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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죽음'에 축배든 진행자…포클랜드 전쟁, 그리고 마라도나 [디지털 & 라이프]

아르헨티나의 TV진행자 산티아고 쿠네오
아르헨티나의 TV진행자 산티아고 쿠네오
지난 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한 TV진행자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 소식을 전하면서, 여왕에 대한 욕설과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다.

TV진행자이자 기자인 티아고 쿠네오 "여왕을 데려간 사탄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고 말하며 웃고 손뼉까지 쳤다.

이 장면을 영국 매체들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즈 등 주요 외신들이 다뤘다. 물론 외신들이 별 유쾌하지도 않은 이 소식을 굳이 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이 서거했지만,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40년 묵은 역사적 원한이 아직도 씻기지 않고 남아있다는 점을 조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러져가는 '대영 제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던, 그러나 무리한 전쟁
1982년5월, 두 나라는 남대서양에 있는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를 두고 3개월간 전쟁을 치렀다. 영국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이 섬을 아르헨티나가 기습 점령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지금 생각하면 강대국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일방적으로 압살해버린 사소한 국제 분쟁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영국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국의 국력은 쇠약해 있었고, 실제로 당시 영국의 군사력이 아르헨티나를 압도할 수준도 아니었다.

특히 영국은 이후 경함모를 이끌고 왔지만 그에 앞선 1단계 작전에서는 수천 킬로미터(km) 공중 급유를 받으며 대서양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질러 전쟁을 벌여야하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영국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되는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 <사진>BBC
영국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되는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 <사진>BBC
지금 생각하면, 포클랜드섬이 가지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감안해도 국가간 전면전을 불사할만큼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을까 생각되지만 당시 영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의 입장에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대영제국'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 운명과도 같은 한 판이었다.

적당히 타협하면 전세계 곳곳에 남아있는 '영국령' 제도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당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류 왕자도 이 전쟁에 참전했다.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패전이었다. 영국 원자력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가 격침되는 등 649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영국의 피해도 컷다. 255명이 전사했고, 구축함 2척이 격침당하는 등 승전이라고 표현하기에 무색할만큼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아르헨티나 군이 발사한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에 세필드 등 영국 군함이 격침되면서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이 전쟁 이후 '앙숙' 관계였던 두 나라는 8년뒤인 1990년에야 다시 국교를 정상화했다.

전쟁의 후폭풍은 두 나라 모두에게 크게 미쳤지만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포클랜드 섬을 기습 점령함으로써 국민적 인기를 업고 장기집권을 꾀하려던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정권은 몰락했고, 이는 결국 1983년 라울 알폰신(Alfonsín)대통령의 민주 정부를 출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알폰신 대통령은 대통령에 오른 후 이른바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을 통해 민주 인사 수천명을 고문, 살해했던 군부 독재자들을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내리는 등 역사적으로 단죄했다.
생전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
생전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
전쟁 당시, 영국은 '철의 여인'이라 불렸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수상이 이끄는 보수당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다. 승전에 고무된 영국 국민들은 경기침체로 인기가 바닥이었던 보수당에 전폭적인 힘을 실어줬다.

대처 수상은 유명한 '대처리즘'을 통해 과감한 규제개혁, 노동개혁 등을 통해 '영국병'을 치료하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물론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대처리즘은 경제 회생의 과실을 얻었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적 빈부 격차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고, 이는 현재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통된 난제로 남아 있다.
◆마라도나로 위로받은 아르헨의 자존심

전쟁이 끝난지 불과 4년 밖에 지나지 않은 지난 1986년 6월,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다시 격돌한다. 이번엔 축구장이다. 물론 정확하게는 영국이 아니라 '잉글랜드'이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는 축구 신동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잉글랜드를 격침시켰다. 마라도나는 포클랜드 전쟁 패전으로 상처를 입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위로했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독일까지 제압하고 통산 2번째 FIFA컵을 차지한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 마라도나의 질주 모습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 아르헨티나 vs 잉글랜드. 마라도나의 질주 모습
참고로, 이 경기는 축구사에 남을 두 장면을 남겼다. 하나는 마라도나가 손으로 골을 넣은 이른바 '신의 손', 다른 하나는 하프라인 근처에서 볼을 가로챈 마라도나가 65미터를 질주해 영국의 수비수 5명과 골기퍼까지 제치고 넣은 쐐기골이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4년 포클랜드 전쟁을 오버랩시키며 이 경기를 '진짜 전쟁과도 같은 경기'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세계적 관심사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의 최대 하일라이트였다.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의 서거로 인해,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 못지 않게 과거 영국이 식민지 시대에 저질렀던 만행들도 동시에 재조명되고 있다. 한 시대가 마무리되고, 그럼으로써 또 한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좀 더 넓게 보면 과거에서 이어져 온 역사라는 '필연의 시퀀스'일 수 밖에 없다. 저 아르헨티나의 TV 진행자에겐 어쩌면 포클랜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그 무엇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중차대하고 의미가 있다.

그것이 나비효과가 돼 어떤 역사적 후폭풍으로 우리와 다시 조우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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