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지난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계기로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인정보위)가 극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누적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신고 사례만 400건 이상이다. 법 집행을 위해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개인정보위는 2년치 이상의 업무가 밀려있는 상태다. 통합 전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이관받은 신고 건수가 300여건 이상, 통합 출범 후 신고 받은 건수도 100여건 이상 등 400건 이상의 조사해야 할 사례가 쌓여 있다.
개개 건마다의 성격이 다르기에 업무 처리에 소요되는 기간을 특정하긴 어렵다. 하지만 개인정보위의 판단이 행정부 차원의 최종 판결인 만큼 조사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사건이 소송으로 비화될 수 있기에 법리적 검토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조사에 시간과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업무 처리가 지연되고 있지만 신고된 사례가 차례대로 조사되는 것도 아니다. 인공지능(AI) 챗봇 서비스 ‘이루다’ 같은 국민 관심이 지대한 사례는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기에 중요도가 낮은 사례의 경우 순번이 밀린다. 2~3년치 이상의 업무가 쌓인 상태인데 큼직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언제 처리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개인정보와 관련된 법 제·개정 및 집행도 개인정보위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방역 및 예방이다. 지난해 개인정보위는 방역당국과 함께 역학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정보 침해 사례를 조사하는 데 공을 들였다. QR코드를 활용하는 전자출입명부나 수기출입명부에 전화번호 대신 개인안심번호를 기입하는 등의 제도를 강구했다.
여전히 갈길이 먼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의 후속 조치에 더해 데이터기본법 등 개인정보와 관련된 법 제·개정 과정에도 참여해야 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 예고한 전자상거래법의 경우 개인정보 침해 요소가 있다는 반발이 나오는 중이다.
정부가 ‘데이터 활용’을 강조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개인정보 침해 관련 이슈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정보위는 가명정보 활용 사례 발굴 등에서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광범위한 업무 범위, 늘어만 가는 업무량으로 개인정보위는 심각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개인정보위의 현재 인력은 154명이다. ▲공정거래위원회 702명 ▲국가인권위원회 244명 ▲국민권익위원회 547명 ▲금융위원회 340명 ▲방송통신위원회 340명 ▲원자력안전위원회 173명 등(인사혁신처 2020년 공무원 인사통계연보) 타 위원회와 비교했을 때 인력이 적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업무 과다에 개인정보위는 ‘AI 개인정보 침해 예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다. 중앙행정기관이 추진하는 법령 제·개정안에 개인정보 침해요인을 사전평가하는 시스템으로 인력 증원 없이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위의 인력 부족은 유명하다. 궁여지책으로 꺼낸 AI 시스템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AI는 사람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근본적인 문제 개선이 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개인정보위로서도 답답하다. 행정기관이다 보니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인력을 충원할 수도 없다. 행정안전부나 기획재정부의 지원을 바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개인정보보호법학계 관계자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이슈는 개개인의 이익과 직접 맞닿은, 시급하게 처리돼야 하는 문제다. 이를 총괄하는 기관이 인력이 부족해서 처리에 2~3년이 걸린다고 하면 당사자가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라며 “국민 이익을 위해서라도 합리적인 수준의 인력 지원이나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