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생인 그는 25세가 되던해 열린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육상 선수로 출전,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땄다.
대회 마지막 날 열린 마라톤 경기, 42Km를 달려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낸 쓰부라야는 2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뒤쫓아온 영국 선수가 그를 앞질러 골인해버렸다.
은메달이 동메달로 바뀌는 순간,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의 쓰부라야는 골인 후 그대로 드러눕고 만다.
숨이 끊어질 듯이 막판 스퍼트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건만 그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참고로, 당시 마라톤 우승자는 에티오피아의 전설적 맨발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다. 아베베는 2시간 12분 11초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도 골인 이후, 생생하게 몸풀기 운동을 했던 괴물이었다.)
그로부터 4년뒤인 1968년 1월, 쓰부라야 선수는 그해 개최되는 멕시코 올림픽 출전을 위해 소집된 국가대표 합숙소에서 자결한다.
메달의 색깔이 중요했던 시절, 엄청난 압박감을 끝내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선 '도쿄 올림픽 이후, 군인(자위대 소속) 장교 신분이었던 쓰부라야가 속죄를 위해 할복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저는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습니다. (중략)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가 부모님께 남긴 유서의 한 대목이다.
그로부터 57년뒤인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24. 미국)의 눈물에 전세계가 주목했다. 지난달 27일 열린 여자체조 단체전 결선 경기 도중, 갑자기 기권을 선언하고 눈물을 쏟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무게가 내 어깨위에 옮겨진 것 같다.”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끝내 견디지 못한 것이다.
바일스는 개인종합, 도마, 이단평행봉, 마루 등 종목별 결선에 오른 4개 종목을 모두 기권했다. 직전인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 기계체조에 걸린 6개의 금메달 중 4개를 휩쓴 최강자였고, 이번 도쿄 올림픽에선 6관왕 후보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미국팀의 확실한 금메달 보증 수표였다.
그러나 아무도 바일스가 내린 결정을 비난하지 않는다. 예전같았으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로써 너무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았어도 할말이 없었다.
미국내에서도 오히려 바일스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격려와 위로가 많았다.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도 시몬 바일스의 결정을 지지한다며 응원했다.
비록 조금씩이지만 역사는 이처럼 조금씩 전진해왔다.
1964년 도쿄와 2021년 도쿄, 같은 장소에서 열리지만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보면, '스포츠 국가주의'가 지배했던 시대가 점점 끝나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비운의 마라토너 쓰부라야 고키치가 지금도 생존해있었다면 누구보다 먼저 바일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얘기해줬을 것이다.
2020 도쿄 올림픽도 이제 폐막이 이틀 남았다. 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 각자 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인류의 화합과 평화의 제전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곳곳에서 메달 순위 경쟁으로 표출되는 국가주의의 역설적인 모습은 여전히 돌출된다.
지상파 TV 3사가 동시 화면으로 야구나 축구 경기를 생중계해 비난을 받았다. 이 역시 지나친 상업주의를 넘어 그 근본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스포츠 국가주의의 잔재와 무관하지 않다. 올림픽 성적을 국가별 서열. 체제의 우월로 치환시켰던 구시대의 잔상이다.
이는 ‘올림픽을 왜 즐기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지상파 TV 3사가 종목의 같은 중계를 할 동시간대에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건걱들이 0.01초를 극복하기위해뛰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었다는 것은 아쉽다.
또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지라도 시리아 내전으로 불가피하게 난민 대표팀의 출전하게된 선수들의 눈빛도 보고 싶었다.
우리의 메달 유력 종목과는 관계없더라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가급적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역도 여자 55㎏급에 출전한 하이딜리 디아스(30) 선수가 극적인 역전으로 97년만에 필리핀에 최초의 금메달을 안기며 눈물짓는 장면에서 같이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TV화면에 떠있는 국가별 메달 순위표를 볼때 요즘 드는 생각은 예전보다 더욱 단촐해졌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개인적인 견해지만, 이번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었고, 내면의 울림이 컷던 장면은 여자 탁구 개인전에 출전해서 우리 나라 신유빈 선수와 대결한 룩셈부르크의 니시아리안(58) 선수의 인터뷰다. 세계 최강 중국 탁구대표 선수 출신으로 1992년에 룩셈부르크로 귀화해 지금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오늘의 나는 내일보다 젊습니다. 여러분들도 즐기면서 도전하길 바랍니다.”
'국가의 명예'라는 막연한 거창함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무엇인가에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올림픽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국민들은 희망과 위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