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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플레 감축법’에 속수무책… 韓 전기차, 묘수없을까 [DD인사이트]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논설실장]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서 세제혜택을 받지 못하게되자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결과적으로, WTO(세계무역기구)와 FTA(자유무역협정)의 기본 정신인 호혜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한 자유무역협정의 당사국 간에는 상호간의 혜택을 동등한 수준에서 제공해야한다. 즉, 미국내에서 적용되는 세제헤택은 FTA 체결 국가 제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하는 것이 바로 호혜주의 원칙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이달 초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미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을때, FTA 협정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도 요건을 맞추면 세제혜택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되지 못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미 경제동맹국들의 파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만약 FTA 당사국인 미국이 이번처럼 차별적인 조치를 실행하려면 여기에는 그럴만한 ‘긴급한 사유’가 존재해야한다. 아울러 긴급한 사유가 해소되는 즉시 차별적인 조치는 해제해야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현재 미국의 전기차 산업 또는 2차 전지(배터리) 산업에 있어 특별히 긴급한 사유가 될만한 상황은 없다. 긴급한 상황이라면 경제문제로 인기가 떨어진 미국 조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것 뿐이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위해 1944년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체제 이후 70년 넘게 지켜왔던 자유무역주의의 근간을 스스로 흔들어 버렸다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명분없는 보호무역 조치, 보복조치의 악순환 우려

결국 WTO 및 FTA 협정 당사국은 이처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차 별적인 보조금 정책 등을 문제삼아 상계관세 등 그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이 미국에 대한 어떤 보복조치를 취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억울하게 불똥이 튄 우리다.

'전기차'라는 엄청난 시대적 전환 앞에 미국, 중국, 유럽 뿐만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캐나다 등 자원 부국들까지 전기차를 매개로 한 기존의 무역질서를 무시하는 행동들이 돌출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미국 앨라배마, 조지아 공장을 빨리 전기치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이처럼 미국내에 전기차 생산 시설을 강제하는 것 자체가 ‘동일한 경제 영토’로 간주해 그동안 관세혜택을 부여해왔던 한-미 FTA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피해가 우려되지만 우리로서는 현실적으로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동일한 수준으로 보복 조치를 해봤자 미국이 입을 타격은 거의 없기때문에 그 자체로 실익이 별로 없다. 현재 국내 수입되는 미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금지한다고 해도 그 규모가 크지 않기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 들여오는 수입 전기차는 테슬라처럼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조립돼 들어오는 '중국산 전기차' 비중이 높다.

물론 중국도 진즉부터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차별적인 조치를 취해왔다. 다만 우리 입장에선, 기존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산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기때문에 보복할만한 실익이 없었을 뿐이다.

만약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산이 비중이 어느정도 있었던 상황에서 차별적 조치를 받았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도 달랐을 것이다.

◆커지는 전기차 보호무역주의… 정교한 대응전략 시급

현재 우리 나라는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아세안 등 다양한 국가들과 FTA 협정을 맺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전기차 제조국을 따지지 않고 전기차 보조금을 동일하게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되고보니 우리 나라만 교과서대로 FTA 원칙에 충실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됐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입 전기차 업체에 지급한 보조금은 국비와 지자체 지원 등을 합쳐 820억원 넘는다. 국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높은 테슬라가 수입 전기차 보조금 지급액의 거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산 전기차도 보조금 혜텍을 받았다. 특히 올 상반기에는 중국산 전기 상용차(버스·화물차) 수입이 상대적으로 급증했다. 중국산 전기 상용차는 올 상반기 국내에서 1351대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159대)보다 749%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차의 점유율은 지난해 1.1%에서 올해 6.8%로 1년 만에 큰 폭으로 늘었다.

중국 전기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최근 높아지면서 국내 자동차업계에선 “이제 우리도 중국처럼 자국 생산된 전기차에 대한 차별화된 보조금 정책으로 맞대응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제 무역 및 통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근간은 상호주의다.

교역 상대방이 상호주의 원칙을 깨버리면, 우리 정부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상황을 원래대로 정상화시키는 것은 역할을 해야한다.

그동안 가장 강력한 경제동맹 모델로 인식돼왔던 FTA 협정도 결국은 얼마든지 무력해질 수 있음을 이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사례로 증명이 됐다. FTA에 안주해왔던 사고의 틀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바꿔야할 시점이 왔다.

필요하다면 정부는 경제논리 뿐만 아닌 경제 + 안보 논리를 앞세워서라도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후폭풍을 최소화시켜야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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