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의 실적 악화 원인은 ‘마스크’다. 2017년 한컴이 인수한 안전장비 기업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은 작년 마스크 대란 당시 폭발적인 매출 상승을 기록하며 한컴의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견인했다.
하지만 한컴라이프케어의 매출 상승은 단기 특수에 따른 성장이었던 만큼 올해는 크게 뒷걸음질 쳤다. 2020년 1~3분기 한컴라이프케어의 매출은 1091억원이었는데 2021년 1~3분기에는 48.8% 줄어든 733억원을 기록했다. 이와 같은 흐름은 4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4분기도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컴라이프케어에 대한 실망감은 주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8월 17일 공모가 1만3700원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한컴라이프케어는 12일 종가 기준 7660원을 기록했다.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44%나 내렸다. 공모가 확정 당시 “단기성 호재를 제외하고 보수적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했다”는 주장이 무색할 만큼의 급락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연관성 없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 중인 한컴에 대한 비판 여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김상철 회장이 인수한 이후 한컴은 본업의 성장보다는 기업 인수합병(M&A)에 열을 올려왔다. 정보기술(IT) 분야와 관련성이 없는 한컴라이프케어 인수를 두고 “몸집 부풀리기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작년 ‘마스크 대박’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잠잠해졌다가 다시금 생겨나는 추세다.
◆유망사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지속성 있나?
전체 실적은 악화됐지만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 분야 매출은 늘었다. 2020년 1~3분기 1715억원이었던 한컴의 SW 매출은 올해 1854억원으로 8.1% 증가했다. 한컴의 별도 기준 매출액도 1~3분기 누적 848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3% 증가했다.
다만 사업의 성장과 별개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한컴이 유의미한 경쟁력을 가졌는가에 대한 물음이 지속하고 있다. 한컴이 매출의 상당수를 공공(B2G)에 의존하는 만큼 피할 수 없는 비판이기도 하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 오피스 프로그램인 ‘워드’에 인공지능(AI)을 이용한 STT(Speech to Text)를 탑재하는 등 제품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지난 10월 한컴이 신규 출시한 ‘한컴오피스 2022’는 2년 만의 신규 버전임에도 불구하고 2년 전에 출시한 버전과 큰 차이가 없다.
몸집을 불리기 위해 지속해온 M&A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한컴은 AI, 블록체인, 로봇, 모빌리티, 사물인터넷(IoT), 드론, 클라우드, 우주산업, 메타버스 등 IT 업계의 주요 트렌드마다 뛰어들고 있다. 유망 스타트업을 인수한 뒤 ‘한컴’으로 사명을 변경, 그룹에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2017년 한컴라이프케어, 2018년 한컴로보틱스(구 코어벨), 2019년 한컴모빌리티(구 미래엔씨티), 2021년 한컴케어링크(구 케어링크), 한컴프론티스(구 프론티스) 등이 예다.
문제는 각 기업이 ‘한컴그룹’으로 묶였음에도 별다른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컴은 자회사를 통해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SST 기술(지니톡 보이스)과 외국어를 번역하는 기술(지니톡 텍스트), 외국어의 발음 정확도를 측정하는 기술(지니튜터) 등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기술이 한컴오피스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12일 종가 기준 한컴의 주가는 2만550원이다. 시가총액 5179억원으로 작년 이맘즈음에 비하면 크게 오른 상태지만 지난 6월경 2만원 중반대를 기록하다가 최근 하락세를 맞이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14.5배가량이다.
◆2세 경영 본격화··· 전환점 맞을까
지난 8월 한컴은 김연수 대표를 신규 선임했다. 김 대표는 김상철 한컴그룹 회장의 장녀다. 2세 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 대표는 그룹의 M&A 실무를 이끌어온 경영 전문가다. 한컴MDS, 한컴위드, 한컴인스페이스, 한컴케어링크, 한컴프론티스 등이 김 대표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한컴과 같이 벤처 1세대 기업인 티맥스소프트 인수도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로도 M&A에 집중하는 기조는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컴은 최근 디지털마케팅 기업 어반디지털마케팅을 인수했다. 또 10월에는 페이팔 창업자 피터 필 회장이 창업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 메가존과 손잡고 매각금액이 6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평가되는 티맥스소프트 인수전에도 참여했다. 다만 한컴은 4곳으로 추려진 적격 예비 후보군(숏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크레센도와 재무적 협력에 나선 김 대표 체재의 한컴은 이후로도 공격적인 M&A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