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앞으로의 AI 산업은 '행동하는 AI'로 나아갈 겁니다. 이는 말 잘하는 AI에서 휴머노이드 같은 로봇의 두뇌가 되고, 자율주행차를 운전하고, 나 대신 예약이나 세금처리도 가능한 AI 에이전트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나의 에이전트인 '하나의 AI와 대화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정송 카이스트 김재철AI대학원장 겸 ICT 석좌교수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AI포럼 초청 특별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최신 AI 산업에서 AI 서비스의 패러다임은 이제 단순한 검색과 지식 제공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정 교수의 이런 전망은 AI 모델의 진화 현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텍스트만 처리할 수 있었던 2022년의 챗GPT는 오늘날 지속적인 발전을 거쳐 이미지, 음성, 오디오 등 더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로 진화하는 중이다. 구글의 제미나이 등 여타 빅테크들의 AI 모델도 마찬가지다. 이 가운데 AI 모델에 사전학습되는 데이터의 양이 대폭 증가하고 모델이 응답 가능한 분야와 수행할 수 있는 기능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정 교수는 이런 고성능 모델의 등장은 곧 스마트폰 산업에서 안드로이드, iOS 운영체제 플랫폼 위에 수많은 앱 생태계가 생겨난 것 이상의 AI 앱 생태계를 만드는 바탕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미 세상의 굉장히 많은 지식을 학습한 모델이 준비되었기에 어떤 AI든 원점에서 개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잘 만들어진 모델에 약간의 데이터 제공과 추가 학습이면 원하는 기능을 더 쉽게 구현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기존에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들도 자사 서비스를 AI 모델에 '플러그인'처럼 접목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예컨대 여행의 '익스피디아', 세금처리의 '홈텍스'처럼 개별 운영되던 서비스들이 이후엔 하나의 모델 안에서 작동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이것이 데이터에 기반한 지식 제공, 플러그인 서비스에 기반한 서비스 자동화까지 '행동하는 AI'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풀이된다. 궁극적으로 이 같은 생태계가 완성되면 AI 사용자들은 더이상 개별 서비스에 접속할 필요없이 이런 기능을 통합제공하는 자신의 AI 에이전트와 상호작용하면 되는 세상이 오게 된다.
AI 주권을 지키며 '제2의 카톡'을 고민할 것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하나의 모델이 주도권을 쥐는 경우다. 정 교수는 "전세계가 글로벌 빅테크 몇개의 AI가 주는 답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우리가 글로벌 수준의 AI를 만들 수 없다면 기업들은 지금부터 새로운 기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이 같은 말은 최근 화두인 자국문화·데이터 학습에 특화된 '소버린 AI' 개발 중요성, 과거 카카오가 안드로이드 초기에 이를 활용한 채팅 플랫폼(카카오톡)을 선제적으로 내놓고 급성장한 사례가 시사하는 바와 연결된다. 한국형 소버린 AI 개발로 세계무대에서 AI 주권을 지키되, 이미 헤게모니를 쥔 글로벌 AI 모델과 직접 경쟁이 어렵다면 선제적 킬러 서비스 개발 등의 대응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정 교수는 특히 네이버와 SKT 등, 국내 선도 ICT 기업들의 AI 연합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의견이다. 글로벌 빅테크에 개별적으로 맞서 승산이 없을 경우, 가령 네이버의 AI, SKT가 보유한 통신과 에너지 인프라 등을 연합하여 하나의 '총체적 솔루션'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란 제언이다. 나아가 이들을 엮어 국제사회에서의 경쟁 방안이 포함된 대한민국 전반 AI 전략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요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AI 구동이 가장 빠르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길
이와 함께 AI 구동에 필수적인 GPU(그래픽처리장치)를 비롯한 'AI 컴퓨팅 인프라' 관련 주제에 대한 제언도 따랐다. 현재 많은 AI 전문가가 "AI 모델이 아닌 인프라 전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강력한 AI 컴퓨팅 환경을 위한 고성능 GPU가 필수인데, 현재 카이스트만 하더라도 엔비디아의 유명 AI GPU 'H100'이 단 1대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인프라 활용 문제로 국내 AI 박사과정 학생들을 해외에 인턴으로 보내기도 한다.
정 교수는 "글로벌 AI 석학인 제프리 힌튼 교수가 구글에 겸직을 하는 이유도 돈 때문이 아니라, 겸직을 해야 구글 GPU를 연구에 쓸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학계의 입장은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AI를 충분히 가동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산업혁명 시대에 고속도로를 닦고, 우리가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정보통신 강국이 된 것처럼 AI 시대는 컴퓨팅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의 정부는 대한민국이 'AI도 가장 빠르고 자유롭게 구동할 수 있는 나라'로 지금의 AI 컴퓨팅 이슈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시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참고로 카이스트는 현재 글로벌 주요 AI 학회 논문 게재 수 기준으로 미국의 4개 대학(카네기멜론, 버클리, 스탠포드, MIT)에 이어 세계 5위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 인재들이 인프라 문제로 해외에 유출되지 않도록 정부의 지원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AI 열공하는 의원들..."지속 가능한 데이터센터 운영 방안은?"
한편 이날 '인공지능은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주제로 약 40분간 진행된 강의는 국회AI포럼 소속 여야 의원 다수, 포럼 외 의원들도 참석했다. 국회AI포럼은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이 대표를 맡고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연구책임을 맡은 국회 내 초당적 AI모임이다. 약 20여명의 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실제로 이날 강의 직후 주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석 의원 대부분이 정 교수에게 AI 정책입법에 필요한 다양한 질문과 견해를 구했다. 상당히 열띤 분위기였다. 특히 ▲AI 시대에 개인정보 관리에 대해 개방적으로, 혹은 폐쇄적인 입장 중 무엇이 필요할지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를 지자체가 유치만 할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 ▲AI에게 인간의 통제권이 넘어가지 않도록 제한할 수 있는 방법 등 인상적인 질문들이 눈에 띄었다.
이인선 의원에 따르면 이날 정송 교수 초청을 시작으로 국회AI포럼은 매달 기업, 관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을 초빙해 의원들과 함께 AI 스터디 기회를 가질 계획이다.
또한 정 교수와 함께 주요 내빈이었던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은 참석 의원들에게 "새로운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법이 우리 산업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수정 및 개선해달라는 바람을 22대 국회에 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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