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사라지고 있다. 재택근무는 코로나19 사회적거리두기에 따라 IT 플랫폼 기업을 시작으로 여러 산업분야로 빠르게 도입되면서, 새로운 기업문화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엔데믹 전환과 어려워진 경영환경에 IT기업조차 임직원에 다시 사무실 출근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재택근무를 가장 빠르게 도입했던 플랫폼 기업의 최근 근무 방식 변화 현황과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본다.<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오병훈 기자] 새해 정보기술(IT) 기업 근무형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게임사 재택근무는 지난해부터 속속 사라졌다. 대형 신작 출시가 급해진 게임사 대부분 전면 출근으로 전환한 상태다.
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회적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침체기를 겪었던 국내 게임사들은 ‘필사즉생(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각오로 신작 출시를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재택근무도 대부분 종료됐다.
지난해 대형 신작을 배출하지 못했던 게임사는 출시 일정을 맞추거나 새로운 지식재산권(IP) 발굴에 전력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게임사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재택근무 실시 후, 예정된 주요 신작게임 일정에 차질이 생긴 바 있다.
◆게임업계, 코로나19 이전 근무환경으로=최근 엔씨소프트는 사내공지를 통해 “6개월간 검토한 결과 대면으로 출퇴근하는 게 현 상황에 보다 필요하다”며 출근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도 사내 타운홀미팅에서 “협업과 소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면 근무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넷마블 또한 전면 사무실 출근으로 신작 개발 속도를 올리고 있다.
지난해 신작 게임 일정이 더뎌진 건 대표적으로 엔씨소프트 ‘쓰론앤리버티(THRONE AND LIBERTY, 이하 TL)’다. TL은 당초 지난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다만 지난해 여름 코로나19가 심해지며 재택근무 시행이 불가피해졌고, 그 여파로 출시 일정이 미뤄졌다. 펄어비스 ‘붉은사막’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개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지만 올해로 연기됐다.
이는 근무 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고사양 장비로 이뤄졌던 게임 개발이 둔화되고, 비대면 회의가 늘어나면서 이전보다 공동 작업에 대한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시간 중요한 회의를 진행하고, 수정사항 등을 반영하기 위해 대면근무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크런치 모드를 시행하는 곳들도 나타나고 있다. 크런치 모드란 신작 출시나 업데이트 시즌을 앞두고 야근과 연장근무가 포함된 집중 업무 기간이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개발조직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수시로 회의할 것들이 많다”라며 “출시나 업데이트를 앞두고는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 많아 전면 출근 효율이 높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게임사 각각의 근무환경이 다른 만큼, 팀 성격에 따라 재택근무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주요 콘텐츠 업데이트와 게임 출시를 앞둔 개발팀은 대면근무가 필수인 상황이지만, 라이브서비스팀 일부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기도 한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서비스 중인 게임에서 서버 오류나 버그 등 문제가 발생하면, 집에서 곧장 컴퓨터를 실행해 실시간 대응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판단에서다.
또 다른 게임사 관계자는 “실시간 수정사항이 발생하는 라이브서비스 개발팀은 보다 발빠른 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게임디자인팀이나 콘텐츠기획팀 같은 경우 중요 회의를 마치고 나면, 개인 작업에 몰두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해 재택과 대면 근무를 병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해 큰 한파 예고, 신작 출시 늦출 수 없다”=지난해 상당수 게임사들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17개 게임사 중 9개 게임사 수익성이 악화됐다. 인건비, 지급수수료 등 영업비용은 늘어났지만 주요 신작 및 기존 타이틀 성적은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불필요한 사업을 정리하거나 감원까지 단행하는 게임사들도 나타났다.
문제는 올해 더 큰 한파가 몰아칠 것이란 전망이다. 신용평가사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올해 국내 게임사 신용등급 하락 압박이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임업계 전반에 걸친 인건비 인상, 수익성 악화로 단기간 실적 회복이 어려워진 탓이다. 신작 출시 속도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이유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지난해 성적이 아쉬웠던 게임사일수록 올해 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다”며 “게임사 대부분이 재미를 강조한 신작으로 반전을 노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출시 일정에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해서나, 혹은 신규 IP 발굴을 위해서라도 출근을 하지 않았던 팀조차 내근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게임사 경우 재택근무 기조는 유지하되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출퇴근을 병행하고 있는 곳도 있다. 예컨대 팀장 판단 아래 주 2회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식이다. 팀별로 업무 성향 및 업무 순환 주기가 다르기 때문에 적절히 재택근무를 활용하면, 팀원 만족도와 업무 효율을 모두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게임사가 전면 출근 체제로 돌아갈 경우, 개발자들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을 하는 등 인력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 빅테크 업계에서는 회사 대표와 임직원이 근무형태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전면 출근을 반대하는 임직원들을 향해 “사무실이 싫다면, 회사를 떠나라”고 발언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다만, 한국 게임업계 정서상 인력 유출 우려는 기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게임사 개발조직이 전면 출근으로 전환된 지 반년 가까이 됐지만, 주변에서 재택근무를 위해 이직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며 “개개인 성향 및 연령에 따라 다르겠지만, 재택근무가 일과 삶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을 싫어하는 직원도 제법 많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