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제조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제품만 생산해내는 위탁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외 정세에도 흔들림 없는 K제조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부장 미래포럼>은 <소부장 TF>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 소부장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숙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미·중 갈등이 격화한 가운데 일본과 대만은 확실히 미국 편에 섰다. 각각 반도체 산업 재건, 중국의 무력 침공 방지라는 목적을 위해 반도체 산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소부장 막강한 日, 과거 영광 재현하나
일본은 1980~1990년대 미국과 함께 반도체 맹주였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도시바, NEC, 히타치 등이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 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해 통상 압박 등을 펼쳤고 3차례에 걸쳐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일본 주요 기업은 하나둘씩 무너졌고 내부적으로도 기술력 저하, 수율(완제품 중 양품 비율) 하락 등을 이겨내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했고 줄도산에 이르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소부장 회사들이 명맥을 이어갔다. 소재 및 부품에서는 신에츠·섬코(반도체 웨이퍼), JSR·도쿄오카공업·스미토모화학(포토레지스트), 호야(포토마스크) 등이 대표적이다. 장비 쪽에서는 도쿄일렉트론(TEL), 고쿠사이, 레이저텍 등이 포진한다.
그럼에도 갈증은 남아있었다. 키옥시아, 르네사스 등을 제외하면 대표할 만한 반도체 제조사가 없었다. 한국, 미국, 대만은 물론 중국에도 밀리면서 일본 내 우려가 팽배했다.
글로벌 반도체 대전이 열리자 결국 일본도 참전을 결정했다. 반도체 관련 예산을 수조원 책정했고 해외 기업 투자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가장 큰 결과물은 TSMC를 끌어들인 점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소니, 덴소 등과 협력을 통해 일본에 조단위 투자를 단행했다. 현재 구마모토현에 공장이 지어지고 있다.
메모리 ‘빅3’인 마이크론도 히로시마 지역에 차세대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메모리 1위이자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는 요코하마에 연구개발(R&D) 전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세울 예정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집권하고서는 이러한 기조가 더 강해졌다. 대표적인 것이 라피더스 설립이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등 주요 기업 8곳이 모인 반도체 회사다. 2027년 2나노미터(nm) 반도체 제작이 핵심 과제다.
또 다른 먹거리 전기차·배터리 분야도 지원을 본격화했다. 일본 정부는 도요타 배터리 투자에 1조원 이상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파나소닉, 혼다 등에도 힘을 실어줄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기시다 총리는 유수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준의 지원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TSMC 앞세운 臺, 반도체만이 살길
대만은 지난 수년간 반도체 강국으로 급부상했다. 앞서 이야기한 TSMC를 비롯해 UMC·VIS(파운드리), 미디어텍(팹리스), 유니마이크론(반도체 기판), ASE·파워텍(패키징), 글로벌유니칩(디자인하우스) 등이 반도체 공급망을 형성한 덕분이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선두권이다. TSMC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나머지 기업들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전 부문에서 대형사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TSMC는 1987년 대만 행정원 소속 산업기술연구회가 전액 출자한 공기업이 전신이다. 1992년 민영화됐으나 대만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6.68% 지분을 보유 중이다. TSMC의 경우 2020년 전후 파운드리 전성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삼성전자, 인텔 등 종합반도체회사(IDM) 매출을 뛰어넘기도 했다.
대만에 반도체는 국가안보이자 국력이다. 중국이 호시탐탐 노리는 시점에서 ‘실리콘 실드(반도체 방패)’의 무게감이 상당한 영향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반도체 의존도는 압도적이다. 지난해 대만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 데 반도체는 1등 공신이었다.
이에 대만은 민간과 정부가 ‘원팀’을 이뤄 반도체 지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160조원을 투입해 주요 기업들이 전국적으로 반도체 공장을 세우도록 유도했다. 실제로 북부 신주과학단지부터 남부 타이난·가오슝까지 20곳 이상 생산라인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미국, 일본 등에도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칩4 동맹의 표식이자 현지 고객 및 협력사와의 네트워크 강화 차원이다. 독일 등 유럽에도 생산거점을 두는 것을 검토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반도체를 양산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넓혀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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