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최근 삼성이 ‘대학총장의 인재추천제’를 골자로하는 새로운 채용방식을 발표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엇갈린다.
사실 삼성의 새로운 채용방식은 전국 200여개 대학의 총장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학생에게 서류전형이 생략시켜주는 것 말고는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직무적성시험(SSAT)은 그대로 이고, 인터넷을 통한 상시지원도 기존처럼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여러 갈래로 갈리는 것은 그만큼 극심한 취업난에 따른 사회적불안심리가 민감하게 반영된 탓이다. 특히 ‘총장 추천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강하다.
심지어 정치권까지 거들고 나서, 16일에는 정의당이 대변인 논평을 통해 달라진 삼성 채용방식을 직접 겨냥했다. 정당이 사기업의 채용방식을 논평으로 내는 것 자체가 드문일이다.
정의당은 논평에서 ‘총장이 수천, 수백명의 학생 중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가려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공정한 추천이 이뤄질지도 의문이며, 삼성이 대학을 줄세우고, 대학이 학생을 줄세우는 현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논평은 이어 ‘삼성은 국내총생산의 23%, 시가총액은 전체의 26%, 국가경제의 4분의 1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채용방식을 바꾸기보다 신규채용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다그쳤다.
물론 이같은 부정적인 견해와는 반대로 ‘채용방식의 변경을 통해 삼성 입사를 놓고 빚어지고 있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위한 취지에 공감한다’는 취업준비생들의 반응도 적지 않다. 또한 삼성그룹 안팎에서도 이미 ‘삼성 고시’로 불려질만큼 기존의 채용방식이 정형화됐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장 추천제에 대한 갑론을박을 뒤로하고, 혁신의 관점에서만 놓고 보면 이번 삼성의 새로운 채용방식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는 반응이 많다. 아마도 이번 발표가20년전에 삼성이 선보였던 파격적인 채용정책과 직접적으로 비교되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1995년 7월, 삼성은 아예 입사지원서에 학력을 기재하지않는 파격을 선보였다. 국내 최초로 도입한 ‘열린 채용’이 그것이다. 앞서 1993년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후 인재선발 방식부터 손을 보기시작했고 그 결과물의 하나가 열린채용이다.
이 때부터 대졸 신입사원 채용이란 명칭이 사라지고 ‘3급 신입사용 채용’으로 바뀌었으며, 필기시험 대신 개인의 잠재능력을 평가하는 SSAT로 전환했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를 계기로 학력이나 성별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열린채용이 정착된 이후 삼성에선 지방대 출신의 CEO도 다수 배출됐고, 고졸출신이 별(임원)을 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더 이상 특이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됐다. 이는 결국 현재 삼성의 성과주의와 도전주의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기류는 지난해 12월초 단행된 삼성 임원인사에서도 나타났다. 여성 임원 승진자중 주목을 받았던 삼성전자 양향자 상무는 고졸 출신이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연구보조원으로 입사해 최고의 메모리 설계 전문가 반열에 올랐으며 메모리 제품설계 자동화 추진을 통해 개발기간 단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건희 회장이 올해 어느때 보다 위기감을 강조하고 있고, 제2의 신경영선언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삼성의 새로운 채용방식은 시장의 눈높이에선 상대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발표된 ‘총장추천제’, ‘인재를 찾아가는 방식’ 등은 내용에 차이가 다소 있을지라도 다른 기업에서도 부분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채용방식이다.
물론 이번에 발표된 채용방식만 가지고 삼성의 인재선발 정책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이미 삼성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디지털시대에는 천재 1명이 수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천재 경영론으로 진화됐고, 이 때부터 삼성내에서는 공채기수 위주의 순혈주의가 없어지고 능력만 있으면 외부에서도 과감하게 인재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IBM 등 글로벌 IT업체에서 삼성에 영입된 인재들이 CEO와 임원으로 승진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위기를 돌파하기위한 삼성의 인재 선발, 인사 정책이 앞으로 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란 게 삼성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번 인재채용 방식과 관련, 삼성은 소프트웨어(SW)인력의 경우, 지난해 도입한 인문계 우수인력 대상의 'S/W 컨버전스 교육'을 대학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채용방식으로는 선발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러한 '인문·이공 통섭형 인재'를 앞으로는 삼성이 직접 육성하겠다는 것은 일단 평가할만한 변화로 읽혀진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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