몬·위메프가 예전만큼의 명성을 찾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소비자와 판매자들이 신뢰도 높은 모기업을 둔 커머스 업체로 대거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
◆29일 관계부처가 내놓은 소비자·판매자 보호 대책은?=이날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중소벤처기업부·산업통상자원부·국무조정실·국토교통부·문화체육관광부(이하 관계부처) 당국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선 위메프·티몬 사태 대응방안이 논의됐다.
앞서 지난 8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티몬의 여행상품을 중심으로 판매자 대금 정산 지연 및 미정산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지난 11일 큐텐 측은 위메프의 정산 지연은 전산상 오류에 의한 것이며, 티몬·인터파크커머스의 경우 정산상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티몬이 지난 22일 ‘무기한 정산 지연’을 선언하면서 일부 판매자(셀러)들이 상품계약을 취소하고, 이에 따른 소비자 피해사례가 발생했다. 소비자 환불 요청에도 불구하고 결제대행사의 위메프·티몬 철수로 환불 지연 상황은 악화됐다. 카카오페이, 삼성·토스·애플페이, 무통장입금 등 모든 결제수단 이용이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위메프, 티몬이 관계부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소비자에 한해 환불한 금액은 티몬 약 131억원, 위메프 약 43억원이다. 같은 날 구 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양사(티몬·위메프)가 파악한 고객 피해 규모는 여행상품을 중심으로 합계 500억원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체 대금정산 대상금액(일반상품 판매 75%, 상품권 위탁판매 25%) 중 지난 25일까지 정산기일이 기경과된 지연금액이 약 2134억원으로 분석했다. 티몬 1280억원, 위메프 854억원이다. 실제 대금정산 기일은 통상 서비스·재화 판매일로부터 약 50~60일 후다. 따라서 정산기한이 남은 6~7월 거래분을 포함한 8~9월 중 대금정산 지연금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소비자·판매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관계부처 합동의 총력을 지원할 방침이다. 업계·금융권 등과 협업해 환불처리 등 소비자 피해구제에 집중하고, 입점 소상공인 등 피해기업 지원을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 만기연장 등 금융지원 및 세정지원 등 중점적으로 추진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여행업계·신용카드·전자지급결제대행(PG)사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요청하고, 카드결제 취소 등 원활한 환불처리를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구매된 상품권을 사용처 또는 발행사가 사용금지 조치를 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상적으로 상품 제공 또는 환불 협조를 유도할 방침이다.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피해대책반, 실무대응팀을 구성하고 여행·숙박·항공권 분야의 집단분쟁조정 신청을 오는 8월1일부터 9일까지 접수받을 계획이다. 소비자원과 금감원은 민원접수 창구도 지속 운영한다.
정부는 정책금융기관(중진공·소진공)에서 2000억원 규모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조성하고 피해기업을 지원한다. 정산지연액 또는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한도 내에서 저금리로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3000억원+α’ 규모의 신보-기은 협약프로그램을 신설해 미정산 피해기업의 긴급경영안정도 지원할 계획이다.
여기에, 관계부처는 이커머스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고, 공정위·금감원 합동점검반을 지속 운영해 위법사항 등에 대해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티몬·위메프에 입점했던 기업이 신규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타 온라인 플랫폼 입점 지원도 추진한다.
◆구영배 큐텐 대표 “큐텐 지분 매각하고, 자비 활용해 대책 마련”=같은 날 공교롭게도 구 대표의 입장문도 발표됐다. 이날 오전 구 대표는 큐텐을 통해 입장문을 내고 “큐텐은 양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양사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큐텐은 현재 그룹 차원에서 펀딩과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 대표는 보유 재산의 대부분인 큐텐 지분 전체를 매각하거나 담보로 활용해 이번 사태 수습에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구 대표는 “금번 사태가 수습되면 큐텐은 그룹 차원의 사업구조 조정과 경영시스템 혁신에도 나서겠다”며 “계열사간 합병을 통한 비용구조 개선, 수익성 중심의 사업구조 전환, 파트너사 조합을 통한 경영과 이사회 직접 참여 등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소비자와 판매자, 업계는 뒤늦은 입장 표명에 모두 회의적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다.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도산 위기에 처한 영세 입점업체들의 줄도산 우려와 불안감은 여전하고, 티몬과 위메프가 대규모 적자를 이어오며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지도 오래다. 입장문을 통해 밝힌 내용만으로는 당장의 상황 개선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만 증폭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판매자 모두) 신뢰도 높은 모기업을 둔 커머스 업체로의 이동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날 ‘마이데이터 제도와 국내 유통산업의 미래’ 세미나에서 “(티몬·위메프 사태는) 고객 구매대금 환불과 판매대금 정산 문제 등의 급한 불을 끄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플랫폼 생존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결국은 충분한 유동성 확보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관계부처는 큐텐의 또 다른 계열사인 인터파크커머스 경우 현재 정상적으로 대금정산 중이지만, 거래 감소가 지속되고 위메프·티몬 판매대금 회수여부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정부는 이곳의 동향도 지속 점검할 계획이다.
또한 관계부처는 네이버와 쿠팡, 11번가 등 여타 주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 경우 거래량·판매자 동향 등에 특이사항이 없고, 위기 확산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다수는 정산대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며, 자체 상황점검 및 판매점 대상 상황설명 등 위기확산 방지 노력을 지속 중이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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