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47년 전 국내에 진출한 한국IBM은 ‘국내 IT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업계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IT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겨지는 100년 기업 IBM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함께 지난 50년 가까이 국내에 뿌리 내려온 인력과 고객 레퍼런스 등은 한국IBM의 큰 자산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1967년 국내에 진출하면서 PC 및 서버 시장에서 활동해 온 한국IBM은 말 그대로 한국 IT인프라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최근 몇 년 간 한국IBM은 분명 흔들리고 있다. 직원들 간에도 IBM(본사)과 한국IBM은 다른 회사라고 말할 정도다.
이는 한국IBM이 IBM 본사처럼 기술과 인력을 중시하는 회사가 아니라, 단순히 실적을 관리하는 영업 사무소에 불과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한국IBM이 소프트웨어(SW) 브랜드 일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기술영업을 담당하는 프리세일즈 인력을 콜센터 부서로 발령, 사실상 자발적인 퇴사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BM처럼 커리어패스(진로)와 교육 프로그램, 미래 비전 등을 중시하는 회사에서 이러한 형태의 구조조정은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 오죽하면 셜리 위 추이 현 한국IBM 사장의 역할이 구조조정을 위해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로 인해 생겨난 한국IBM 직원들의 박탈감은 생각보다 훨씬 큰 것으로 보인다. 자칭 IBMer(IBM 직원들을 지칭)로써 그동안 느꼈던 자부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특히 IT업계가 실망하는 것은 구조조정 과정이 그동안 문제시되던 국내 기업들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외국계 기업의 구조조정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다. 해고 통보를 받으면 그 즉시 자리를 물리고 이메일 계정과 노트북을 반납하는 등 단시간 내에 모든 것이 이뤄진다.
반면 그만큼 깨끗하게 정리가 된다. 조기퇴직프로그램(ERP) 등 해고에 합당한(?) 처우를 비교적 보장하는 게 외국계 기업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이번 한국IBM의 해고과정은 마치 우리나라 기업의 그것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우리 기업들이 ‘베스트 프랙티스’로 선망하던 기업이 오히려 국내 기업의 악습을 유산처럼 상속받는 것을 보면서 시대 변화를 실감하는 것과 동시에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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