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수신료 인상 여부를 두고 마찰을 빚었던 CJ ENM과 딜라이브 간 갈등이 새 국면을 맞았다. 양사가 끝내 협상에 실패하면서 대신 정부가 분쟁 중재절차를 열고 사실상 수신료 인상률을 정하기로 했기 때문.
일반적으로 케이블TV·IPTV 등 플랫폼을 제공하는 종합유료방송사업자(SO)와 방송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사이 수신료 분쟁은 종종 있어왔지만, 이처럼 정부가 나서 협상 키를 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결론이 나든 추후 SO·PP간 갈등의 선례가 될 수 있어, 업계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2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전날 CJ ENM과 딜라이브간 프로그램사용료 분쟁에 대한 중재절차를 개시했다. 각계 전문가를 선정해 분쟁중재위원회(이하 중재위)를 꾸린 뒤 양사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 중 최종 중재안을 내놓는다. 중재위에서 프로그램사용료 수준을 정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CJ ENM과 딜라이브는 프로그램사용료 인상여부를 놓고 힘겨루기를 해왔다. CJ ENM은 20% 인상을, 딜라이브는 동결을 주장하며 협상이 틀어졌다. CJ ENM은 채널송출 중단(블랙아웃)까지 예고하며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이에 과기정통부가 중재에 나섰다. 우선 지난 8월31일까지 협상기한을 주되 합의점을 찾지 못할 경우 정부 중재안에 따르도록 했다. 협상은 결국 불발됐고 양사는 현재 정부 안을 기다리는 상태다.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눈치다. 케이블TV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콘텐츠 산업이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활성화에 큰 관심을 두고 있고, 한편에서는 케이블TV 시장의 가입자 하락과 인수합병(M&A) 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손을 들어줄지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결국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인상률을 정하게 되는 것인데 정부도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재안 결과에 따라 향후 SO와 PP간 유사 분쟁 사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업계도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PP업계 한 관계자는 “PP와 유료방송사업자 간 거래 관계에 있어 정부가 중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첫 케이스고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PP도 SO도 입장이 다 달라 중재안이 어떤들 100% 부합하진 않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정부가 인허가권을 쥐고 있으니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을 수 밖에 없다”라고 관측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중재 잣대가 불분명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PP와 SO간 사적계약에 정부가 직접 나서 퍼센티지를 정해주는 사례가 생겼는데, 그럼 지상파와 SO간 재송신료 문제는 왜 그렇게 못해주냐는 불만이 분명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상파는 수년째 유료방송사에 가입자당재송신료(CPS) 인상을 요구하며 마찰을 빚고 있음에도 ‘사적거래’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개입을 꺼려온 게 사실이다.
여기에는 PP와 SO가 과기정통부 소관으로, 지상파방송사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소관으로 나눠져 있는 점도 한몫한다. SO와 지상파 간 갈등에는 양 부처가 서로 공을 떠넘기는 상황이다. 방통위가 방송분쟁조정위원회를 두고 있긴 하지만 사업자 요청 없이는 조정에 나설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방통위가 최근 직권으로 분쟁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CJ ENM과 딜라이브의 경우 협상기한을 주고 그 안에 합의가 안되면 정부 안을 따르기로 양사가 서명 날인을 한 케이스로, 이번에 한해 정부가 결정 권한을 위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면서 “앞으로도 시청자 블랙아웃 피해가 없도록 중재하는 과정에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