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한주엽기자] 중국 전국시대 말기 모사인 소진은 당시 최강국인 서북 진나라에 대적하기 위해 초·제·연·한·위·조 6개 나라가 힘을 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진은 각 나라를 돌며 합종(合縱)의 약속을 받아낸 뒤 6국의 재상이 됐다. 진나라는 감히 동쪽으로 영토를 넓힐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이런 상태는 15년 동안이나 지속됐다고 한다.
소진 사후 진나라 재상 장의는 이러한 합종책에 맞서 진나라를 중심으로 6국 각 나라가 개별적으로 동맹관계를 맺도록 하는 연횡책(連衡策)을 펼쳐 성과를 냈다.
결국 진나라는 각 나라를 개별적으로 격파해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게 된다. 약소국 입장에서 보면 합종은 안정을, 연횡은 멸망을 불러온 셈이다.
애플은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휴대폰 업체들이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다. 특히 애플은 부품 생태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애플의 연간 부품 구매액은 세계적인 IT 업체들 가운데 단연 으뜸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010년 HP를 누르고 세계 최대 반도체 최대 구매 업체로 올라섰다. 작년과 올해는 2위 업체(삼성전자 완제품 사업)와의 격차를 계속 벌리고 있다. 이에 대해 손종형 IHS(아이서플라이)코리아 사장은 “한 업체로 판매가 몰리면 불건전하고 종속적인 부품 생태계를 야기한다”며 우려했다.
실제 애플은 전 세계 부품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 막강한 구매력이라는 권력을 무자비하게, 그리고 쉴 새 없이 휘둘러 부품 가격을 염치없이 깎아댄다.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면서도 30%가 넘는 막대한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경영 전략에서 나온다. 애플은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데 애플에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부품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경기가 나쁘면 여지없이 적자를 낸다. 국내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LG전자가 최근 옵티머스 G를 출시하자 국내 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플을 견제할 수 있는 업체가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점에서 G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과 LG가 서로 좋은 조건으로 부품을 교차 구매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도 했다. 애플에 파는 것 보다 조금 더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이고, 도시바 같은 데서 낸드플래시를 사오는 것 보단 저렴하지 않겠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감정의 골이 깊은 삼성과 LG가 그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기업은 오늘도 서로 치고받고 싸웠다. 며칠 전에는 냉장고 광고로, 몇 달 전에는 3D TV 광고로 으르렁댔다.
1990년대 서로 싸워댔던 소니와 파나소닉, 도시바 같은 일본 기업들은 다 늦은 지금에서야 합종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시각이 많다. 지금의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주엽 기자>powerusr@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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