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홍콩H지수 급락으로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의 원금 손실이 불어나면서 주요 은행들이 줄줄이 ELS 판매를 중단하고 나섰다.
ELS 판매 규모가 큰 KB국민은행을 비롯해 하나은행·신한은행·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고객 손실이 늘어나자 판매 중단을 선언하며, 관련 상품에 대한 향후 판매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은행은 나홀로 꿋꿋히 판매를 지속하고 있어 단연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은행은 "금융당국의 투자 상품 관련 개선방안 결과에 따라 판매 정책을 정비하겠다"며 여지를 두긴했지만 당장은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기 위해 ELS 판매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30일 내놓았다.
그런데 우리은행이 'ELS 판매 지속'에 대한 입장 표명 과정에서 경쟁 은행들을 사실상 '깎아내리는 듯한 표현'(?) 때문에 은행권 내에서 불편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은행이 누구에게 지적질 할 입장이 되나"라는 불쾌감이다.
우리은행은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ELS 판매 지속'의 이유로 "2021년 3월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이전부터 ELS 판매창구를 PB 창구로만 제한해왔고, 또 ELS상품 판매인력도 필수 자격증을 보유하고 판매경력이 풍부한 직원으로 한정하는 등 상품판매 창구와 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를 뒤집으면, 다른 은행들은 ELS 상품 판매 인력들이 '필수 자격이 없거나 판매 경력이 풍부하지 않은 전문성이 없는 조직'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자기 고객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이번 홍콩 ELS 사태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경쟁사 고객들이 최근 극도로 민감해 있는 상황임을 고려했다면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은행의 '경쟁사 깎아내리기'식의 발언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9월11일 우리은행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에서도 경쟁 은행이 펼치는 대출 전략에 대해 "xx은행이 공격적으로 대출에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우량 대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듣기에 따라 도발적인 발언을 내뱉기도 했다. 이를 전해들은 해당 은행은 발끈했다.
일각에선, 우리은행의 ELS 판매 방식이 다른 은행들과 큰 차별성을 보였던 것도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다름아닌 우리은행도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로 대규모 손실을 일으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우리은행의 홍콩H ELS 상품 판매 규모가 다른 은행 대비 적었던 것은 우리은행 스스로 리스크관리를 잘했다기보다는 앞서 DLF 후폭풍으로 어쩔 수 없이 고위험상품에 대한 익스포저를 낮췄는데,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된 것'이라는 게 냉정한 시장의 인식이다.
시장에선 여전히 과거 대규모 횡령 사고와 DLF 사태로 내부통제와 리스크관리가 불안한 은행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은행은 무겁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으론 우리은행이 ELS 판매를 지속하기로 한 것 또한 비이자이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지난달 27일 경영전략회의에서 "당기순이익 1위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번 ELS 판매 중단으로 국민·하나·신한·농협은행의 비이자이익 규모는 지난해 1~3분기 대비 5%이상 빠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복차지계(覆車之戒).
'먼저 간 수레가 엎어지는 걸 보고 경계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은행은 자화자찬보다는 철저한 리스크관리에 더욱 집중하는 보다 원숙한 자세가 필요한 때다.
우리금융이 작년 4대 금융지주중 실적에서 '꼴찌'를 했다는 비아냥 때문에 속앓이가 컸던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기회다 싶어 경쟁사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렇게 따지면 DLF로 먼저 넘어졌던 수레가 바로 몇년전 우리은행 자신의 모습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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