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과이익 공유·민감한 기밀 요구에 반도체 업계 '분통' - 알고 보니 '따뜻한' K칩스법…디스플레이·배터리 등도 기대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미국 반도체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조금 지급 조건이 지나치다는 이유에서다.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마저 난색을 표한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고심이 크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말 통과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이 국내 기업을 보호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마크 리우 TSMC 회장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부 조건들이 있다”고 미국 반도체법을 평가했다.
최근 미국 상무부가 공개한 반도체 보조금 신청 절차 세부 지침에 따르면 생산원가를 추산하기 위한 여러 자료를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 제조사의 민감 정보인 웨이퍼 크기별 생산능력(캐파),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가동률, 연도별 생산량 및 판매가 변화, 인건비 등을 포함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상 기업은 미국 정부와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경우에 따라 생산시설을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도 제시됐다. 아울러 중국 등 위험국가에 10년간 첨단 반도체 5%, 성숙공정 10% 이하까지만 캐파를 늘릴 수 있는 안전장치(가드레일) 조항까지 따라야 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보조금을 받게 되면 초과이익 75%를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투자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현지 투자가 미국만 좋은 일 시켜주게 되는 것”이라며 “한국과 대만 등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법안”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는 수십조원을 들여 미국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대형 고객 유치,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등과 협업 목적이다. 하지만 미국 반도체법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추가 투자를 예고한 이들은 물론 현지 진출을 고려 중인 회사들마저 셈법이 복잡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는 K칩스법이라는 탈출구가 늦게나마 마련된 상황이다. 해당 법은 설비투자에 따른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중견기업은 8%에서 15%, 중소기업은 16%에서 25%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올해 한정으로 신성장·원천기술과 일반 기술 투자 세액공제 비율은 2~6%포인트 높이고 투자 증가분 10%를 추가공제하는 임시투자 세액공제도 적용된다. 이에 따라 대기업 등은 최대 25%, 중소기업은 35% 수준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입해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반도체 단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미 경기 평택 등지에 초대형 반도체 공장을 설립 중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 역시 용인에 120조원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예정인 가운데 경기 이천, 충북 청주 등 캐파를 늘려가고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법 대가가 예상보다 상당한 데다 중국 투자까지 제한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라며 “불행 중 다행으로 국내 투자 요건이 완화되면서 우리나라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개정에 따라 반도체 투자 세제 지원이 미국 등 주요국 대비 최고 수준임을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은 한국 25~35%, 미국 25%, 대만 5% 정도다. 연구개발(R&D)의 경우 한국 30~50%, 미국(증가분 대상) 20%, 대만 25%, 일본 6~12%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미국 반도체법 세부 조항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의 시설투자 세액공제율 추가 확대는 대내외적 불확실성 속에서 현재의 국내 반도체산업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 시장을 대비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국내 소재, 부품, 장비 업계에도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한편 K칩스법에 따라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자국 투자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주 삼성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충남 아산 디스플레이 클러스터 투자가 예정된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충청 지역에 연이어 증설을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