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벌써 3주전이다. 삼성SDS가 '향후 물류사업의 분할'을 공식화하면서 시장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현재 삼성SDS 매출의 35%를 차지하고 있는 주력 사업을 떼어내겠다는 말에 시장은 과민하게 반응했다.
이와 동시에 ‘삼성물산을 살리기 위한 고육책이다’, ‘삼성SDS 솔루션사업도 향후 분할 후 합병된다’, ‘사실상 삼성SDS가 해체되는 수순이다’ 라는 각종 시나리오가 쏟아졌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논리적으로 민망한 억측도 많았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드라마틱한 예상이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명실상부한 국내 IT서비스업계 1위 회사라도 그 운명이 외부 변수에 의해 순식간에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런데 국내 금융권 IT 기획 담당자들의 눈에도 이번 ‘삼성SDS 사태’(?)는 좀 색다른 측면에서 임팩트가 있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금융IT 담당자들의 눈에 비친 삼성SDS의 ‘존재론’에 대한 것이다.
◆“삼성SDS가 없어질까요?” =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의 IT기획 담당자는 삼성SDS의 해체 가능성이 궁금했다. 그는 “삼성SDS가 없어진다면 좀 여러가지 면에서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SDS는 이미 3년전에 국내 금융 IT시장에서 철수했는데 무슨 소리하시느냐’고 반문했다. 어차피 삼성SDS의 해체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금융IT 시장에서 발을 뺀 이상 의미없는 가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물론 그렇지만 삼성SDS 같은 회사가 그래도 시장에 존재하는 것과 아예 사라지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금융회사 IT담당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국내 금융IT 시장에서 신뢰할만한 대형 IT기업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그 자체로 일단 불안하다는 것이다. 삼성SDS하고 직접적인 수발주 관계를 맺지 않더라도 의지할만한 누군가가 시장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3년전 삼성SDS가 철수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금융권에선 심리적인 충격이 적었다. 향후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을 논의하려면 약 4~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고, 또 그 기간동안 삼성SDS의 부재를 극복할 대안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둘째, 금융권 IT 일각에선 비록 삼성SDS가 금융IT에서 발을 빼긴 했지만 어떤식으로든 다시 시장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IT 시장을 떠난지 3년이 넘었지만 삼성SDS가 주는 브랜드 영향력은 아직 남아있고, 그리고 시장에 신뢰할만한 IT플레이어가 현실적으로 너무 적다는 점을 반증한다.
삼성SDS는 지난 20여년간 국내 금융IT시장에서 숱한 대형 IT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있다. 농협은행 차세대시스템(2006년), 기업은행 포스트 차세대시스템(2014년) 등 금융IT 역사에서 상당한 의미가 부여되는 프로젝트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지금도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각각 2000억원 넘는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SAP기반의 뱅킹플랫폼을 적용해 진행되고 있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차세대 프로젝트는 2018년을 전후해서 완료될 예정이다.
◆삼성SDS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이유 = 금융IT 담당자들이 이처럼 삼성SDS에 대한 뜻밖의 순애보(?)를 가지게 된 현실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실적으로 대형 IT사업을 믿고 말길 만한 업체수가 너무 줄었기 때문이다. 금융권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시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 시작됐지만 대형사는 LG CNS와 SK(주) C&C 외에는 없다. 이 두 회사도 각각 2500억원 내외의 교보생명, 우리은행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 올해부터 본격 착수하기 때문에 무한정 사업을 수주할 수도 없다.
올해부터 내부적으로 포스트 차세대 프로젝트 논의를 시작한 시중 은행들이 우리은행과 교보생명의 차세대 프로젝트 진행 일정까지 면밀하게 체크하는 것은 2~3년후 포스트 차세대 IT개발 인력의 수급 상황을 고려하고 있기때문이다.
한편 과거 차세대시스템 시장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글로벌 IT회사들은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내 금융 SI(시스템통합)시장에 미련을 버린지 오래됐다. 이들이 다시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은 없다.
어떻게 보면 포스트 차세대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금융권의 입장에선 삼성SDS의 부재는 감상적인 순애보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금융권 일각에선 '삼성SDS가 의리없이 약싹빠르게 처신한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전에 금융SI 시장을 황폐화시킨 가장 큰 책임이 금융권 스스로에게 있다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
결국 현재로선 다른 누군가가 LG CNS와 SK(주) C&C를 대체하거나 보완해야한다. 즉 '제3의 얼굴'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3의 얼굴을 찾는것도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일단 기존 진입장벽이 까다롭다.
프로젝트 규모가 300억~400억원 미만의 경우에는 중견 IT서비스업체들이 주사업자로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대형 IT사업을 발주할 때 예외없이 대형 사업자를 선호한다. 프로젝트 규모를 고려한 리스크관리 차원이다.
규모가 큰 차세대시스템 사업의 경우 '과거 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주사업자 수행 경험'을 제안요청서(RPI)에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할 IT업체들이 크게 줄어들었지만 발주하는 금융회사의 입장은 완고하다. 큰 돈을 쓰는 금융회사의 입장에선 '대형 사업은 그래도 대기업이 수행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는 점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상황이 온 듯 하다.
물론 사안을 더 따지고 들어가면, 왜 금융회사들은 차세대와 같은 대형 IT사업을 꼭 '빅뱅' 방식으로 추진하는지부터 얘기해야한다. 빅뱅 방식이 아니라면 IT프로젝트의 리스크는 분산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금융권이 선호하지 않는다.
◆삼성SDS의 대안은 있다? = 금융IT 시장에 과연 삼성SDS는 돌아올 수 있을까.
일단 이 얘기가 성립하려면 '삼성SDS는 해체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를 해야한다. 물론 삼성SDS측에서 최근 물류사업 분할만을 얘기했기 때문에 이 전제는 성립한다. (참고로, 삼성측이 공식 발표한 워딩은 그 자체로 담백하게 이해하는 게 결과적으로 가장 정확하다.)
물론 이 전제를 확실히 박아놓는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삼성SDS가 과연 시장에 돌아올 여건은 갖춰졌는가’
삼성SDS가 3년전 금융시장에서 발을 뺀 몇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가 수익성의 악화다. 금융 IT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면 불가피하게 리스크가 크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SI를 감수해야한다 .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 상황이 개선됐다고 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형 금융IT사업이 외형만 그럴듯할 뿐 최소한의 이윤이 보장되기가 쉽지않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바뀌는 일도 여전하며,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의 리스크는 더욱 커졌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최근의 삼성그룹 기조를 봤을때 삼성SDS의 복귀 논의가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물론 금융SI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시장 상황 또한 개선된다면 삼성SDS가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이 부문에서는 업계 전문가들마다 견해가 많이 갈린다. 금융 IT서비스 전문업체의 한 관계는 “삼성SDS가 물류사업을 떼내는 만큼 매출과 수익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금융IT 시장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의 기업 문화를 고려했을 때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 번 발을 뺀 시장에 다시 미련을 갖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삼성SDS 내에 대외 금융IT 시장을 공략할 조직과 인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삼성SDS 말고도 시장에 대안은 충분히 있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 컨설팅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SDS는 시장 논리에 충실한 IT서비스 기업일 뿐이다. 금융 SI 시장에서 납득할만한 수익성이 보장된다면 삼성SDS 말고도 충분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IT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금융회사가 대형 IT사업에 대한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대기업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는 보완 장치들은 얼마든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SDS는 이미 금융IT시장에서 떠났지만 그 여진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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