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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원대 주식 물납’ 넥슨이 만난 건 암초일까, 기회일까?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지난해 연매출 3조원을 넘긴 넥슨은 국내외 게임시장에서 시장 가치가 매우 높은 게임사로 평가받는다. 넥슨을 수식해줄 표현은 또 있다. 바로 자수성가형 대기업이다.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보수적인 경영 원칙을 고수해 넥슨그룹 지주사이자 비상장 회사인 엔엑스씨(NXC) 지분을 시장에 풀지 않아 왔다.

그의 강단 있는 기조와 성공신화는 막대한 상속세에 발목이 잡혔다.

기존 엔엑스씨 지분은 김 창업자와 유가족이 약 98.28%를 보유해왔다. 김 창업자는 엔엑스씨 지분 67.49%를 갖고 있었다. 배우자 유정현 엔엑스씨 이사는 29.43%, 두 딸은 각각 0.68%의 지분을 보유했다.

유가족 소유 계열사인 와이즈키즈가 남은 엔엑스씨 지분인 1.72%를 가지고 있었던 것까지 더하면 김 창업자 및 가족이 사실상 100%를 보유한 셈이다. 이는 살아생전 김 창업자가 외부로부터 경영권을 굳건히 지켜낸 방법이기도 했다.

유가족은 김 창업자가 가진 67.49%의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상속받길 선택했다. 이에 따라 유 이사 4.57%, 두 딸이 각각 30.78%씩 상속받게 됐다. 이 과정에서 남은 지분 1.36%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온전히 물려받기 위해선 그만큼의 상속세를 내야만 한다. 유가족은 이로 인해 발생한 상속세 약 6조원 규모를 국가에 납부해야 지분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국세 납부는 금전(현금)으로 납부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이 막대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현금을 갑자기 마련하는 건 유가족이라도 쉽지 않았을 일이다.

이에 유가족은 국공채·부동산 등 현물로 상속세를 내는 ‘물납’을 선택했다. 정부는 물려받을 재산이 대체로 부동산이나 유가증권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고려해, 현금이 아닌 부동산이나 비상장증권으로도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고 김 창업자 유가족은 상속세 일부를 엔엑스씨 비상장주식 85만2190주(29.3%)로 대신 냈다. 지분가치만 약 4조7358억원에 달한다. 외부 개입을 철저히 방어해왔던 김 창업자의 고집은 결국 유가족이 내야 하는 상속세 앞에서 무너졌다.

이번에 상속세를 물납하면서 유 이사와 두 딸이 보유한 지분율은 와이즈키즈까지 합치게 되면 총 69.34%가 됐다. 유 이사의 지분율은 34%로, 그대로 유지했다. 두 딸이 보유한 지분율만 각각 31.46%에서 16.81%로 감소했다. 경영권은 안정적으로 지켰지만 넥슨과 전혀 관련 없는 2대 주주를 맞이하게 됐다.

기획재정부는 물납으로 받게 된 지분 29.3%로 단숨에 엔엑스씨 2대 주주가 됐다. 다만 기재부는 2대 주주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비상장주식을 받게 된 만큼 최대한 빠르게 매각 절차를 밟고 제값으로 팔겠다는 게 기재부의 목적이다. 물납주식 매각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위탁하게 됐다.

이에 기재부와 캠코는 지난 6일 오전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제4회 국세물납기업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물납주식에 관해 설명하고, 매각 성과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정부는 기관투자자에게 투자형 매각제도를 통해 관심 있는 물납주식을 매입할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투자형 매각제도란, 성장 가능성과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기업을 기관투자자가 매수하고자 하는 경우 외부 회계법인 평가를 통한 예정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는 제도다.

이날 설명회에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탈 등 60여명의 기관투자자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엔엑스씨는 정부의 주요 우량 물납기업 중 한 곳으로 소개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실, 넓게 보면 미래의 엔엑스씨 2대 주주가 넥슨그룹에 신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성장 발판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회다.

다만 지분 구매 관심이 있는 곳도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우선 지분 가치가 조 단위가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이기 때문에 이를 한꺼번에 인수할 투자자가 많지 않다. 또한, 엔엑스씨 물납주식 29.3%를 사들여도 유가족 보유 지분이 69.34%이기 때문에 경영권을 쥐지 못한다. 이를 인수한다 해도 비상장 주식이기에 거래도 쉽지 않다. 유동화가 어려워 제값으로 평가받기도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다.

때문에 국내 자본이 온전히 이를 매입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해외 기업에겐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자본 여력이 충분한 곳일수록 엔엑스씨 2대 주주 타이틀을 갖기 위해 쇼핑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넷마블 3대 주주이자 크래프톤 2대 주주인 텐센트는 2019년 넥슨 매각이 추진됐을 당시 넷마블, MBK파트너스 등 국내 자본과 손잡고 뛰어들었다.

이처럼 가혹한 상속세는 내는 입장도, 받는 입장도 다양한 부작용을 겪게 만든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상속세 부담이 가장 커 기업들이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로 악명이 높다. 한국 상속세율은 최대주주 할증(20%)까지 붙으면 60%까지 높아진다.

기업존립을 위협하는 상속세에, 재계는 물론 전문가들도 관련법이나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정부가 부의 대물림보다는 국가 경쟁력 강화, 기업 승계 의미로 상속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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