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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칼럼

[취재수첩] ‘우리가 남이가’의 올바른 사용법

- 국내 기업 간 협업은 ‘선택 아닌 필수’

[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1992년 12월11일. 부산의 한 식당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주요 인사들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비방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시장은 점점 자리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더욱 그렇다.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대항전으로 변모하는 추세다. 미국, 중국 등 주요국에서 리쇼어링(기업 본국 회귀), 자국 기업 지원 확대 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동안 국내 IT 업계는 각자도생해왔다. 일부 업체 간 업무협약(MOU) 체결 사례가 있었지만, 협업보다는 경쟁에 치우친 경우가 많았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은 직접적인 교류가 적었던 것은 물론 협력사마저 공유하지 않았다. 가령 삼성전자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A 업체는 SK하이닉스와 거래할 수 없다.

반면 중국은 자국 기업 밀어주기에 적극적이다. 특정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더라도 사용해주고, 일감을 현지 업체에 몰아주는 등 활발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대만 등 반도체 제조사는 자국 협력사 의존도가 높고,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협업은 개별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국내에서도 자국 업체 간 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조건적인 경쟁보다는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시너지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배터리 업계에서 바람직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 ‘K배터리 동맹’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재계 ‘빅4’ 총수 간 만남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전자업계 역시 경쟁사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의 채용 물량을 늘리며 공조하고 있다.

초원복국 사건 이후 28년이 지난 현재, 긍정적인 ‘우리가 남이가’를 사용할 때다. 남을 헐뜯는 것이 아닌 도우려는 의도에서다. 미국·중국·일본 등 사이에서 고군분투해온 국내 업체에게도 지원군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기보다 공생한다면 K반도체, K디스플레이 등의 경쟁력을 지켜낼 수 있다.

<김도현 기자>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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