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NEXON)은 넥스트 제너레이션 온라인 서비스(Next Generation Online Service)의 약자다. 차세대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를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바람의나라’부터 한국 콘솔 게임 최초로 300만장 판매고를 올린 ‘데이브더다이버’까지, 넥슨은 남다른 도전 정신으로 국내 게임업계를 선도해 왔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넥슨은 올해를 글로벌 진출 원년으로 삼고, 회사 핵심 가치인 ‘재미있는 게임’으로 글로벌 공략을 준비 중이다. 넥슨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바람처럼 부푼 게임 개발 꿈… 국내 최초 그래픽 온라인 게임으로
현재는 매출 4조원을 넘보는 대형 게임사로 성장한 넥슨은, 30년 전엔 자본금 6000만원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었다.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엑스엘게임즈의 송재경 대표, 김상범 전 넥슨 이사와 맞손을 잡고 설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중에 게임을 제대로 만들어서 일본인들이 내가 만든 게임을 사려고 저렇게 줄을 서는 걸 구경 좀 해보고 싶어. 그러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아.”
넥슨 성장기를 다룬 책 ‘플레이’에 따르면 창업자가 게임 개발 꿈을 꾼 건 1988년이다. 그는 당시 전자시장 메카 일본 아키하바라를 찾았다가 닌텐도 게임을 사기 위해 늘어선 행렬을 보고 게임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넥슨은 창업 초창기 인트라넷 솔루션 개발로 이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김 창업자는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람의나라’ 개발에 쏟아부었고, 결국 1996년 4월 국내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을 탄생시킨다.
바람의나라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CD 타이틀 개발에만 집중하던 국내 게임사에 경종을 울린 대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재미 좇아 게임 개발했더니… ‘패스파인더’ 넥슨
오웬 마호니 전 넥슨 재팬 대표는 지난 2015년 5월 넥슨개발자컨퍼런스(NDC) 개막일에서 “재미야 말로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여야 한다.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진정한 목적지를 잊어버리면 이용자들은 떠나게 될 것”이라며 게임의 본질이 ‘재미’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30년이 지나도 존재 가치가 있는 위대한 게임을 만들면 상업적인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카피캣만 양산하기보다는 자신만의 길을 찾는 패스파인더가 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장르 불문, 순수 재미에 집중하는 개발 철학은 숱한 명작을 낳았다. 하드코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대세였던 당시 시장에서 전에 없던 시도로 흥행에 성공한 퀴즈퀴즈(큐플레이‧1999)’, ‘크레이지아케이드(2001)’, ‘카트라이더(2004)’, ‘마비노기(2004)’가 대표적이다.
이승찬 전 넥슨 본부장이 취미 삼아 만든 퀴즈 게임 퀴즈퀴즈는 출시 후 2달 만에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오락실 게임에서 착안한 크레이지아케이드는 서비스 2주 만에 동시 접속자 1만명을 돌파했다.
김 창업자 반대에도 개발을 진행해 출시한 카트라이더는 ‘스타크래프트’를 제치고 국민게임 반열에 올랐다. 마비노기는 출시 후 4달 만에 회원수 205만명, 월 매출 11억원을 달성하면서 화제 몰이에 성공했다.
이들은 흥행 성적 외에도 국내 게임산업에 적잖은 발자취를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퀴즈퀴즈와 크레이지아케이드는 캐주얼 게임 미래를 창조하고, 여성 이용자도 게이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카트라이더는 비주류 장르여도 재미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 마비노기는 카툰렌더링 그래픽 도입 등 도전적인 시도를 한 혁신 작품으로 평가된다.
