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글로벌 통신사들이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 투자비용 분담 원칙을 공식화 하면서,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 이미 관련 소송을 치르고 있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통신사들의 망 이용대가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세계 최대 모바일 산업 전시회 ‘MWC 2022’가 열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이사회를 열고, 대형 CP들의 망 투자비용 분담을 전제로 보편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GSMA 이사회 산하 폴리시(정책) 그룹은 ▲대형 CP에 망 이용대가를 직접 요구하는 방안과 ▲민관 보편기금을 마련해 CP들이 여기에 참여하는 방안 ▲규제 자율화 등 3개 방안을 제시했고, 이사회는 그 중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편기금 마련안을 승인했다.
GSMA 이사인 구현모 KT 대표는 “글로벌 CP가 망 투자에 나서면 그만큼 이용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펀드를 만들고, 글로벌 CP가 돈을 내는 형태가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는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대형 CP들이 막강한 플랫폼·콘텐츠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망 이용대가를 거부하는 행태에 대해 더 이상 개별 통신사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GSMA는 전세계 220여개국 750개 통신사들이 참여하는 이동통신업계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만큼 상징성도 크다.
망 이용대가 논쟁은 이미 글로벌 통신사들의 공동 대응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국내에서는 일찌감치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 망 이용대가 소송이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미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이어 유럽 13개 통신사들이 공동성명을 발표, 빅테크 기업도 망 투자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이로서 글로벌 CP들도 더 이상 망 투자 분담에 관한 논의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접어들면서, 통신사들은 대형 CP들로 인한 데이터 트래픽 폭증 속도가 망 투자 속도를 추월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실제, 구글과 넷플릭스 두 기업이 전 세계 데이터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이른다.
다만 망 투자 분담을 위해 민관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사업자들간 계약만으로는 망 이용대가를 받기 어렵다”며 GSMA의 결정을 환영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각국 정부와 CP들이 응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 구현모 대표 역시 “GSMA가 통신사업자들의 연합체이기 대문에 컨센서스(합의)를 이룬 것일 뿐, 이사회에서 의견을 모았다고 해서 당장 실행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각국 입법부나 규제기관 참여가 없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음번 GSMA 이사회에서 보다 구체화될 것 같다”고 상황을 전했다.
국내에서 펀드 조성을 검토할 경우에는 정보통신진흥기금과 방송통신발전기금 등 기존 ICT 기금을 개편해 일정 규모 이상 CP들에 기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국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체계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결국 국내 CP들만 부담을 질 것이란 ‘역차별’ 논란이 일 수 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은 MWC 2022 당시 기자들과 만나 “GSMA의 논의를 전해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정책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임 장관은 “트래픽을 많이 유발하는 CP가 일정 부분 통신망에 대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과기정통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점도 짚었다.
한국 국회에서 계류 중인 망 이용대가 관련 법안들도 관건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김영식 의원(국민의힘)이 발의한 망 이용대가 지불 의무화 법안을 비롯해, 과방위에는 글로벌 CP가 망 이용대가를 내거나 최소한 계약 협상을 치르도록 의무화 하는 법안들이 줄줄이 발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