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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FCC 망중립성 폐기의 시사점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예상대로 미국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가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짓파이 FCC 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톰휠러가 만든 인터넷 세계의 원칙을 2년여만에 180도 뒤바꿔 버렸다. 차단금지, 지연금지, 추가대가 지불에 의한 우선처리 금지 등 미국 통신사들에게 적용되던 금지는 이제 사라지게 됐다.

FCC의 이번 결정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한 정권 교체로 인한 정책 변화일까? 보수의 아이콘 트럼프가 진보 성향이 강한 인터넷 세상을 길들이려 하는 음모가 숨어있는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기업 우선주의를 강조해왔지만 AT&T도 미국 기업이고 구글, 페이스북도 자국 기업이다. 단순히 트럼프가 통신사와 더 친하다고 이런 엄청난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분석은 떼어내고 산업적 측면만 본다면 앞으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미국의 대표 인터넷 기업들은 망중립성 폐지로 엄청난 망이용대가를 지불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반대로 통신사들의 수익성은 더 좋아질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는 수익성이 좋아질 통신사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바로 투자 확대다.

미국 통신사나 한국 통신사나 전 세계 어느 통신사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은 늘어나는 트래픽에 대한 대응이다. 통신사들이 인터넷 도로를 계속 넓혀가고 있지만 통행량 증가속도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이번 망중립성 폐지는 강한규제를 풀어줄테니 화끈하게 투자를 하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는 CP들이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이용자가 늘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ISP가 투자를 늘릴 것으로 봤다. 흔히 말하는 선순환 구조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ISP에 직접 가입자 유치를 위해 투자를 늘리라는 전략을 사용했다. 둘 다 투자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정 반대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인터넷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아예 엉망으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이번 FCC의 결정이 한국의 ICT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단기간 우리의 정책이 FCC를 따라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보통 통신사들이 자국 중심으로 사업을 하지만 구글, 페이스북 등 CP들은 국경 없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자국 CP들이 손해를 보는데 다른 나라에 자신들의 망중립성 정책을 따르라고 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의 망중립성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트래픽 관리를 위해 트럼프 정부가 초강수를 던졌다는 점에서 FCC의 결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이나 한국 통신사나 투자에 대한 부담은 같다. 통신사가 권한을 휘둘러 차별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는 일부 CP 때문에 전체 생태계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만 해도 구글, 페이스북 등이 우리 인터넷 기업보다 트래픽을 훨씬 많이 유발하지만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 역차별,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의 정책을 고수하는 것을 넘어, 통신사와 CP간의 역차별, 국내외 CP간의 역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인터넷 세상에서 플레이어들이 공존하며 발전해나갈 수 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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