◆실패해도 괜찮아… ‘개발자 놀이터’ 넥슨
넥슨은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개발사로 꼽힌다. 27일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만 45종 이상이다. 그간 빛을 봤다가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도 상당수다. 넥슨이 매출 4조원을 넘보는 업계 1위 사업자로 성장한 건, 이러한 자체 지식재산(IP) 확보에 공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런 기조는 디즈니처럼 소비자가 기꺼이 찾는 IP를 보유한 회사로 거듭나고 싶다는 김 창업자의 바람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넥슨 매출이 2조원에 육박했던 2015년 당시에도 “(닌텐도 등과 비교해) 아직 멀었다. 넥슨에겐 더 많은 똘똘한 IP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 창업자는 생전 조직이 정체되는 것을 특히 경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플레이에 따르면 그는 “늘 새로울 수는 없다. 새로운 트렌드도 찾아내야 하지만 조직 안에서 누군가는 망할 줄 알면서도 그걸 또 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지금의 트렌드를 인식하고 실패를 배우면서 진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개발진에게 창의성과 국제화를 반복해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넥슨은 창업 초기부터 이어온 자율적인 개발 문화를 유지하고 강화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2014년 소수 인력으로 구성된 개발 정예 조직인 인큐베이팅실을 구성하고, 작년 4월에는 기존 개발 관습을 탈피해 게임 재미에 집중하는 서브 브랜드 민트로켓을 출범하는 등 새로운 시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도 주기적으로 마련해왔다.
6년 이상 개발해 2018년 출시한 모바일 게임 ‘야생의땅: 듀랑고(이하 듀랑고)’는 이러한 넥슨 개발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넥슨 같지 않은 게임’이라 흥행엔 실패했지만, ‘넥슨이어서’ 나올 수 있었던 도전적인 게임으로 평가된다.
듀랑고는 독특한 소재인 ‘공룡’과 ‘서바이벌’을 앞세운 샌드박스형 MMORPG로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수익모델(BM)도 기존 게임들과 차별화를 뒀다. MBC와 맞손을 잡고 관련 세계관을 기반한 예능 방송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전에 없던 행보도 보였다. 비록 서비스 2년도 채 안 돼 서비스를 종료했으나, 듀랑고는 참신한 도전을 상징하는 게임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듀랑고를 통해 색다른 재미를 보여주고 싶다는 넥슨의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들은 지난 2022 지스타(G-STAR)에서 듀랑고 IP를 기반한 신작 ‘프로젝트DX’를 개발 중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정현 넥슨 대표는 “듀랑고는 넥슨에게 있어 굉장히 의미 있는 타이틀임과 동시에 좌충우돌이 있었던 가슴 아픈 IP”라면서 “새 프로젝트는 안정적인 상황 하에서 원작이 갖고 있던 자유도를 최대한 살리는 형태로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작년 6월 출시돼 글로벌에서 300만장이 팔린 ‘데이브더다이버(이하 데이브)’는 이러한 도전 정신이 흥행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데이브는 해양 어드벤처 힐링 게임이라는 독특한 장르 특성과, 고요한 바다에서 작살을 던져 물고기를 잡다가 돌연 초밥집을 운영하는 ‘의외성’이 게이머 호응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데이브는 출시 전까지도 주요 경영진이 어떤 게임인지 확인하지 못했을 만큼, 철저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민트로켓을 쏘아 올린 김대훤 전 넥슨 부사장(현 에이버튼 대표)은 2022 지스타(G-STAR)에서 “계속해서 개발하고 발명하고 창조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 민트로켓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은 결국 뚫고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뾰족함을 가진 개발자를 찾고 있다”며 참신함으로 무장한 개발자가 뛰놀 놀이터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20년 넘게 게임업계에 몸담은 한 관계자는 “도전적인 작품을 내놓기는 중소 게임사보다는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대형 게임사가 훨씬 더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안주하느라 다양한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넥슨에는 개발진에 자율권을 보장하고 개발을 독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있다. 그것이 타 경쟁사와의 격차를 만든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넥슨이 업계 선두가 된 건 개발 조직에 계속 변화를 줘 왔기 때문이다. 반면 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건 개발진의 세대교체가 정체됐기 때문”이라면서 국내 게임사가 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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