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려 12년전으로 되돌아가보자. 2001년11월, 국내 최대 은행안 국민은행(국민+주택)이 공식 출범한다. 그리고 3개월뒤인 2002년 1월, 외국계 컨설팅업체인 '캡제미니 언스트영'은 약 4개월간의 검토 작업을 거쳐 통합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으로 옛 주택은행 시스템을 선정한다.
앞서 캡제미니 언스트영은 옛 국민.주택은행의 전산시스템에 대해 처리속도, 시스템의 안정성, 은행 비전과의 적합성 등을 평가해 비교우위가 있는 시스템을 합병은행의 주전산시스템 확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컨설팅 결과는 옛 국민은행측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결과가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옛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은 합병이 결정되기 바로전인 2001년 초 가동에 들어간 차세대시스템이었다.
오히려 지난 1990년내 중후반에 개발돼 상대적으로 노후화됐다고 평가받았던 것은 주택은행의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이 통합은행의 전산시스템으로 결정되자 역시 정치적 결정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당시 김정태 행장이 주택은행 출신이긴 했지만 합병 은행의 전산본부장(CIO)을 옛 국민은행 출신이 맡았다는 점에서 갈등의 파장이 예상만큼 크지는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기업은행, 우리은행, 외환은행, 신한은행, 농협 등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경쟁적으로 완료하지만 국민은행은 그보다 늦은 2010년 2월에 가서야 마침내 2000억원 넘게 투입된 차세대시스템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 그러니까 캡제미니 언스트영이 2002년 초 IT통합안을 결정한 순간부터 2010년 차세대시스템을 개통할때까지 CIO가 무려 7명이나 바뀌는 어수선함이 있었고, 차세대시스템의 청사진도 여러번 수정되는 우여곡절을 거친다. 이 기간 동안 옛 국민과 주택은행 출신들로 양분된 보이지않은 조직의 긴장도 계속됐다.
은행 합병에 따른 업무의 통합 작업에 있어 가장 효율성이 가장 먼저 담보돼야하는 것은 당연히 IT부문이다.
그러나 과거 국민은행의 사례에서 보듯 IT통합에서 부터 합병 은행의 새로운 차세대시스템 완성에 이르는 과정이 몇년씩 걸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IT통합 과정에서 무엇인가 혁신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않는 한 합병의 효과는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듀얼시스템과 투 뱅크 방식 = 현재 은행간 대등 합병시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밖에 없다. 듀얼시스템과 투 뱅크 시스템 방식이다. 대등 합병이 아닌 일방적인 흡수합병일 경우엔 합병 주도 은행을 중심으로 IT를 통폐합시키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1998년 6월29일, 5개 지방은행 퇴출 당시 이 방식이 적용됐다.
하지만 최근 하나, 외환은행의 합병 결정 사례에서 물리적으로 합병을 몇년간 유예시키는 '투 뱅크' 방식이 제시되면서 새로운 IT통합 전략으로 거론되고 있다.
먼저, 듀얼시스템이란 두 은행이 합병할 경우, 어느 한쪽 은행의 시스템을 통합은행의 IT로 선정하기 전까지 부득이하게 두 은행의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국민은행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IT통합이 완료되기전까지 대개 7~8개월 정도의 과도기를 거치는 데 이 기간 동안 창구 직원들은 단말기에 두 개의 화면을 띄워놓고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물론 IT통합 작업이 끝나면 이같은 번거러움은 사라지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IT의 질적인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다. 합병 은행 출범이후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기위해 수많은 후속작업이 진행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결국 사전 컨설팅까지 포함해 2년~3년 정도의 일정으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에 다시 착수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야만 사실상 완전한 의미의 합병이 완성된다.
결론적으로 IT통합에 약 1년, 그리고 다시 차세대개시스템 개발에 2~3년이 소요된다고 가정하면, 약 3~4년의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는 기존 방식은 개선의 필요가 있다.
◆투 뱅크 방식, 매우 혁신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은? =반면 투 뱅크 방식은 두 은행의 합병이 물리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사전에 진행되는 IT통합 방식이다.
사전에 두 은행의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IT통합을 전제로,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고 합병일에 맞춰서 합병은행의 차세대시스템을 동시에 가동하는 전략이다.
현재 국내에선 이같은 투 뱅크 방식은 하나금융그룹이 유일하다. 하나금융측은 오는 2016년말 하나, 외환은행의 합병 예정일에 앞서 이같은 방식의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투 뱅크 방식이란 표현보다는 물리적 합병 이전에 미리 통합 은행의 차세대IT를 완성해버린다는 뜻에서 '프리 메이드'(Pre-made) 방식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다만 이같은 투 뱅크 방식의 IT통합 전략이 성공하기위해서는 합병 당사자인 두 은행 IT담당자들의 의견절충이 자연스러워야하고, 또한 시스템 개발 요건과 속도도 심플하고 스피디해야 한다.
갈등의 표출되거나 의견의 충돌이 빈번한 조직 문화라면 오히려 위험한 방식이 될 수 있고, 합병전 불협화음만 키울 수 있다.
하나금융의 경우, 기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운영중인 업무시스템(애플리케이션)을 포함한 전산시스템의 성능을 분석하고 이중 장점이 있거나 특화된 시스템을 대폭 업그레이드시켜 향후 통합은행의 시스템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방법은 업무시스템을 완전히 재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두 은행의 요건을 반영,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업그레이드(고도화)시킨다는 점에서 개발 기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고 IT비용을 효과적으로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검증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발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통합은행의 코어뱅킹(Core Banking)시스템은 기존 하나, 외환 두 은행의 기존 코어뱅킹시스템을 배제하고 완전히 새로운 프레임워크 기반위에서 논의하되 통합은행 출범 시점 이전에 시스템 개발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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