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현대HCN 매각을 위한 선행단계인 물적분할과 관련해 정부심사가 예상보다 더뎌지고 있다. 심사과정에서 현대HCN의 사내유보금 문제를 추가로 검토하게 되면서다. 업계 일각에선 그러나 불분명한 규제 잣대라는 우려도 나온다. 자칫 인수합병(M&A)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3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5일 현대HCN 분할심사에 돌입했으나 아직 본심사에 앞서 서류검토만 한달이 넘게 진행하고 있다. 앞서 현대HCN은 현대퓨처넷(존속법인)과 현대HCN(신설법인)으로 회사를 분할하기 위해 정부에 ‘방송사업권 변경허가’ 및 ‘최다액 출자자 변경승인’을 신청했다.
현대HCN의 분할작업은 매각을 위한 전초단계로, 회사는 현대HCN의 방송통신사업을 따로 분리해 매물로 내놓을 계획이다. 존속법인인 현대퓨처넷은 디지털 사이니지와 기업 메시징 서비스 사업 부문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다. 신설법인이 되는 현대HCN은 이달 15일 본입찰을 마감, 본격적인 인수자 물색에 나설 방침이다.
과기정통부는 그러나 심사과정에서 예상에 없던 사내유보금 문제를 지적하면서 전문가들과 추가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기존 현대HCN 사내유보금인 3530억원 가운데 200억원을 제외한 상당 금액을 존속법인에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케이블사업으로 번 돈을 이와 무관한 회사가 가져간다는 데 이의가 제기된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뉴미디어정책과는 “현대HCN에 1차 서류보완 요청을 했고, 이후 사내유보금 문제와 관련해 추가 서류보완을 요청할 것인지를 포함해 다시 논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속도다. 방송법 시행령 제15조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현대HCN이 변경허가를 신청한 4월27일을 기점으로 90일 이내, 최다액출자자 변경심사를 신청한 5월21일로부터 60일 이내 심사를 마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서류가 미비하다고 판단될 경우 일정은 더 미뤄질 수 있다. 서류 검토와 보완 요청 등 본 심사에 앞선 준비 기간은 법정 심사기한에서 제외할 수 있기 때문. 즉, 예상보다 본심사 속도가 더 늦어질 수도 있다.
과기정통부 분할심사가 끝난다 해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사전동의 절차도 남아 있다. 케이블방송의 공공성 가치와 관련해 규제기관인 방통위가 사안을 어떻게 들여다볼지도 관건이다. 사내유보금 문제도 자연스레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다만 과기정통부의 심사가 아직 끝나지 않은 만큼 방통위도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종산업간 융복합과 이에 따른 M&A가 주 흐름이 된 상황에서 기업의 사내유보금 현황을 문제삼는 것도 과한 처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케이블업계 한 관계자는 “만약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쌓지 않고 주주 배당이나 다른 비용으로 다 써버렸다면 오히려 문제가 안됐을 텐데, 성실히 돈을 모았더니 문제가 된 격”이라고 언급했다.
사내유보금을 신설법인에 풀어 매각한다 해도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약 3000억원 안팎의 유보금이 추가되면 자연스레 현대HCN의 몸값도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 그렇게 되면 당장 현금이 부족한 기업들의 인수 의지를 꺾어버릴 수도 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경우 대형 케이블 M&A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데다, KT스카이라이프도 당장의 현금은 35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와 업계에선 현대HCN 분할이 시일이 좀 걸리더라도 심사 자체는 무난히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22일 범부처 합동 정보통신전략위원회가 디지털미디어생태계 발전방안을 통해 유료방송 M&A 심사 속도를 높이겠다고 약속한 만큼,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은 미리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분할 이후 매각을 진행할 때 존속법인에 사내유보금을 많이 남기고 신설법인은 껍데기만 남겨 회생이 어려울 정도의 재정상태로 떠넘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점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면서 “현대HCN의 경우 부채비율도 적고 재정이 나쁘지 않아 이와 다른 케이스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