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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알뜰폰, 메기와 미꾸라지 사이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알뜰폰 시장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젊은 층들 사이에서 알뜰폰을 모르면 '호갱' 소리를 듣는다. 실제 알뜰폰은 지난해 11월, 출범 10년 만에 1000만 가입자를 넘긴 이후 지난 6월 말 기준 1160만3963명을 기록하며 매달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오는 9월 소프트웨어 기반의 e심이 본격화되면 알뜰폰 성장세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19년 금융위원회로부터 알뜰폰 사업을 국내 1호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KB국민은행에 이어 최근 토스가 알뜰폰 업체를 인수하며 시장 출사표를 냈다. 여기에 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에 따라 금융권의 알뜰폰 시장 진출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의 긴장감은 높아졌다.

그동안 중소 알뜰폰 업계의 고민은 갈수록 높아지는 국내 이동통신 자회사의 점유율이었다. 최근까지 이들의 점유율을 제한하는 내용의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거대 금융권의 공습이 예고되면서 점유율 제한 관련 내용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대신 업계는 금융권의 알뜰폰 진출이 현실화될 것을 대비, 공정경쟁체제를 우선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는 금융위를 방문, “금융사들이 도매대가 이하의 파격적인 요금제를 출시하고 과도한 경품과 사은품을 지급해 다른 사업자들의 가입자를 유인해도 대항할 방법이 없다”며 “제도적 장치를 선구축해 불공정한 행위를 막을 수 있는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브랜드 ‘리브엠’의 경우 주거래 우대, 적금상품 금리 우대 등 금융거래와 연계한 통신비 할인 서비스를 차별화로 내세웠지만 초반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10만 가입자를 확보했고, 지난 5월엔 가입자 30만을 넘어서며 알뜰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최근 조사에선 높은 고객 만족도를 기록하며 다른 알뜰폰 사업자들을 뛰어넘고 있다.

알뜰폰 업계는 그러나 리브엠이 30만의 가입자를 확보한데에는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도매대가 이하의 파격적인 요금제와 과도한 경품 지급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리브엠은 2019년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망 이용대가 3만3000원인 음성·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2년간 최저 2만2000원에 제공했다.

가입자 1인당 월 1만1000원, 2년이면 26만원 이상 꼴로 적자지만 KB국민은행 입장에선 고객들에게 다양한 금융 상품을 팔 수 있고, 일정기간 고객을 묶어둘 수 있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또, 소비자들의 통신 데이터를 확보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다.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은 비슷한 통화·데이터량 기준 약 4만9000원에 서비스하고 있어 요금 자체로는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현재 알뜰폰을 전업으로 하는 중소 사업자들은 약 7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알뜰폰 사업으로 발생하는 수익으로만 회사를 유지하는 사업자들이다.

알뜰폰의 태생이 이통3사를 중심으로 고착화된 시장 경쟁을 활성화 시키는 동시에 저렴한 요금제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자본력을 갖춘 대형 금융사들의 시장 진출은 환영할 만하다. 고객 입장에서 요금 인하만큼 좋은 장치는 없기 때문이다. 꼭 알뜰폰 사업자가 ‘알뜰’하란 법도 없다.

다만 금융사 입장에서 알뜰폰은 통신 자체보단 금융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목적이 큰 만큼, 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권의 무분별한 시장 진출은 과도한 출혈 경쟁을 일으키면서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 수 있고, 금융 소비자 보호와 금융기관 건전성을 더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연 금융사들의 진출이 알뜰폰 시장을 혁신할 ‘메기’가 될지, 시장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공정한 경쟁환경에서 알뜰폰 정책목표인 요금인하, 경쟁활성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장 생태계가 망가진 이후에 이를 복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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