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지난해 반도체 불황이 짙어진 가운데에도 SK하이닉스는 R&D(연구개발) 비중을 확대, 유의미한 성과를 다수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업황과 상관없이 R&D 중요성을 강조한 곽노정 사장의 사업 수완이 빛난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업황 악화에 적자 전환한 2023년…R&D 비중은 늘려
2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메모리 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투자 감소, 공급 확대, 스마트폰 업체의 재고 조정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렸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지난해 반도체 시장 규모 전년 대비 9.4% 감소한 5200억 달러(약 695조원)에 머물렀다고 추산했다.
이러한 영향 탓에 대표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SK하이닉스의 실적도 지난해 크게 고꾸라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매출 32조 7657억원을 달성, 영업손실 7조730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44조6215억원, 영업이익 6조8094억원을 기록했던 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26.6% 줄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이다.
이렇게 업황 악화로 실적이 크게 줄어드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R&D 비중은 더욱 늘리며, 차세대 기술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는 그간 시장 회복 시기와 상관 없이 R&D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작년에도 이러한 전략을 택하며 비중을 늘려왔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매출 대비 R&D 예산은 4조1884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비중은 12.8%로 나타났다. 4조9053억원의 예산을 쏟았던 전년 대비 금액 자체는 줄었지만, 비중은 늘었다. 2022년도 매출 대비 R&D 비중은 11.0%, 2021년 9.4% 기록, 2년 새 3.4%p 늘어난 것이다.
◆ HBM3 12단 적층 '세계 최초' 성공…4세대 시장 점유율 90%
주목되는 점은 이렇게 R&D에 힘을 쏟은 결과가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모바일⋅서버⋅서버용 D램, HBM(고대역폭메모리), UFS(유니버설플래시스토리지) 등 다수의 분야의 괄목만 한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것은 단연 HBM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에도 4세대 HBM에서 선두를 이끌어갔는데, 그 중심엔 R&D 확대가 주효한 역할을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월 D램 단품 칩 12개를 수직 적층해 현존 최고 용량인 24GB(기가바이트)를 구현한 HBM3 신제품을 개발에 성공했다. 기존 HBM3의 최대 용량은 D램 단품 칩 8개를 수직 적층한 16GB였던 점을 고려하면 성능을 50% 높인 것이다.
공정엔 어드밴스드 MR-MUF 기술이 적용돼 효율성과 성능 안정성도 강화했다. MR-MUF는 반도체 칩을 쌓아 올린 뒤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간 사이에 주입하고, 굳히는 공정이다. 칩을 하나씩 쌓을 때마다 필름형 소재를 깔아주는 기존 방식 대비 효율성 및 방열성이 높다.
12단 HBM을 가장 빨리 개발, 양산에 성공하면서 AI(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폭증하기 시작한 HBM 수요 대응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엔비디아에 12단 적층 HBM3를 독점으로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3%를 기록, 선두를 지키고 있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각각 38%, 9%를 기록했다. 그중 4세대 HBM인 HBM3의 경우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면서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엔비디아 향 HBM3는 SK하이닉스가 독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중심엔 12단 적층을 가장 먼저 성공한 성과가 있다"라며 "이러한 성과는 결국 R&D 등에서 나오는 만큼, 비중을 확대한 회사의 전략이 먹혀들어 간 것이라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삼성전자가 5세대 HBM에서 먼저 12단 적층에 성공한 만큼, 다음 HBM 경쟁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또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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