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웨이브, 티빙, 시즌 등 분산된 한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통합론’이 부상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OTT 공세 속에서 국내시장이 잠식당하지 않으려면, 한국 OTT 또한 이에 맞설 수 있는 몸집과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 이에 ‘뭉쳐야 산다’ 전략이 떠올랐다.
SK텔레콤이 불을 지폈다. 돌연, SK텔레콤은 시장에 합병 카드를 던졌다. 국내OTT 연합은 플랫폼 간 결합, 콘텐츠 협력 및 공동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꾀할 수 있는데, 합병‧합작법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는 방안이다.
유영상 SK텔레콤 MNO사업대표는 지난 23일 OTT포럼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웨이브와 티빙 합병을 통한 ‘K-OTT’ 단일화 방안을 깜짝 제시했다. 콘텐츠웨이브 이사를 겸임하는 유영상 사업대표는 박정호 SK텔레콤 대표 최측근 인물이다. 사실상 이날 발언은 SK텔레콤 메시지로 봐야 한다.
◆웨이브+티빙 합병 제안, 배경엔 ‘위기감’=SK텔레콤이 웨이브와 티빙 합병을 요구하는 이유는 ‘위기감’이다. 이대로라면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에 한국시장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 지상파 콘텐츠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우려 등이 뒤섞였다.
유 사업대표는 “플랫폼을 만들든 서로 콘텐츠를 교환하든, 가장 좋은 방법은 합병이다. 넷플릭스를 상대로 단일화해도 이길까 말까 하는데, 각각 떨어져 있으니 이대로 가면 1년 내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굉장히 강하게 있다”며 “(웨이브, 티빙) 콘텐츠가 다 있고, 통신회사가 판매하고 기술을 넣는다면 넷플릭스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반(反)넷플릭스’에 서 있다.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에 이어 KT까지 제휴를 확대해 한국시장을 넓히려는 상황이다. 그러나, SK텔레콤은 박정호 대표부터 유 사업대표에 이르기까지 넷플릭스를 받지 않겠다고 수차례 언급했다. 망 사용료 갈등도 있지만 SK텔레콤까지 가세한다면, 글로벌기업이 한국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빨리 열어주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유 사업대표는 “SK텔레콤도 넷플릭스 받아 쉽게 장사할 수 있다. 그러면 결국 모두 넷플릭스판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한국 콘텐츠에 잘해주는 것처럼 보여도 시장을 장악하면 결국 식민지처럼 종속돼 한국 콘텐츠 생태계 다 망한다”고 강조했다.
웨이브 내부적으로는 지상파 콘텐츠 한계를 겪고 있다. 웨이브는 지상파3사 콘텐츠를 모두 수급하고 있지만, CJ ENM과 JTBC 콘텐츠는 빠졌다. 그렇다고, 지상파3사 콘텐츠를 웨이브에서만 독점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웨이브는 넷플릭스처럼 구독형 월정액 방식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이를 뒷받침하려면 콘텐츠 경쟁력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지상파는 콘텐츠를 웨이브뿐 아니라, 시즌, 넷플릭스에도 공급하고 있다. 웨이브 콘텐츠(지상파)는 내주면서, 다른 콘텐츠(CJ ENM‧JTBC)는 못 가져오는 상황”이라며 “외형만 키우지 말고, 지상파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콘텐츠 경쟁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OTT 키우려는 정부, 사업자 간 협력 필요성 강조=정부 또한 OTT 사업자 간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내놓고 콘텐츠와 OTT 육성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에 플랫폼‧콘텐츠 사업자가 참여하는 ‘OTT 콘텐츠 글로벌 상생협의회’를 구성해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2024년까지 1조원 이상 콘텐츠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글로벌 플랫폼 기업 5개를 발굴하겠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방송통신위원회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 인사청문회를 통해 “웨이브, 티빙, 시즌은 대규모 자본을 콘텐츠 제작에 쏟아붓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OTT 사업자가 협업하고, 콘텐츠 제작 자금을 같이 펀딩한다면, 회사가 합쳐지지 않아도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수합병 전 단계라도, 제작을 같이 할 수 있다. 그런 의지는 사업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또한 국내 OTT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합종연횡이 필요하다고 봤다. 합병 이전에 콘텐츠 협력 등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콘텐츠 통합이라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비자는 플랫폼 통합이든 콘텐츠 단일화든, 대표 국내 방송 콘텐츠를 한 곳에서 시청하고자 하는 니즈가 있다.
우선 지상파3사와 종합편성채널(종편), CJ ENM 등 대형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콘텐츠를 각 OTT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제휴 확대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이와 동시에 OTT 사업자들이 자금을 펀딩해 대작 콘텐츠를 공동 제작하고, 개별적으로는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와 차별성을 꾀할 수 있는 작품 등을 가져오는 시나리오다.
웨이브 관계자는 “콘텐츠 제휴, 콘텐츠 공동 투자도 생각하고 협의해볼 수 있다”며 “독자적으로는 시장 점유에 한계가 있어, 통합 서비스와 관련해 과거 여러 차례 논의한 바 있다. 공식입장은 정해진 바 없다”고 설명했다.
◆웨이브+티빙, 아직은 시기상조=다만, 웨이브와 티빙 합병은 당장 현실화하기 어렵다. 티빙은 다음 달 JTBC와 합작법인 출범을 앞두고 있어,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새로운 OTT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합병을 검토할 이유가 없다.
CJ ENM은 “공식적으로 검토하거나 내부에서 논의한 적 없다”며 “CJ ENM과 JTBC 합작법인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경쟁력 확보가 급선무”라고 선을 그었다.
유 사업대표도 이번 합병 제안은 웨이브의 희망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유 사업대표는 “웨이브는 (국내 다른 OTT와) 합병할 생각이 있고, 하자고 말도 많이 했다”며 “티빙과 (합병) 논의는 없지는 않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웨이브는 하고 싶어 한다”고 부연했다.
그래도, 웨이브는 콘텐츠 제휴에 있어 가능성을 열어뒀다. OTT 이용자는 콘텐츠 이슈에 따라 수시로 가입하고 해제하고, 다른 OTT로 이동한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OTT 사업자간 콘텐츠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웨이브 관계자는 “지상파와 CJ ENM 간 콘텐츠 협력 논의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한 쪽에서 전혀 생각이 없었다면, 협의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조건이 안 맞아 성사되지 않았을 뿐,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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